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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파리타Lee Nov 19. 2020

독일의 이혼율이 오르다

코로나 때문에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다면 뭘 가져갈 거야?"

누구나 한번쯤은 묻고 답해봤을 만한 질문이다.

글쎄, 조금 멀리 갔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독일 사람들은 코로나 봉쇄령을 앞두고 그 많고 많은 것들 중에 화장지를 쓸어 담았다.


나는 아직도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길이가 6m는 족히 될 듯한 대형마트 카우 프란트(Kaufland)의 화장지 코너가 텅 비어있던 그 장면 말이다. 나는 아무 상품도 없는 매대를 보고 화장지 코너가 자리를 옮겼나 싶어 그 주변을 몇 번을 돌고 돌다가, 텅 빈 매대 위 덩그러니 걸려있는 '화장지' 팻말을 보고서야, 아, 다 팔렸구나! 하고 탄식했다. 


독일의 '화장지 사태'는 그 심각함이 여느 코믹물 못지않았으니, 같은 빌라에 사는 우리 독일 이웃들은 급기야 '화장지 판매 첩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첩보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저기 로바흐 시청사(Rohrbach Markt) 옆에 있는 페니(Penny, 독일 마트 체인점)에 화장지가 들어왔대!' 
'몇 시에? 지금 가도 있을까?'
'2시 즘에 갔을 때 있었다고 이 아무개가 그랬으니까, 아직 있을 거야, 어서 가봐!'


왜 하필 화장지였을까. 아직도 불가사의지만, 슈퍼 깔끔쟁이인 독일 사람들의 성격과 '평소에 화장지를 엄청 많이 쓰나 보군'하는 짐작으로만 어렴풋이 추측해볼 뿐이다.


독일 마트에서 화장지가 동이 날 때 옆 나라 프랑스에서는 와인과 콘돔이 불티나게 팔렸다. 

(누가 프랑스 아니랄까 봐!)

프랑스에서 와인 소믈리에를 업으로 살고 있는 한국 언니는 봉쇄령을 앞두고 와인샵에 갔다가 상점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언니 왈曰: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이제 집에 갇혀있어야 된다니까 이왕 그럴 거라면 와인이라도 마시자 이건 거야. 화장지? 여기 마트엔 화장지 많던데?"


프랑스에서 봉쇄령을 앞두고 와인과 콘돔이 쌍으로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에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출산율 엄청 오르겠는데?"
그럴듯한 추측이다. 
그러자 다른 이가 반박한다. 
"아니, 집에 꼼짝없이 갇혀있으니 이혼율이 오를걸"
듣고 보니 이 또한 그럴듯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출산율은 지금으로부터 9개월은 지나야 하니 내년에나 알 수 있을 테고, 그것보다는 이혼에 관한 수치가 먼저 나왔다. 안타깝게도 후자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독일의 이혼율이 부쩍 오른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올랐다기보다는 다음번 집계에서 상당한 증가폭을 보일 거라는 전망이다.

그 전망의 배경은 이러하다. 


베를린의 설문조사 기관 Civey에서 3월~5월 두 달 동안 '이혼 결심 건수'를 조사했더니, 설문 대상자의 2.2%가 '이혼 결정'을 가리킨 것이다. 2018년 같은 기간에는 이 수치가 0.42%에 그쳤다고 하니, 최종적으로 이혼 도장을 찍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의 '이혼 의지'가 부쩍 강해진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2018년의 무려 5배) 


독일의 3월과 5월 사이, '집에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복기해보면, 가게란 가게는 다 문을 닫고, 밖에서든 집 안에서든 두 가족 이상은 모일 수 없었으며, 학교와 유치원도 문을 닫아 아이들은 집에 남게 됐고, 어른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 남겨진 아이들까지 돌봐야 했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성, 심리적 불안,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는 고용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예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슈투르트가르트 신문사에서 취재한 베를린의 한 가정 변호사의 말을 빌려, '방울 방울이 모여 결국 그릇이 흘러넘치게 된' 사례다. 집에 갇혀있다 보니 자주 부딪치게 되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다. 또 다른 유형은 그전부터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가 코로나 봉쇄령으로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더는 못 참고 단판을 지어버린 경우다. 어느 사례가 됐든 간에 코로나 봉쇄로 집에 갇혀있었던 그 시간들이 이혼 결심에 한몫을 한 것이다.


사실 독일에서는 이혼율이 계속 내려가는 추세였다. 코로나가 닥치기 바로 전년도만 해도 하락 추세 속에 25년 이래 최저점(148,066건)을 찍었다고 하니, 코로나 봉쇄령이 커플 관계에 영향이 크긴 컸나 보다. 


유럽에서는 얼마 전 두 번째 봉쇄가 시작됐다. 길어지는 제재 속에 봉쇄령 반대 시위가 열렸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지난 봉쇄령 때 독일 사람들은 화장지와 밀가루를, 프랑스 사람들은 와인과 콘돔을 사다 모으는 걸 보면서, 사재기 종목에서도 국민성이 다 드러나는구나 하며 감탄하던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올해는 정말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는구나.


긴 마라톤에 모두가 지쳐있는 지금, 남아 있는 마라톤 코스만큼은 독일식 전략보다는 프랑스식 전략이 통하지 않을까 조심 스래 생각해본다. 또다시 닥친 봉쇄령 앞에 걱정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즐겁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것들로 채우면서 여유를 찾는 전략 말이다.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지구 상의 모든 커플들에게 지혜로운 타개점이 찾아지기를 희망하며, 

봉쇄령 속 집구석에서 이 글을 마친다.


참고기사: <Corona lässt Scheidungszahlen explodieren> Stuttgarter Zei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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