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상을 봤다. 제목은 대화.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한적한 곳. 한 여자는 사진기를 꺼내어 아름다운 녹음을 담는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 벤치 끝엔 자신을 지탱해주는 흰지팡이가 함께 앉아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여자는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사진기를 건네고 저 멀리 달려가 포즈를 취한다. 남자는 당황해 소리친다. 제가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요! 여자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자세를 잡는다. 그녀는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이다.
잠시 후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과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서로를 알아차리는 순간, 잠시 영상을 멈춘 후 생각했다. 제목은 대화. 그들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자신의 키, 자신의 얼굴, 자신의 온 모습을 만져 느끼게 한다. 그리곤 남자의 흰지팡이를 짚고 소리 내어 이동해 자리를 잡는다. 거리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여자의 배려. 남자는 아하! 하고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사진에 담는다.
시각과 청각의 결핍을 지닌 이들을 소통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촉각. 그리고 배려. 이들을 대화하게 만든 건 누구 한 사람의 언어가 아니었다.
누군가와 진정 대화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상대가 시각장애인이라면 시각장애인의 언어로, 청각장애인이라면 청각장애인의 언어로, 아이라면 아이의 언어로, 부모라면 부모의 언어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고유한 사랑의 언어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배려의 언어로. 그러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누군가와 진짜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