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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Dec 24. 2024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물에 빠진 개'는 모두 때려야 할 부류이다.


개는 아무리 짖어대더라도 무슨 ‘도의道義’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더구나 개는 헤엄을 칠 줄 안다. 언젠가는 분명 땅에 기어 올라올 것이며, 주의하지 않으면 몸을 털어 사람 얼굴이나 몸에 물을 튀기고는, 꼬리를 사리며 달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뒤에도 성품은 여전하다. 순진한 사람은 개가 물에 빠진 것을 세례 받은 것이라 여기면서, 그가 분명 참회했을 터이고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며, 그것도 엄청난 착각이다.

사람을 무는 개라면, 땅에 있건 물속에 있건 모조리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릴 것인지 말 것인지는, 우선 그 개가 땅에 올라온 뒤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개의 본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혹 일만 년 뒤라면 지금과 다를지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현재의 일이다. 만일 물에 빠진 뒤 그의 처지를 너무 가련하다고 여긴다면, 사람을 해치는 동물 중 가련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콜레라 균만 보더라도 번식은 빠르지만 성미야 얼마나 솔직한가? 그렇지만 의사는 그것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는다.

‘건드려도 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용의 도道이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다’라는 것은 곧음의 도이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 이는 순진한 사람이 사서 고생을 하는 꼴이다.


그러나 악인은 구제되고 나서, 자신이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 결코 회개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들은 교활한 토끼처럼 굴을 셋이나 파 놓은 데다가 아부하는 재간까지 있어서, 얼마 안 가서 빛나는 명성을 되찾게 되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못된 짓을 한다. 그러면 공정한 도리를 운운하는 자들은 또다시 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번이라고 그들이 들을 리 만무하다.


지금은 페어플레이만 할 수는 없다.


어진 사람은 물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페어플레이가 필요 없다는 말인가?’ 나는 즉각 대답할 수 있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이것은 그들의 ‘자업자득’이다. 만일 일률적으로 페어플레이를 적용하여, 그는 당신에게 페어 하지도 않는데 당신만 그에게 페어 했다가는 결국 자신만 손해를 본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는 페어 하려 해도 할 수 없고, 페어 안 하려 해도 안 할 수 없어진다.


그러므로 페어플레이를 하려면 먼저 상대를 똑똑히 보고, 페어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면 조금도 페어 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페어 하게 나온 다음, 그에게 페어해도 늦지 않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편적으로 실시하려면, 적어도 물에 빠진 개가 인간다워진 다음에 해야 한다. 물론 지금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은 아니며, 언급한 대로 상대를 봐가며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등을 두어야 한다. 즉 페어의 상대가 누구인지를 보아야 한다. 어떻게 물에 빠졌든 상대가 사람이라면 건져야만 하고, 개라면 내버려 두어야 하며, 나쁜 개라면 때려야 한다.


감히 단언코자 한다. 반개혁가의 개혁가에 대한 악랄한 박해는 한 번도 미뤄진 적이 없으며, 그 수단의 극렬함도 이미 극에 달했다. 오직 개혁가만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며, 늘 손해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도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페어플레이'는 응당 천천히 행해져야 한다, 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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