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외할아버지에게는 딸이 여섯 명 있었는데, 우리 외할머니 황두리 여사가 맏딸이었다. 외할아버지, 엄마의 아버지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데릴사위를 들여 함께 사셨다 했다. 그래서 엄마는 이모들의 이야기도 자주 들려주셨고, 그 이모들하고도 사이가 좋았다. 나도 아주 어릴 적 외가에 가면, 그 증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만나곤 했고, 이모할머니들도 만나기도 했다. 엄마는 어릴 적 그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얼마 전, 여섯번째이신 종복 외삼촌 부부께서 엄마를 만나러 오셨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엄마가 늘 외할아버지께 집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삼촌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누나하고 내가 외할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들었어요.”
그 말에, 나는 잠시 엄마와 외삼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말투와 눈빛, 걸음걸이까지, 증조외할아버지의 흔적이 두 분께 고스란히 남아 있는걸까?
“누나, 외할아버지 성함이 뭐예요?” 엄마는 금세 대답했다.
“황오석이지.” 같이 오신 외숙모를 보시고는 황오숙이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웃었다. 외숙모의 성함이 김 오숙이니까 얼른 재치있게 농담까지 했다. 지금도, 엄마의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외삼촌은 외할아버지 이름을 잘 몰랐다. 하지만 누나는 아주 잘 안다며, 엄마의 기억력에 깜짝 놀랐다.
“그럼 아버지 이름은요?”
“김육룡.”
“엄마 이름은요?”
“황두리.”
엄마가 척척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눈가가 촉촉해졌다. 순간, 기억이라는 것이 단순한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걸,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외가의 적산가옥도 황오석 할아버지가 일구신 재산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그 집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차지해야 할 집이었는데, 모든 일에 수완이 좋았던 할아버지가 기회를 잡아 집을 손에 넣으셨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함께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외가는 정말 넓은 마당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면, 누군가 마당을 쓸어내는 소리와 소의 죽을 끓이는 풀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나와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햇빛이 마루에 닿으면, 나이테처럼 나무 결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루는 집 안 깊숙이 이어져 있어서, 그 위를 걸을 때마다 발끝에 전해지는 나무의 촉감이 좋았다.
엄마가 외가에서 자랄 때, 큰 이모는 항상 마루를 반짝 깨끗이 닦아 두셨다고 했다. 하지만 철부지 어린 남동생들이 어느새 흙 묻은 발로 뛰어다니면, 큰 이모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고 그 소리를 흉내를 내셨다.
“야, 누구 발이야!”
큰이모는 그 발바닥의 주인공을 꼭 찾아내 혼을 내야 직성이 풀리셨다고 했다. 마루에 찍힌 발자국 하나하나를 아이들 발바닥에 맞춰 보며 범인을 가려내곤 했다는 것이다. 그 발이 누구 것일지,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조용한 긴장과 들킬 듯 말 듯한 장난기가 섞인 순간들. 외가 엄마 형제들의 어린 시절은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까지 미소 짓게 만들었다.
마루 뒤쪽을 돌아가면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물론 일본식 좌변식이었지만, 화장실 안에 그런 변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때 대부분의 화장실은 푸세식이었고, 외가 마당 저 멀리에도 움막처럼 생긴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나무가 걸쳐져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발을 헛디뎌 똥통에 빠질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밤이면 그 화장실을 혼자 가는 일이 더욱 무서웠다.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작은 발걸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뛰어 갔다가 빨리 돌아오곤 했었다. 그래서 그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나는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낯설고 두렵지만, 동시에 신기하고 특별한 장소였던 것이다.
넓은 부엌에는 두 개의 큰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가 늘 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 뒤편으로는 장작이 켜켜이 쌓여 있는 커다란 창고가 있어,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나무 냄새가 묵직하게 새어 나왔다.
부엌 한 켠에는 펌프가 있었는데,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쇠손잡이는 차가운데도, 손으로 잡으면 꼭 내 손을 받아주는 것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키가 겨우 닿아서 까치발을 잔뜩 하고 손잡이에 매달렸다. 그러고는 폴짝폴짝 뛰면서 힘을 줬다. 처음엔 물이 안 나와서 실망했지만, 외숙모가 “마중물이 필요해” 하며 물 한 바가지를 부어 주면, 그때부터 펌프가 갑자기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철컥, 철퍼덕 소리가 나면서 물이 펌프 속 어디선가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펌프 입에서 물이 튀어 오르면 차가운 물방울이 내 얼굴에 닿았고, 나는 그게 너무 웃겨서 깔깔 웃었다. 조금 지나면 물이 조용히, 그러나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펌프에서 올라오던 물은 단순히 목을 축일 물이 아니었다. 흙 냄새, 햇빛, 외가의 온기까지 함께 퍼 올려지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집 전체가 조용히 숨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리가 꼭 외가가 나한테만 들려주는 작은 노래 같았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집이 나에게만 들려주는 비밀스러운 노랫말 같았다. 아니 그 철컥 거리는 리듬은 외가의 시간과 함께 천천히 흐르던 심장박동 같았다. 나는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던 박동에 귀를 대고 자라난 셈이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가난했다. 이웃들이 물을 뜨러 왔다가 김치며 반찬을 슬며시 가져가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저 “그때는 다들 힘들었으니까…” 하고 넘기려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말은 하고 가져갔어야지” 하고 작은 불편함을 흘리듯 내비치곤 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엄마는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늘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현실에서는 멀리 사라졌지만, 엄마의 내면에서는 아직도 그 집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저녁이 내려앉는다. 오래된 집, 넓은 부엌, 펌프 소리까지—그 기억들은 엄마 마음속에서 아직도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얼마전에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묻곤 하셨다.
“밥은 안 하노? 언니는 어디 갔노? 밥하러 갔나?”
“엄마 밥 먹을 사람이 누가 있어요? 요즘은 아침도 잘 챙겨 먹지 않아요. 간단히 알아서 찾아 먹는데, 뭐하러 밥을 해요?” 어릴 적, 대식구의 밥짓기는 늘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아마도 오늘의 엄마의 중얼거림과 겹쳐, 조용히 웃음과 한숨을 동시에 자아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