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성장 일기
엄마가 된 지 만 9년이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까마득할까? 20대의 내가 떠오른다. 엄마는 가끔 ‘딱 너 같은 딸 낳아보라’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말이 어떤 심정으로 하는 이야기인 줄 모르는 철부지여서 “엄마, 걱정하지 마. 엄마 손주가 나와서 대신 복수해 줄 거니까”라는 말을 농담이라고 해놓고는 깔깔거리곤 했다. 철없이 발랄하다는 것이 심한 욕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모르는 나이였다.
그런 내가 한 아이를 이토록이나 애절하게 사랑하는 엄마가 되었다. 내 아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글쎄, 세간의 사람들은 어떻게들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 아이만큼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을 거라고 종종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세상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존재함을 알았던가 싶을 때가 있다. TV에서, 혹은 거리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그들을 보았던가, 아니 그들을 생각했던가는 잘 모르겠다. 장애는 어떤 사람들에게 그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 손에 닿거나 내 생각에 닿는 일은 그 날 이전에는 없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딸 아이는 12~13개월까지는 정상 발달을 했다. 누구보다 빨리 ‘엄마’라고 말했고 돌 전에 걸었고 같은 책을 몇 번씩 읽어달라고 가져왔다. 눈을 맞추며 엄마 말투를 따라 말하고 방긋방긋 웃으며 젖만 물리면 울음을 딱 그치는 순둥이였다. 그 날이 오기까지는.
아이가 말문을 닫기 시작한 건 내가 재취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18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시작했지만 일을 시작하기에 이른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는 다섯 시간 정도를 어린이집에서 보냈고 별 탈 없이 적응한 듯 보였는데, 점점 말수가 줄었다.
육 개월 만에 일을 그만둔 것은 아이가 애착에 문제가 생겨서 말문을 닫은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지인을 통해 언어치료실에 다녀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24개월에 다니기 시작한 치료실을 만 9세가 된 지금도 다니고 있다. 1년이 지나 36개월이 되었을 때 자폐성 장애 2급 진단을 받았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기르면서 매 시기마다 육아 선배와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장애 진단을 받은 다음 해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문가의 도움은 어느 정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한 공부는 인지적인 부분이어서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 것이 많다. 선배 엄마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엄마들이 집중하는 정보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애살이 부족해서 못 찾아보기도 했지만 어쩐지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은 좀 더 세심하고 또 포괄적인, 정의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마음 같은 것들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싶었던 이야기들,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들을 이제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더 옅어지기 전에. 이 글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쓴다. 7년 전의 내가, 5년 전의 내가 듣고 싶었던, 알고 싶었던 이야기를.
내년까지 책 한 권을 완성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라면 차일피일 미뤘을텐데, 함께 쓰는 분들이 있어서 용기낼 수 있었다. 이 글은 정말로 벼락치기 초고일 뿐이라서 완성도는 떨어지겠지만 백 번 고친다는 마음으로 우선 써보았다. 뭐가 되든 한 권 분량을 써내는 것이 내년까지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될 것 같다.
사실 처음이라 아이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급하게 써야할 게 있다면 아이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 어느날 문득 들었다. 어쩐지 빚이 있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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