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아침마다 혜성교회에 갔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연다. 예배보다 중요한 건 ‘걸어가는 길’이었다. 엄마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나의 기도였다. 언더우드 기념관 지하 1층 예배실에서 기도를 마치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엄마, 4층 눌러요.”
“4가 어디 있노?” 처음에는 그러시던 엄마도 이제는 엘리베이터만 타면 4층 버튼을 누르려고 하신다.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는 교회 소식지도 꼼꼼히 살피신다. 어떤 때는 광고를 다 읽으면서 교회 사정을 파악하기도 했다. 흘깃흘깃 보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작은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는 눈빛이었다.
엄마와 함께 옥상정원에 서 있으면, 시간은 늘 느린 속도로 흐르는 듯했다.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엄마는 그 속도를 따라가려고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꽃 하나, 손바닥만 한 수박 하나에도 마음을 멈추어 두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기억한다는 것’이 꼭 큰 이야기여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배웠다.
사람들은 기억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기억의 빈자리를 두려워하기보다, 오늘 눈앞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맨드라미의 선명한 빨간빛을 들여다보며,
“닭벼슬이네.”
“아, 정말 맨드라미가 닭벼슬처럼 생겼네요.” 그 순간, 사실 ‘치매’라는 단어가 들어설 틈은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은, 엄마가 온전히 엄마일 수 있는 시간이자, 사랑스러운 존재로 빛나는 순간이었다.
“엄마, 저기 보이는 게 뭐예요? 저기 솟아 있는 거 말이에요.” 잠시 머뭇거렸다. 어제는 아셨는데, 오늘은 혹시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내가 “남산”이라고 말하자, 엄마는 망설임 없이 “남산!” 하고 외치더니, 곧바로 “남산타워”라고 덧붙이셨다.
“엄마, 안 가보고 어떻게 아세요?” 엄마는 웃으시며 말했다.
“나도 사람들에게 들었어.”
“엄마, 탑을 영어로 ‘타워’라고 하거든요. 남산에 있는 탑이라 영어로 남산타워라고 하는 거예요.” 엄마는 영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남산타워라는 이름을 기억하시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정확하게 다음날도 기억하고 계셨다. 그곳에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고 말씀하시며 설명하셨다.
나는 매일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저건 이름이 뭐예요?” 가끔 잊어버리는 날도 있지만, 기대 이상으로 정확히 맞출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 함께 묻고 답하는 이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또 달랐다. 우리 집이 어디쯤 있는지도 찾아보았다. 멀리 산 위에 있는 이상해 보이는 건물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셨다.
“군인들 초소예요. 서울이 중요한 지역이라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요.” 4층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공기도 달랐다. 늘 신선한 기운을 몸속 가득 채워서 내려오곤 했다.
흩어진 은행잎을 발로 쓸어 모으시면서 “이건 뭐냐고, 왜 안 묻냐?” 하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엄마, 그건 뭐예요?” 하고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은행잎이지” 하고 대답하신다. 엄마가 내가 묻지 않은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 엄마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작은 순간 하나가, 마치 기적을 보는 듯한 기쁨으로 마음에 남는다. 남산타워라는 단어 하나를 기억하는 일조차 기적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엄마의 세계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빨라지지만, 어떤 날은 놀랍게도 다시 떠올린다. 그 단어 하나가 엄마가 아직 이 세계에 닿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졌다.
엄마의 정원이 된 그 옥상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기억을 잃어갈수록 더 많은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고 작은 것들만 남아서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채우는 것 아닐까. 꽃 한 송이, 수박 하나, 하늘의 구름 한 조각, 그리고 “남산타워”라는 단어 하나.
그 작은 세계 속에서 엄마는 여전히 살아 있고, 나는 엄마의 그 세계에 발을 맞추어 함께 걸었다. 잃어가는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을 더 오래 바라보는 법을 엄마는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