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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하루 Jun 18. 2020

아련하게 떠오르는

6월 18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운데 서서

길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익숙한 향기를 맡을 때가 있다. 그 향기를 맡으면 지금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지 느낌이 온다. 풋풋하고 초록색 느낌이 가득한 향은 봄, 상큼하고 약간은 습하면서 하늘색 느낌이 가득한 향은 여름, 조금은 서늘하지만 따뜻한 나무 타는 주황색 느낌이 가득한 향은 가을, 쨍하고 폐 안을 가득 채우는 남색 느낌이 가득한 향은 겨울과 같이 말이다. 


이처럼 향기는 어떤 이미지를 함께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동물원을 예로 들어보자. 누구는 동물원에서 어린아이들이 소풍 나와서 까르르 웃고 풋풋한 커플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따뜻한 봄날의 향기를 연상하여, 동물원이 따뜻하고 풋풋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이는 동물원에서 맡은 동물들의 대소변 냄새를 떠올리며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이라는 공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향 냄새도 마찬가지이다. 향이라는 것이 가진 속성이 장례식이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그 냄새를 맡으면 우울하고 뭔가 어두운 이미지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을 많이 다니는 사람은 향을 피우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절을 드리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마음이 편안해질 수도 있다. 과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이 화장실에 향기가 좋다고 향을 피우는데, 그것을 맡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며 당장 끄라고 하는 사람과 대조적인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향수는 어떤가? 인터넷에 치면 그렇게 페로몬 향수가 많이 나온다. 이성에게 관심을 끄는 향이라나 뭐라나. 그것이 뭐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향수를 뿌리고 나간 이성은 뭔가 샤랄라 한 이미지로 탈바꿈하여 눈에 아른거리고 마음이 더 가게 되는 그런 향기라고 한다. 아무래도 좋은 향이니까 맡으면 상대의 기분도 좋아지고 덩달아 호감도도 올라가는 효과 아닐까? 흔들 다리 효과처럼 말이다.


그리고 날씨에도 특유의 향이 있다. 아 이 향은 뭔가 비를 부르는 향이야. 하면 어느 순간 새하얀 구름이 먹구름이 되어 금방이라도 비를 내리게 할 것만 같고, 와 오늘은 진짜 향이 하나도 없는걸? 느끼는 순간 오늘의 날씨는 그야말로 폭염에 미칠듯한 더위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천천히 기온을 높인다. 뭐랄까.. 안 봐도 뻔하다. 그중에서도 뭔가 애매한 향이 있다. 새벽녘에 느낄 수 있는 그 애매하면서도 잔잔한 향. 그 향이 나는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그 향을 맡으면 가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가 떠오른다.


후각에서 시각으로 또 청각으로 우리의 감각은 분절된 것이 아닌 모두가 연결된 것 같다. 다른 예로는 청각에서 시각이 떠오르는 것. 그 대표적인 것. 바로 노래.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많이 듣거나 처음 들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중,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노래방 가서 열창하던 모습,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며 친구들과 수다 떨던 모습, 누군가와 만나며 손잡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모습 등.


그런데 사실 저런 기억이나 이미지 보다도 사랑과 관련된 이미지가 가장 많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전화번호도 다 잊어버린 그 누구와 함께 길을 걷다 들은 그 노래, 행복하게 웃으며 바다로 향할 때 차 안에서 들리던 노래. 그 추억의 장면은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별 후에는 그 노래만 들으면 잊고 싶은 힘든 기억으로 변질된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흘러 문득 그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옅은 미소와 '그땐 그랬지', '그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낼까?' 하는 아련한 추억으로 다시 변화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 등하교를 하면서 또는 야자를 하면서 라디오나 노래를 참 많이 들었고, 대학교에 들어오며 밤새 과제를 하며 노래와는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처럼 굴더니 사회에 나와 직장에 다니면서 너무 멀어진 사이가 되어버린다. 출·퇴근하며 듣는 약간의 노래를 제외하고는 시간을 내서 노래를 듣는 일은 거의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새로 나오는 노래를 모르고 조금 신경 썼다고 생각하면 멜론 TOP 100 정도? 그렇게 돌고 돌다 결국 내가 학생 때 많이 듣던 추억의 노래로 거슬러 올라온다. 우리 부모님들도 새로운 노래보다 트롯을 많이 들으시지 않는가?


내 마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했던 노래들은 어느새 꽤나 나이가 들며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가지만, 그 노래 안에서의 나는 언제나 아름답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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