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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하루 Jun 22. 2020

다른 사람을 깎아내릴 자격

6월 22일 늘 피곤함이 가득한 월요일 저녁

사람들은 한 번 정도는 자신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 부심을 부릴 때가 있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겜부심, 몸이 좋은 사람은 몸 부심,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공부 부심. 이외에도 수많은 부심들이 SNS 상을 가득 채우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있어서 부러움을 나타내는 '하트'나 '좋아요'를 누르곤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 말고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심이 있다. 바로 군부심.


의무복무 국가인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만 18세 이상의 남성들이 군대를 가야만 하게 되어있다. 보통 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 등의 현역으로 말이다. 물론 현역병으로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환복무라고 의무경찰에 지원하는 것이다. 의무경찰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며 현역병과 같은 군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제외하고 아예 군생활을 하지 않는 면제가 있는데 몸이 아프거나 경제적 사정이 안 좋은 경우 또는 일정 기간 이상의 징역을 받는 경우 면제로 처분된다. 그리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다른 대체복무로 전환되는 보충역 등이 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경우, 올림픽 금메달 등 다양한 사유로 보충역을 한다.


여하튼, 1년 반에서 2년 정도 되는 군생활을 마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적응하며 다시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가 군대를 잊고 살았다고 느낄 때 즈음, 남자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다 대화 화제가 떨어졌다고 생각이 드는 찰나 갑자기 군대 이야기가 툭 튀어나온다. '너는 어디서 근무했냐?', '보직은 무엇이었냐?', '육군이냐 공군이냐 의무경찰이냐?', '혹한기는 받아봤냐?', '유격은 몇 번 했냐?' 등등 다양하다. 이런 이야기가 슬슬 나오면 남자들은 은근히 군부심을 부리며 상대방보다 내가 더 힘든 군생활을 했다는 것을 자랑하듯 말한다.


보통 훈련을 많이 하고, 전방이거나 군기가 강한 곳을 힘들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해병대, 육군 중에서도 최전방에 속하는 GP, GOP 부대들이 그렇다. 그런 곳을 나온 친구들은 주변보다 어깨뽕이 한 3cm 정도는 더 들어가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힘들었던 것들을 말하며 후방이나 비교적 복무가 편한 곳들을 소위 까내리곤 한다(모두들 그런 것은 아니고,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경우 그러는 경우가 꽤나 있다.). 더 나아가서 면제나 사회복무요원(공익)을 나온 친구들이 있으면 놀림감이 되곤 하는 경우도 있다. 


예비군을 가서도 그런 일들이 있다. 예비군은 자신의 부대를 나온 사람들이 아닌 집 주소 근방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운영하는 것이다 보니 여러 곳에서 군생활을 보낸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부대 이야기도 나오며 자신보다 어렵지 않은 부대를 나온 사람들을 보면 은근히 깔보는 눈빛으로 바뀐다. 은연중에 무시하는 말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러다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대개 해프닝으로 끝나곤 하지만.


나도 그런 군부심이 있었다. 물론 나는 전방부대도 아니고 훈련을 많이 하던 곳에 있지도 않았다. 단지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에 대한 그런 부심이랄까? 내 친구 중에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지하철에서 근무한 친구가 있고, 몸이 아파서 면제를 받은 친구도 있다.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사회에서 편하게 지하철이나 타고 다니고, 술 먹고 논 너희들이 무슨 힘든 것을 아냐고. 그러다 싸운 적이 있다.


면제를 받은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학교를 1달 정도 쉰 적이 있다. 집안 내력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느라고 그랬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만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면제를 판정받았다. 교대를 나와 군대를 비교적 늦게 간 나로서는 그 당시 이해를 해준다고 생각했지만,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는 그 친구에게 핀잔을 주며 뭐가 힘드냐, 군대도 안 다녀왔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그 친구의 병을 잘 아는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치료하느라 힘들고 아팠을 텐데, 자신도 군대에 다녀오고 싶었을 텐데, 자기가 가기 싫어서 안 간 것이 아닐 텐데... 그 친구는 내게 많이 상처 받았고,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을 많이 드러냈다. 솔직히 그때는 내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서 고집부린 것도 있지만 내가 너무 유치했고 또 어리석었다. 지금은 사과하고 잘 지내고 있지만 종종 그 친구를 보면 그 당시의 기억이 나 너무 미안하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남성인 경우 의무복무를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라를 수호하는 군인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고 멋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조금 더 힘든 부대에 근무했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릴 자격은 없다. 자신이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못 가는 사정이 있어 못 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른 기술이나 일 등을 배우기 위해 후방으로 지원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상황은 다르기에.


누구나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제일 힘들고, 겪어보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다. 몸이 편하면 정신이 힘들 수 있고, 정신적으로 편하면 몸이 힘들 수 있다. 다들 군대에서 보낸 그 시간 동안 어렵고 힘들었던 점을 100%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다. 그저 고생했다는 말 밖에. 당신들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참 중요한 거 같다.


몸 건강히 잘 다녀왔지요? 어디를 나왔든, 모두들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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