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 무적의 글쓰기 발췌
주제는 독자가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믿으세요
주제는 보여주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주제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그렇게 할 때 내가 제시하는 어떤 사건이나 대상이 스스로 소리치고 글을 읽는 사람(독자)이 자유롭게 주제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그동안 ‘주제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들어왔을 텐데, 이게 뭔 소린가 하시겠네요. 예를 몇 개 들면서 풀어가보죠 (이번호는 예문만 읽으셔도 됩니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 박준, ‘연년생’
저한테 좋은 글은 장면 하나를 보여주는 겁니다. 병원에 실려 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연년생 형제가 내뱉는 호칭이 달라지는 장면입니다. 이 글(시)의 주제가 곧바로 떠오르나요?
작가는 이 글에서 주제를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무덤덤하게 기록할 뿐입니다. 이웃이라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끔 들었겠죠. 그 집 아주머니를 형은 ‘어머니’라 부르고 동생은 ‘엄마’라고 불렀나봅니다. ‘어머니’와 ‘엄마’의 차이가 느껴지죠? 연년생이지만, 형은 맏이의 의젓함을, 동생은 막내의 어리광을 잃지 않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라집니다. 형은 ‘어머니’를 ‘엄마’로 부릅니다. 맏이의 의젓한 풍모는 온데간데없고 어린아이로 바뀝니다. 동생도 엄마가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섰음을 알아차렸을까요. 이때 외치는 ‘형’은 한 살밖에 많지 않은 형을 향한 전적인 의탁 같은 거겠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어린애가 됩니다. ‘엄마’라는 말은 호칭이라기보다는 울부짖음에 가깝죠. ‘형아’라는 말도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이자 막막함이 담긴 외침일 겁니다. ‘형,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저 시를 읽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적어보았습니다. 주제는 그런 거 같아요. 우리는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선명한 무엇’으로 생각하는데, 도리어 글을 읽는 사람의 밑바닥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는 무엇을 깨워 일으켜세우는 게 아닐까요? 주제는 독자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눈알만 굴리는 게 아니라, 먼지 쌓인 창고에 발을 디딜 때처럼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 출렁거리며 솟아나게 해야 합니다.
주제를 못 잡는 당신에게
글 쓰는 목적을 ‘순수하게’ 가지기 바랍니다. 자랑과 연민, 이 두 가지 감정을 분출하는 걸 글 쓰는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내 진실에 다가가기. 내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기.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써서 내가 다른 뭔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려고 쓰면 됩니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시인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마.”
잘 쓰려고 함은 글에 힘준다는 건데, 그러면 반드시 ‘완력’을 쓰게 됩니다. 한 편의 글로 뭔가 획기적이고 남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얘기를 하겠다는 완력. 완력(腕力)은 ‘팔뚝 힘’입니다. 가짜 힘이고 금방 들통나는 힘입니다. 글에서 완력은 주제를 드러내놓고 강요하는 겁니다. 무술에서도 자기 의도를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어떻게 주제를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섣불리 주제를 발설하기보다는 비닐에 싼 김치처럼 주제의 냄새가 스멀스멀 배어나오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주제보다는 내가 다루는 글감에 한 발 더 다가가 남과 다르게 보겠다는 강박을 가져야 합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한겨레 원문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42975?cds=news_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