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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하루 Aug 28. 2020

진정으로 위하는 것

8월 28일 안개로 자욱한 다리를 지나며

지난주 토요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안 받으면 끊을 만도 한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울렸다. 모르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나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그냥 전화기를 뒤집어 놓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연이어 문자가 도착했다. 작년 우리 반 학생의 어머니였다. 개인정보 보호도 있고 이제 중학교로 간 학생 인터라 번호를 다 지워버려서 누구인지 파악이 잘 안 되었다. 어쩐지 번호가 눈에 좀 익더라니..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문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주말에 쉬시는 데 죄송해요.' 많이 떨리고 긴장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혹시나 내가 작년에 무슨 잘못한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하는 불안한 생각에 마음을 졸이며 다음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의 내용을 전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요약하면 이랬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장난치다 학교폭력으로 신고당했다는 것이다(당연히 장난도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기분이 나쁘면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이 부분은 분명 이 학생이 잘못한 것이고, 옹호하려는 생각의 글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글을 읽으시기 바란다.). 그리고 학교 내 처리과정을 거쳐 교육청으로 사안이 넘어갔고, 이번 주에 관련 협의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어머님께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많이 불안하고 걱정되어 무엇이라도 준비를 해야 되겠다 싶어 작년 담임인 내게 탄원서를 써주십사 하고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통화의 마지막 부분에 '자식을 위한 일이기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아 염치 불고하고 연락드렸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졸업하고 이미 반년도 더 지났다. 좋은 일이 아닌 부정적인 일로 탄원서를 써달라는 그 말이 참 하시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흔쾌히 써드린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조금은 안도감을 되찾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SBS 스페셜 학교의 눈물 중 천종호 판사님의 학교폭력 관련 영상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다른 아이들 비행 저지를 때 부모 없는 아이들 왔을 때, 선생님 법정에 한 번 와보신 적 있습니까? 이런 애들은요 이상하게 이런 아이들은 선생님이 딱 와요. 탄원서도 좋게 써줘요. 그게 뭐가 있겠습니까? 학교가 힘 있는 놈들은 살아남고, 힘없고 부모 없는 애들은 쫓겨나고 보이는 것만 보시잖아요. 보는 것만. 보이지 않는 걸 봐야지!'


구구절절 틀린 말씀이 하나도 없다. 요새 선생님 중 스승이 되고 싶은 사람보다 직업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러면서 교실 내에서 서열을 파악하고 그 서열 속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부끄러운 행동들이 드러난다. 보통 아이들의 서열이 부모님들의 서열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그렇다. 그래서 판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이 도움을 주면 자신에게 좋은 기회라 여기고 그러는 사람이 꽤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너무 성급하게 해드린다고 한 것일까..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 영상을 다시 보고 작년 우리 교실 속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4년 동안 같은 학교에 근무하며 그 학생을 주변에서 관찰해왔다. 기본적으로 말투가 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 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에 직면하곤 했다. 전후관계를 파악해보면 악의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 아닌데, 운이 나쁜 건지.. 이상하게 오해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방어기제가 남들보다 강했다. 그런 모습으로 인해 다른 친구와의 충돌도 꽤나 있었다. 지나가다 보면 담임 선생님께 혼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때마다 그 친구의 표정은 '억울해.'가 가득 담겨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 간의 일을 해결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더군다나 남자 선생님의 경우라면 더 그렇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크기에 학생들이 약간의 긴장을 한다. 그래서 학생들을 불러 '무슨 일이냐. 앞으로 그러지 말고 화해해라.' 하면 그 앞에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쉽다. 그런데, 그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일까? 시간이 지나며 학생들은 자신의 판단 기준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춘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쉬운 해결도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다 지금까지 눈 가리고 아웅 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일일까?


처음 이 학생이 우리 반이 되었을 때,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담임 선생님과 트러블이 없었던 적이 없고, 매번 문제와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도 살짝 문제가 있어 조금 속상한 적도 있었다. 몇 번은 소리도 치고 엄하게 대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관계는 나빠지기만 했고,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방식과 맞지 않아 어색하기만 했다. 하루는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안한 분위기가 되자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관계는 발전해나가기 시작했고, 래포가 형성되었다. 그 학생에 대한 편견의 그늘이 걷히게 되었다. 그러자 주변의 우려와 같은 그런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답답함을 호소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말을 시키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주입시키기 바빴다. 한 번 물고를 트니 억울하고 힘들었던 일들이 쏟아진다. 그것을 받아내며 내가 그 상황이 아니었기에 오롯이 다 이해한다고는 말 못 했다. 그저 위로만 할 뿐이었다.


점차 내게 고민을 상담하거나 일기에 자신의 생각을 적고 나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늘어났다. 지금까지 많았던 마음의 상처로 인해 닫힌 문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당시에도 그 학생의 어머님이 종종 학교에 찾아와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참 사람이라는 게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지켜보니 긍정적인 변화로 찾아왔다. 힘들긴 하지만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믿고 기다리고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담긴 이 말을 탄원서에 썼다. 자필로 써 내려가면서 그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타까우면서도 속상했다. '녀석,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을 했어야지! 남들이 그냥 넘어간다고 해서 내게도 그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데,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현대사회인데...' 그러면서 이번 기회로 배우는 것들도 많을 것 같아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따뜻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결국 그 학생은 교육청으로 들어가 처분을 받게 될 것이다(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잘못된 일에 대해서 처분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기분이 상하고 상처를 받았으면 그에 맞는 처분과 반성, 예방 및 다짐이 수반되어야 한다. 결코 위 학생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다시금 전한다.). 물론 중·고등학교는 초등학교와 상황이 많이 다르기에 진행 과정과 학교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존중한다.


오랜 시간 그 학생을 봐 온 교사로서 아니 한 명의 어른으로서 큰 책임을 느낀다.


모든 일에는 전조증상이 있다. 내 마음 편하자고 덮어놓고 넘어가면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결국에는 터지기 마련이다. 무엇이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위해 진정으로 하는 행동인지를 기억하자.


아이들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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