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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냠 Sep 05. 2024

일상 인터뷰

엄마 이야기

 

  우는 아이를 등원 차량에 태워 보내고 울적한 기분으로 앉아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문상 갈 일이 있다신다. 청주라니... 가본 적 없는 도시다. 차편을 알아보니 인근 도시 창원고속터미널에 버스가 있다고 해서 엄마를 모시러 갔다. 네비를 찍어보니 고속버스 출발 시간과 터미널 도착 시간이 거의 같다. 다른 차편을 알아보고 부산역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출발 전부터 꼭 그 먼데를 직접 가야 되는지 여쭤봤는데 꼭 가야하는 자리라고 하셨다.  딸래미가 굳이 태워드리겠다고 해서 미안하셨는지 왜 꼭 가야하는 자리인지 말씀하신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제 쓴 글에 이어 쓰면 좋을 것 같아 굳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엄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녹음 파일. 언젠가, 이 파일을 남겨두어서 다행이라며 오늘의 나를 칭찬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M. (샹략) 면접 보는 데 데려가는 거야. 그래서 갑자기 면접을 보러 간거지.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냐 하면 이모부가 반장한테 속닥거려 가지고 반장이 차장한테 말을 잘 해서, 차장이랑 면담하고 취직이 된 거야.


거기가 3교대에다가 두 달에 한 번씩 보너스 나오지, 학자금 다 나오지, 경쟁률이 엄청 세. 그래서 여자 두 명 뽑는데 70명인가 80명인가 왔어. 근데 뽑힌 사람이 하나는 차장 처가 식구고 나머지가 나인 거야. 그때 남자 직원 뽑는 데도 150명인가 왔는데 남자는 일곱 명 뽑았어.


그렇게 취직해 들어가니까 여기를 어떻게 들어왔냐, 너 누구 소개로 들어왔냐하고 여자들이 공격을 하는데... 그 회사에 사람이 천 명이 넘게 다니는데 사람들이 ○○씨 애인이냐 △△씨 애인이냐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은 얼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게 해서 다닌 거다, 거기를.


그렇게 거기를 들어갔는데 그 공을 어찌 잊어버리겠냐. 니네 이모부만 노력해서 취직을 시켜줬으면 괜찮아. 그 이모부가 반장한테 속닥거려서 밥 사고 술 사 먹이고... 지금 돌아가신 그 반장이 차장한테 말을 잘 해서 차장이 뽑아준 거라. 갑자기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때 엄마 손톱이 길었거든. 그래서 이 손을 얼마나 꼭 쥐고 있었는지 나왔더니 손톱 자국이 다 났더라고. 매니큐어 보면 아줌마 일하겠냐고 할까 봐.


그 전에는 합판 공장에 다녔거든. 나무 베어다가 합판하는 공장. 작은할아버지가 거기 다녀서 내가 조금  다녔거든. 한 6개월 정도 다녔는데도 면접 때 거길 다녔다고 얘기했더니 그 힘든 일도 했는데 이걸 못 하겠냐고 하더라고. 사람 키 넘는 합판을 들어서 올려 봐라, 죽는다. 지금 같으면 그걸 하겠나. 못 한다. 그렇게 취직시켜준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내가 가봐야 안 되겠나?


D. 아니, 거기는 꼭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M. 옛날에는 자기 줄이 없으면 못 들어갔어. 3교대 하는 데다 보너스가 두 달에 한 번씩 나오지, 그런 회사가 어디 있노? 거기 들어가서 우리 밥 먹고 살았지. 아, 내가 고생을 하고 돈을 벌고 싶어도 터가 없으면 못 버는 거 아니가? 터를 만들어 줬으니까 엄마가 그 좋은 일을 했지. 일할 자리를 만들어줬으니까.


D. 그래가지고 취직시켜준 이모부 산소도 그냥 못 지나가길래, 그 취직을 한 사람이 시켜준 줄 알았지. 취직 시켜준 사람이 뭐 그렇게 많아?


M. 내가 은혜를 입으면 그거는 죽어도 못 잊어. ○○이모부하고 △△씨하고는 못 잊어. 그 양반들 덕분에 우리 새끼들 고생 안 시키고 살았지. 아니었으면 아직도 서울에 단칸방에 산다.


D. 다행히 바람은 안 피웠네? (웃음)


M. 그 양반이 바람은 안 피우는데, 얼굴이 반지르하게 생겼어. 남자가.


D. 사람들이 바람둥이라고 했다면서?


M. 아니, 여자들이 따랐는데 얼굴이 반질반질하게 생겼어. 그리고 엄청 사람이 싹싹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따라. 사람들이 하는 소리 듣고 하는 말이지. 술도 같이 안 먹어봤어. 엄마는 항상 바빠, 항상. 지금이나 그때나. 어디 앉았다가도 빨리 가야 돼.


D. 건사할 식구가 참 많지요.


M. 어디 가도 조금 궁뎅이 붙이고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얘기도 좀 하고 놀고 남의 험담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그런 거 싫어. 싫고 그냥 내 볼일 보면 딱 일어나서 와 버려야돼. 느그 집 가도 마찬가지고. 우리 손자 때문에 내가 가면 하룻밤 자고 오는 거지. 안 그랬으면 자고 오지도 않아.


D. 아침에 그 손자 울면서 어린이집 갔는데.


M. 우리 애기 왜?


D. 일어나기 싫다고, 잘 거라고. 밤에는 안 잔다고 울고, 아침에는 안 일어난다고 울고. 원래 잘했는데 요즘 조금 안 좋은 거지. 울면서 보내서 기분이 너무 안 좋네.


M. 그게 부모다, 그게 부모.





 어제 결핍에 대한 글을 썼다.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그래서 엄마의 시간도 관심도 내것이 아니었다고.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한 분이 물었다. 현재의 엄마는 오히려 과도하게 애정을 주시는 분이 아니냐고. 사실 그렇다. 어렸을 때는 그랬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여러 가지로 집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서 엄마는 그간 못 주신 사랑을 우리에게 퍼부어주셨던 것 같다.


  사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핍인거지, 나의 기억은 최신판에 머물러 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에게 잘해준 건 잘 기억이 안 나고 못해준 것만 기억이 난다. 아이 낳아 기르는 현실이 답답할 때마다 괜히 결혼을 했다며, 괜히 아이를 낳았다며 투덜거리지만 결혼해서 아이 낳아 기르는 바람에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이놈의 엄마 노릇이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도 죄책감만 들고, 좋은 소리는 못 듣는 자리인 것도 알게 된 것 중 하나다. 그니까 사람은 꼭 그 자리에 가봐야만 그 입장을 알 수 있더라고.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으니 글 쓰는 건 또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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