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묭 May 01. 2022

삶의 열쇠


 첫서재에는 두 개의 액자가 걸려 있다.


 하나는 제주의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이다. 흐린 하늘 아래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그 사이를 가느다란 돌담이 지평선처럼 가르고 있다. 얼핏 봐서는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착각할 만큼 초점을 잃은 사진이지만 그 흐릿한 조화가 도리어 자연스럽기도 하다.


 김영갑 작가는 이십 년 넘도록 제주에 머물며 제주의 신비한 자연을 일상적으로 카메라에 담았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다. 스물아홉 살에야 제주에 정착했고, 지극히 가난하게 살면서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마흔여섯 살에야 버려진 초등학교를 임대받아 겨우 자신만의 전시관을 열 수 있었는데, 이미 루게릭병으로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지경이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손수 만든 자신의 전시관에서 그는 투병 6년 만에 고이 잠들었다. 그의 뼈는 두모악 마당에 뿌려졌다고 한다.


 그는 외지에 정착해 갖은 오해와 경계를 받았지만 새로운 고향을 얻게 되었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았지만 결국 자신만의 공간에서 영원히 안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묻힌 땅과 남기고 간 작품은 사람들이 제주를 사랑하는 새롭거나 오래된 이유가 되었다.




 다른 하나의 액자는 존 레논 사진과 그의 말을 담은 종이 포스터다. 쓰인 문구는 이렇다.


 “내가 다섯 살 때 엄마는 행복이 삶의 열쇠라고 늘 일러주었다. 내가 학교에 갔을 때 그들은 내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행복’이라고 적어내렸다. 그들은 나더러 ‘숙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요’라고 말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존 레논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비틀스가 해체한 뒤 나온 그의 노래 가사를 곱씹어보면 쉬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영원히 닿지 못할 듯한 ‘모두의 행복’에 집중하거나 집착하다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가 떠난 날 둥글게 모여 ‘imagine’을 불렀다고 한다.


 사십여 년이 지나 지구 반대편 소도시의 소담한 공유서재에서도 여전히 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들을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존 레논의 ‘imagine’ 같은 세상은 아마 오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아주 느리게, 그런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도 있는 것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다락방 손님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