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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과사람 Jul 30. 2019

희망을 조금만 더

알츠하이머병 임상 신약개발의 잇따른 실패를 바라보며



3년 넘게 진행해 온 임상 연구가 종결됐다. 나는 노인 치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알츠하이머병의 임상 신약개발 제약회사 연구에 참여해왔다. 약물을 복용하면서 실제 인지 기능의 저하가 얼마만큼 나타나는지, 일상생활 수행능력과 정서 및 행동 상 문제가 있는지를 평가rating하는 일이다. 그런데 20여 년 간 치매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온 베타 아밀로이드 가설에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제약회사들의 임상시험이 잇따라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오랜 기간 약물에 만족해하던 환자분들은 갑작스레 갈 길을 잃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따라 조심스레 걸어가던 길이 뚝 하고 끊긴 것이다. 문제는 희망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다. 마지막 평가. 오늘의 눈빛, 표정, 전해지는 불안감.


그 어떤 질병도 마음 아프지 않은 병은 없지만,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early-onset AD)은 특히 마음이 아린다. 의학기술은 발달하고 기대수명은 늘어나 100세를 바라보는 시점에, 5-60대에 발병하는 인지기능 저하는 정말 두려운 일이다. 몸은 쌩쌩한 어른이지만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일. 혼자서는 지하철도 탈 수 없고, 요리도 할 수 없고, 글씨도 쓸 수 없고,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어지는 일.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차츰 사라져 누군가의 도움 아래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일. 곁의 사람들에게 스스로 짐이 된다 느껴지는 일.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3년 간 만나 온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잘했다 칭찬해드리고 더 많이 응원했다. 희망이 조금 더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희망을 상실하고 좌절한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고생하셨다는 말, 죄송하다는 말, 안심시키는 말 외에 나는 무엇을 더 이야기해드릴 수 있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 불안한 어둠 속에서도, 지금껏 붙잡아 온 한 줄기의 빛을 계속해서 놓지 않고 살아가시길 기도하는 것. 이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씁쓸한 마지막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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