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바질 앤 앨리스 뮤지엄>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가볼만한 미술관이 있으면 가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리고 유럽 고대 문화의 발상지답게 아테네에는 고고학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등 가볼만한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이 많이 있다. 오래 전이었지만 한 번 가봤던 국립고고학박물관은 이번에는 제외하고, 그렇다면 어딜 가볼까 하다가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바질 앤 앨리스(Basil & Elise Goulandris Foundation)>에 가보기로 했다. 괜히 유명하다는 곳에 가서는 인파에 등 떠밀리듯 하면서 작품들을 보고 싶지 않은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바질 앤 앨리스 뮤지엄은 동명의 재단에서 운영하며, 아테네뿐만 아니라 안드로스섬에도 한 개소가 더 있다고 한다. 바질 굴란드리스라는 부호와 그의 아내가 개인적으로 소장했던 작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미술관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신타그마 광장을 지나 국립정원을 산책 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의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다. (플라카 지구에서 도보 30분)
입장료는 2024년 기준 10유로. 가방을 맡기고 천천히 전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행자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었기 때문에 꽤 느긋하고 쾌적하게 나만의 속도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용하게 관람하던 중간에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아마도 단체로 미술관 관람을 하러 온 학교의 아이들인 듯 했는데, 도슨트와 선생님의 인솔로 유명한 작품들 앞에 모여 앉아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듣고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는 중간에 그 학생들과 동선이 겹쳐서 서로 편하게 관람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미술관 카페에서 쉬었다가 나머지를 마저 보기로 했다. 레스토랑을 겸하는 미술관 카페는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 덕분에 아주 쾌적하고 좋은 편이었고, 야외 테이블도 있어서 기분과 취향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몇몇 관람객들은 카페에서 평일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야외에 자리를 잡고 간단히 먹을 것과 음료를 주문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시금치 파이, 그리고 병 음료. 다만 아메리카노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맛이 없었고, 시금치 파이는 그나마 뭐 그럭저럭이었지만 가격만큼의 만족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뭐, 분위기 값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메리카노 3.5유로, 시금치 파이 6유로)
비록 맛은 없었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계산을 하려는 그때 문제가 생겼다. 분명히 메뉴판을 보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주문을 했고, 카페 직원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음료를 내왔다. 근데 계산할 때 갑자기 딴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주문한 병 음료가 없어서 다른 것을 줬다는, 그래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 그런 것이었으면 주문할 때 말을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주문할 때에는 알겠다고 하고 계산을 하는데 갑자기 돈을 더 내라니. 심지어 분명 메뉴판에 써있는 것이랑 같은 병음료가 나왔는데? 그리고 문득 뇌리를 스치는 직감, '여행자인 걸 알고는,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생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에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돈을 더 내고 기분이 한껏 상한 채로 카페를 나왔다.(병음료가 메뉴판에는 2.5유로 정도였지만 하나에 4유로나 주고 마신 꼴이었다.)
결국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들을 많이 보고 즐거운 기분으로 미술관 카페에 들렀다가, 기분이 상해서 나오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후 나머지 작품들은 보는 둥 마는 둥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미술관을 나왔다. 피카소나 로댕 등 우리가 알만한 유명한 작품들도 많고, 전시장 분위기도 좋아서 작품을 보는 것은 좋았지만, 미술관 카페 사기꾼 때문에 기분이 너무 상해서 아쉬웠다.
- Basil & Elise Goulandris Foundation
Eratosthenous 13, Athina 116 35 그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