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면, 마음은 늘 불안으로 가득 찼다. 그때까지는 전화라도 연결되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어떤 날은 엄마가 가방 속에 전화기를 넣어 두셔서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무음으로 설정해 두셔서 아예 받지 못하기도 했다. 때로는 전화기를 어디에 두셨는지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집에 새로 집전화를 신청했다. 엄마가 집에 계실 동안에는 벨 소리가 크게 울리니 전화기를 받을 수 있었고, 단지 집에 계신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어도 충분했다. 전화국에 새로 신청하고, 무선 겸용 전화기를 구입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했다. 혹시라도 전화를 받으러 가다가 넘어지실 수 있으니, 무선 전화기는 침대 옆에 두도록 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마음 한켠의 불안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이제 괜찮겠지.” 그렇게 안심하던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찾느라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엄마가 혼자서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리를 걸어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병영 동사무소 근처 현대슈퍼까지—젊은 사람에게도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거기까지 혼자 갔다고요…?” 나는 절로 되물었다. 엄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쥐포랑 땅콩이 먹고 싶어서… 슈퍼를 하는 친구 집에 갔지.”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엄마의 한마디가 마음 한가운데를 톡 건드렸다.
“어릴 적 집에서 먹던 땅콩이 생각났어.” 외가에는 땅콩 밭이 있었다. 조롱조롱 열린 땅콩을 한 움큼 뽑아 올리면, 손끝에 전해지는 땅콩의 부드럽고 여린 감촉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여린 물땅콩을 똑 부러뜨리면 단물이 흘러나왔다. 땅콩을 삶아 먹거나 찹쌀밥에 넣어 먹거나, 껍질째 구워 먹어도 늘 맛있었다. 아마 그 맛의 기억이, 엄마를 그 먼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땅콩과 쥐포는 엄마에게 늘 곁에 두어야 하는 간식이었다.
주일만 빼고 센터만 다니던 일상 속에서는 오랫동안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 친구 집을 찾아간 것일 수도 있었다. 8월 초, 울산에 함께 가던 길에 현대슈퍼 친구를 만나러 갔다.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면서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하자 친구는 큰 걱정을 했다.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얼마 전 요양원에 가신 다른 이웃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마음 아파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엄마가 요양원이 아닌 딸 집에 간 것을 알게 되자, 친구는 안도하며 다행이라며 웃으셨다. 맛있는 것들을 다 꺼내 놓고, 엄마와 나에게 먹으라고 정성껏 챙겨 주셨다. 나는 “그동안 엄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 내가 뭐든 사 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친구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셨다. 평소에 엄마에게는 늘 강정과 센베이 같은 간식을 주셨고, 야채도 챙겨 주셨다고 들었던 분이다. 서울에 돌아오면 엄마와 통화라도 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까지 알려 드리고 잘 챙겨 왔다.
그날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기억 속 작은 맛, 오래된 우정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엄마의 걸음 하나, 친구의 손길 하나에도 삶이 느껴졌고, 돌봄과 사랑은 결국 그렇게 작은 순간들 속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마음 깊이 느꼈다.
“이제 괜찮겠지.”
그렇게 안심하던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찾느라 소동이 벌어졌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혼자 현대슈퍼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젊은 사람도 쉽게 걸어가기 어려운 거리였다.
“거기까지 혼자 걸어 갔다고요…?”
내가 되묻자 엄마는 태연했다.
“쥐포랑 땅콩이 먹고 싶어서… 슈퍼 하는 친구 집에 갔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엄마의 한마디.
“어릴 적 집에서 먹던 땅콩이 생각났어.”
외가에는 땅콩밭이 있었다. 조롱조롱 매달린 땅콩을 한 줌 뽑아 올리면 손끝을 간질이던 부드럽고 여린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땅콩을 똑 부러뜨리면 달큰한 물이 스며 나오고, 삶아도 구워도, 찹쌀밥에 넣어도 언제나 맛있던 땅콩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먼 길을 떠날 때면 늘 찹쌀 주먹밥을 쥐여 보내셨는데, 그 안에는 언제나 그 땅콩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바로 그 기억이, 엄마를 그 먼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땅콩과 쥐포는, 엄마가 평생 곁에 두던 간식이었다.
주일만 빼고 센터만 다니던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친구를 만나지 못했으니, 예전 친구가 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8월 초 울산에 내려갔을 때 현대슈퍼 친구를 찾으러 갔다. 엄마가 서울로 갔다며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친구는 걱정이 가득했다. 눈가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최근 다른 이웃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하며 마음 아파하던 모습이 오래 남았다.
하지만 엄마가 요양원이 아니라 딸 집에 가 계신다는 말을 듣자, 그분의 표정은 금세 안도와 기쁨으로 바뀌었다. 있는 음식을 다 꺼내 놓으며, 엄마와 나에게 먹으라고 정성껏 챙겨주었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뭐라도 사 드리겠다고 했지만, 친구는 끝내 받지 않았다. 평소에도 엄마에게 강정과 센베이, 야채를 챙겨주던 분이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엄마가 그분과 통화할 수 있도록 번호를 적어 드렸다. 오래된 우정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날 나는 다시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기억 속 작은 맛이, 오래된 우정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엄마의 한 걸음, 친구의 작은 손길 속에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돌봄과 사랑은 결국 그렇게 작은 순간들 속에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