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쓰라이 프라니
내 이름 Kwak Jun Hae는 부모님도 아니고 조부모님고 아니고 그 당시 중국에서 공부하던 이모의 친구 분이 존경하던 ‘유전해’ 목사님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참 희한한 일이다. 이모도 아니고 이모 친구 분이 내 이름을 짓다니. 살면서 이모 친구분도, 목사님도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내 이름에 운명을 느꼈던 부분은 그 뜻이 내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전傳- 전할 전/ 해海-바다해’ 라는 이름에는 ‘바다의 전설’이란 뜻이 담겨있단다. 그래서 나는 이름 덕분에 물 건너 복음을 전하러 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9살에 세례를 받을 때 대모님이 ‘프랑소와즈’라고 지어주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그 이름이 흔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대모님이 그 이름을 선택하셨을까 궁금하다. 그런데 세례물을 부으면서 신부님이 ‘프랑소와즈’를 ‘프란체스카’로 바꾸어 버렸다. 좀 더 익숙한 이름이 좋겠다 여기셨으리라. 그런데 나는 커가면서 ‘‘프랑소와즈’ 라는 이름으로 세례 받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1998년도에 우리 공동체에 입회를 했다. 여섯 자매가 함께 입회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자매가 프란체스카여서 갑자기 내 이름을 ‘프랑소와즈’라고 부르겠다고 공동체에서 결정이 되었다. 그 때 알았다, 우리집의 모원이 프랑스에 있어서 우리 공동체에는 불어식 이름이 많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여성 이름이 프랑소와즈란걸. 그 뒤로 십년간은 ‘프랑소와즈’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지금도 한국가면 사람들은 나를 프랑소와즈라고 부른다.
2008년도에 필리핀의 학생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을 때 그곳의 원장님이 프랑소와즈가 어렵다고 프라니로 부르겠다고 하셨고 그 때부터 내 영어식 이름이 franny가 되었다. 이 발음이 마치 ‘퍼니’처럼 들린다고 사람들이 웃는걸 보면서 ‘재밌다’는 이미지가 입혀지는 듯 해 기분이 좋았다.
다시 캄보디아에 왔을 때 프랑소와즈라는 이름을 쓰려고 했으나 역시 사람들이 발음이 어렵다고 했다. 그 때 스페인 국적의 우리 주교님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여성이름은 스페인어로 ‘빠끼따(Paquita, 프란체스카의 스페인어)’라며 ‘빠끼따’가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 때 주변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빠끼따’가 대체 뭐냐고...발음이 드세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보다 ‘프라니’가 부드럽고 좋다고 해서 결국 ‘프라니’로 닉네임을 쓰고 있다. 그래도 주교님은 나를 만나시면 여전히 ‘빠끼따’라고 부르시고 어쩌다 교구 행사에 가서 순발력 넘치는 그분께 성체를 받아 모실 때면 “빠끼따! 그리스도의 몸” 하셔서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한다. 최근까지도 그분이 내게 전해주신 읽어볼만한 영성 프린트물 위에 <To Sr. Paquita>라고 되어있는걸 보면 그분께 나는 빠끼따로 남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유튜브에 <몽실의 푸드트럭>이란 채널을 개설해서 간간이 비디오를 올리는 중이다. 어느날 짧게 자른 머리 모양으로 시골에서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이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낸 소설의 '몽실언니'같았다. 몽실이가 트럭에 간식을 잔뜩 실어가서 아이들에게 나누는 기쁨을 영상에 담았는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상에서 '몽실'이란 이름이 생긴셈이다.
Sister, 언니, 자매는 크메르어로 ‘벙쓰라이’다. 나는 캄보디아에서 어딜 가든지 ‘bongsrey Franny’라고 소개하고 그렇게 부르라고 한다.
지금의 내 이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