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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Apr 03. 2022

다락방 손님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



 서재 손님들이 모두 떠난 밤. 다락방 손님 J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아마 지난여름이 끝나지 않았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는 수의대학 학생이었다. 어렸을 적 또래 아이들이 로봇이나 공룡에 빠질 때 야생동물에 빠지기 시작한 이래 어른이 되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야생동물을 연구하기 위해 조류학과에 입학했다가 방향성의 차이를 느끼고, 다시 수능을 봐서 수의대학에 들어갔단다. 동료들은 대개 동물병원 의사가 되거나 공중보건의의 길을 걸으려 하지만, 그는 야생동물에 관한 연구를 평생 하면서 살 거라고 했다. 그가 첫다락의 문을 두드린 이유는 엉뚱하게도 SF소설을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멸종되어가는 동물을 복원하고 방생하는 일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데, 아무리 뛰어난 연구논문을 발표해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과학에 기반하지만 따뜻한 SF소설을 써서 사람들에게 야생동물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환경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요. 평소 SF소설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갓 스물세 살 먹은 청년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첫서재 공간이 좋아서 그런지 어젯밤 새로운 시나리오가 떠올랐는데 들어보시겠냐며 대강 구상한 소설의 얼개를 읊기 시작했다. 창작을 꿈꾸며 서재를 차린 마흔 살의 나는 그의 시놉시스를 들으며 뇌를 훔쳐오고 싶어졌다. 내가 오래 공들여 구상한 어떤 소설보다도 훨씬 단단하고 흥미롭고 창의적인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어제 갓 생각났다’며 줄줄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다른 대학 동기들은 돈을 잘 벌 텐데, 나중에 비교하거나 속상한 마음도 생기지 않을까요?' 따위의 질문이나 던져댔다. 묻는 사람과 답하는 이의 살아온 모양새는 그렇게 달랐다.


 몇 달 뒤, 겨울이 막 찾아올 무렵에는 J와 같은 나이의 연극 연출자 S가 다락방에 머물렀다. S는 열두 살 때 연극에 빠졌고 중학교 시절부터 학내 연극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고 한다. 치열한 입시를 거쳐 입학한 대학에서도 연극동아리에 들었다가, 그걸로는 성에 안 차 아예 극단을 차리고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린 뒤 비로소 잠시 쉬고 싶다며 첫서재에 찾아왔다. 그는 내게 불현듯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생각한 답을 들려주었다.

 “극한에 이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극한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요.”

 닿을 수 없는 끝에 닿겠다며 치열하게 논쟁하고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그는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기에,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람’의 범주에서 나 스스로를 몰래 제외시켰다. 그리고는 쭈뼛쭈뼛 말했다.

 “지난여름에, 꼭 S님 같은 분이 이곳에 다녀갔어요.”




 ‘숙박비는 돈이 아닌 것들로 5년 뒤에 받겠다’며 문을 연 첫서재 다락방. 첫 손님을 받은 지 지난 주로 꼭 1년이 지났다. 그사이 일주일에 한 분씩, 겨울방학 기간을 빼고 마흔일곱 명의 손님이 꼬박꼬박 두 평 남짓한 서재 다락에 조용히 머물다 떠났다. 첫서재를 차리면서 가장 누리고팠던 이상적인 삶, 그러니까 낮에는 글 쓰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며 일주일에 한 차례씩 내가 궁금해하는 낯선 이와 느슨하게 교류하는 일상을 그들이 비로소 완성해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들을 내 공간에 초대하기까지 마냥 설레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매주 이불과 침대 덮개를 빨고 다락 청소를 하는 일도 번거로웠지만, 그것보다 더한 고통은 매달 15일부터 사나흘 간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 기간마다 적어도 수십 통에 달하는 숙박 요청 메일을 받은 뒤 그중에 단 네 분만을 선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를 뽑고 말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누군가에게 경쟁에서 탈락한 기분을 안겨드린다는 것도 못내 죄스러웠다. 모시지 못한 분들께 답 메일을 보내는 일에만 꼬박 하루 넘게 들이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이런 괴로움과 번거로움을 주기적으로 느끼면서까지 다락방 손님을 꼬박꼬박 모신 이유는 또렷했다. 첫서재를 차릴 때부터 다짐하고 약속한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내가 얻어가는 것들이 그런 힘겨움을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과 다른 복장을 하고 이곳을 찾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묘한 공통분모를 감지한다. 아마도 그 교집합은 나의 궁금증이 수렴하는 곳 어딘가일 터이다. 나는 내가 궁금해하는 사람을 다락에 초대한다. 그렇게 매주 손님을 받은 지 1년이 지나고 나니, 내가 어떤 사람을 궁금해하는지 비로소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윤곽선은 내가 숨기고픈 마음, 내 결핍 위로 그어졌다.


