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루장 Nov 14. 2024

망각의 숲에서 길을 잃다


오래전, 어느 작은 마을에 ‘기억의 숲’이 있었다. 이 숲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잘못을 바로잡고, 다음 세대를 위해 지혜를 나누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에게도 이 숲을 찾게 하여, 그들이 성장할 때마다 조상의 이야기를 듣고 교훈을 새기도록 했다. 덕분에 마을은 조화로웠고, 세대를 넘어 각자의 책임과 연대의식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과거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며, ‘기억의 숲’을 다르게 이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숲 속의 오래된 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눈부신 새 도시를 세우겠다고 했다. 낯선 남자는 사람들이 기억을 꺼내 볼 필요가 없다며, 과거의 실수를 무겁게 짊어지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일부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들렸다.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에 얽매이지 않고, 눈앞의 번영을 쫓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람들은 낯선 남자를 따르기로 했다. 낯선 남자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렇게 ‘기억의 숲’은 하나둘 잊히기 시작했다. 숲에 다니며 교훈을 듣던 어른들도 하나둘 줄어들었고, 아이들은 더 이상 조상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은 잡초로 덮이고, 길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숲을 통해 이어졌던 기억과 진실은 희미해졌고, 마을 사람은 더 이상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을은 처음엔 번성하는 듯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은 단기적인 번영에만 몰두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개인의 욕심은 공동체의 가치를 앞질렀다. 한때 풍요로웠던 마을은 갈등으로 뒤덮였고,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점점 외롭게 살아갔다.


특히 지도자는 자신과 가까운 소수의 사람에게만 이득이 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결정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과거의 진실과 지도자의 말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고, 지도자는 권력을 더욱 강화해 갔다.


그러던 중, 한 소년이 우연히 잡초로 덮인 기억의 숲을 발견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많은 그는 길을 잃어가며 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소년은 빛바랜 돌판에 새겨진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둘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마을의 기원과 과거의 실수들, 그리고 조상들이 남긴 교훈을 담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마을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소년은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숲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전했다. 처음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점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오래전 기억의 숲을 방문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잊힌 진실을 되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람들은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며 마을의 진정한 가치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지도자로 여기지 않고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거짓된 자기 목소리만 들리는 어둠의 동굴에 가두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문으로 보는 『사람의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