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5가 <돈까스 광장>
돈까스는 어릴 적 우리 집 외식 메뉴였던 탓에 가끔 먹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고, 일본식 돈까스 말고 경양식 옛날 돈까스가 먹고 싶었다. 친구랑 돈까스 집을 이리저리 찾다가 종로5가에 있는 <돈까스광장>이라는 가게를 찾아갔다. 약국과 상점들이 잔뜩 있는 거리에서 돈까스집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1층이 아닌 2층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단을 올라 2층 매장으로 올라갔는데 식사 때가 지나서 그런지 한산한 분위기였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메뉴들을 살펴보니 돈까스를 비롯해서 튀김 종류의 메뉴들이 많이 있었다. 난 먹고 싶었던 돈까스를 주문했고, 잠시 후 돈까스를 받아 들었다. (식전으로 나올 법한 스프는 나오지 않았다.) 돈까스는 상상하는 경양식 옛날 돈까스의 비주얼이었다. 소스가 잔뜩 끼얹어진... 사실 얇디 얇은 고기에 튀김옷, 그리고 흠뻑 적셔진 돈까스 소스. 학교 다닐 땐 친구들이랑 이런 돈까스를 장판 돈까스라고 부르곤 했다. 맛있다기 보단 달콤한 소스에 버무려진 튀긴 고기를 먹는다는 만족감이었으리라. 여기도 그 때의 만족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밥이 퍼석해서 맛이 없었다는 것까지 닮았다.)
별거 없는 평범한 레시피의 이런 돈까스가 가끔 생각나는 이유는 아마도 나에게는 추억의 맛쯤 되는 것 같다.
옛 추억에 잠겨 돈까스를 먹고 있던 그 순간, 사건이 벌어졌다. 창가 창틀 쪽으로 벌레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향해 맹렬히 다가오던 벌레. 사고가 순간 멈춰서 이게 무슨 일인지 어떤 벌레인지 인식 하는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이 났다.
저건 바퀴벌레다! 최근 바퀴벌레를 본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분명 바퀴벌레였다. 그 순간 모든 식욕은 사라졌고 친구와 함께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계산을 하면서 주인에게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말을 했는데, 미안하다며 아무리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추억을 느끼며 먹으려던 돈까스는 생각나지 않고 바퀴벌레만 떠올랐다.
아. 아무리 맛있는 집이어도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아. 그리 맛있다고도 할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