 다락방에 온 손님들 중 대다수는 삶의 목적이 지극히 단순하고 순수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의심과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다. 생의 셈법이 늘 복잡하고 목적이 불순했던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끌리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늘 ‘다음 단계’에 관한 의문이 찌꺼기처럼 남았다. 저 일이 저렇게 좋다고 해서 어떻게 인생을 통째로 바칠 수 있는지, 먹고 살 걱정은 안 드는지, 그래서 저걸 발판으로 도대체 뭐가 되겠다는 건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들은 딱히 뚜렷한 대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발판 삼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생의 목적처럼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그냥 알바로 돈 벌면서 그림 계속 그리면서 평생 살겠다’고 한 손님,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제주에서 무작정 상경했다는 손님, ‘지치지 않는 게 재능’이라며 하고픈 일을 하다가 그냥 귀여운 할머니로 늙고 싶다는 손님… 어쩌면 그들은 내가 돌고 돌아 뒤늦게 깨달은 생의 단순함을 앞서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고백건대 나는 이제껏 늘 무언가 ‘되고’ 싶어 살았지, ‘하고’ 싶어 살아온 적이 드물었다. 환경 탓을 하자면, 그렇게 살도록 길러졌다. 장래희망도, 부모의 기대도, ‘자라서 무슨 옷을 입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늘 부와 명예와 권력 중 적어도 한 가지와 결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 입장에서 다락방 손님들은 대개 비효율적이고 대책 없이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해 꼬박 이곳에 머물면서, 나는 도리어 그들처럼 사는 게 진짜 삶에 가깝다는 걸 늦게나마 알아가고 있다.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 삶은 오염된다.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삶의 방식은 영원한 허기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냥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이 더 지속가능한 행복의 안전망이 되어줄 터이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대부분 까먹은 채 살고 있는 보편적인 삶의 진리다. 남 눈치 보느라. 남과 비교하느라. 다락방 손님 중 누구도 내게 자신처럼 살아보라고 권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여물지 않은 언어를 주워 담으며 무너진 삶의 이치를 뒤늦게 복원하고 있었다.


 또 하나 그들에게서 배운 게 있다. 그들은 대개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나약함과 불안을 두 눈 부릅뜨고 대면하고 있었다. 역시 내가 애써 외면해온 감정들이다. 나에게 산다는 것은 곧 극복의 과정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걸 해내고, 역경을 딛고, 나약함과 불안 따위는 떨쳐내는 게 가장 우월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달랐다. 내가 냉정하게 버려두고 오거나 기피한 그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살고 있었다. 이 불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나는 어느 순간 나약해졌는지 차근차근 알아나가면서. 스물세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아빠에게 맞지 않고 한 해를 보냈다는 한 손님은, 자기 손으로 아빠를 신고한 뒤 평생 감당해온 가정폭력을 차분히 글로 써 내렸다. 그 책은 손님이 다락방을 떠나고 몇 달 뒤 세상에 나왔다. 지난겨울 첫서재를 찾은 또 다른 손님은 가정폭력과 학교에서의 소외감,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써 묻어두거나 외면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비극을 이겨내기보다 수용하고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쁜 일은 되도록 쉽게 지워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바빴던 나에겐 생소한 삶의 방식이었다. 내가 외면했던 나의 나약함과 불안은 내 의도대로 영원히 소멸했을까? 지금껏 중요한 순간마다 되살아나 나를 괴롭히는 걸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다락방에 머무는 손님 대다수는 나보다 한참 어린 분들이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먼저 조언을 꺼낸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조언이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하는 게 아니기도 하지만, 실상 그들의 삶에 더 보탤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뭘 보태야 할 건 도리어 나였다. 그들이 압축해서 건네어 주고 간 삶을 조심스레 풀어내며 내 안에 담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으니까.


 앞으로 첫서재 문을 닫기까지 일곱 달. 그 사이 또 서른 분 가까운 손님이 다락방에 조용히 머물다 떠날 것이다. 그들이 누구일지 미리 알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제껏 온 분들과 비슷한 결의 삶을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뒤늦게 닮아가고 싶은 사람들. 담백하게 생각하고, 타인보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자기도 모르게 생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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