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스토리텔링] 원하는 것을 구하라.

구지가 다시 부르기

by 작가 박신

고전문학은 오래된 책 속에 갇힌 옛이야기가 아니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앞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붙드는 마음의 원형이고,

그 원형이 고스란히 새겨진 노랫말이다.


나는 이 오래된 노래들을 다시 불러

오늘을 살아내는 도구로 만들고자 하는 스토리텔러다.



#1 구지가를 다시 불러보자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구간들이 구지봉에 모여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전한다.

노래가 끝나자 땅이 열리고 김수로왕이 나타났다고 하여

오랫동안 이 노래는 ‘왕을 부르는 노래’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원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노래의 힘은 왕의 출현보다

‘노래를 부른 사람들’, 즉 공동체가 가진 주술적 힘에 있다.


수로왕은 부름에 응답한 존재일 뿐,

이 노래를 시작한 쪽은 민중이었다.

그러나 설화는 수로왕의 등장에 초점을 두면서

노래의 원형성과 공동체의 힘은 희미해졌다.



#2 새로운 해석 — 노래의 주인은 누구였는가


조용호, 「豊施新노래로서의 〈龜旨歌〉 연구」(『서강인문논총』 27, 2010)을 참고하면

구지가는 완전히 다른 결로 읽힌다.

• “龜何(거북님, 거북님)”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창하는 의례적 부름.

‘하(何)’는 존칭으로 “거북아!”가 아닌 “거북님”에 가깝다.

• “首其現也(머리가 나왔네요)”

왕을 불러내는 명령이 아니라

땅속에 잠든 생명이여, 기지개를 켜 달라는 요청 어린 질문.

특히 也는 존칭 표기로 읽을 수 있다.

• “燔灼而喫也(만약에 안 나왔다면, 불을 밝히며 시끄럽게 했을 것이어요)”

위협이 아니라 주술적 외침.

머리가 나오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는 절박함.


조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구지가는 수로왕을 부르는 단발성 노래가 아니라


겨울을 끝내고 봄을 여는,

공동체의 집단 제의적 노래였다.


• 거북 = 땅속의 잠든 생명

• 머리 = 봄의 시작, 씨앗의 발아

• 불 밝히며 시끄럽게 함 = 생명을 깨워내려는 집단적 의지


즉 이 노래의 진짜 주인은 수로왕이 아니라

매번 언 땅을 깨우는 사람들이었다.



#3 구지가를 오늘의 노래로


그렇다면 우리는

구지봉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구지가를 다시 부를 수 있다.


수로왕을 부르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나의 봄을 깨우기 위한 노래로.


삶이 멈춘 것 같을 때,

겨울의 무기력 속에 잠겨 있을 때,

내 안의 봄은 여전히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거북아 거북아, 내 속 깊은 곳에 잠든 생명이여,

머리를 내밀어라.”


구지가의 리듬은

땅을 두드리며 생명을 불러내던 그때처럼

지금도 우리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깨운다.



#4 오늘의 구지봉 일기


나는 이 노래를 이렇게 다시 적어본다.


“거북님, 거북님, 머리가 나왔나요?

제 꿈이 시작되었나요?

그렇지 않다면 애가 타서

내 꿈은 구워지고 말 것이어요.”


이 문장은 나에게 오늘의 구지가가 된다.

매일 아침, 써 내려가는 나만의 부름.

• 오늘 내가 깨우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

• 내 안의 잠든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 내가 불러야 할 ‘봄’은 무엇인가


고대의 노래는

그냥 해석되는 순간 사라지지만,

다시 부르는 순간 살아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노래는 “고전”이 아니라

나의 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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