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동백꽃 축제
어쩌다 보니 포르투갈에서 몇 번의 생일을 보냈다. 굳이 포르투갈에서 생일을 보내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프리랜서 일을 해 오다 보니 일거리가 적은 시기에 여행을 가곤 하게 되었고, 그런데 그 시기가 우연찮게 내 생일이 있는 때와 겹쳤다. 매년 반복되는 일과 휴식의 사이클은 자연스럽게 나를 종종 포르투갈에 머물게 했고, 덕분에 매년 행복한 생일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올해 내 생일에도 나는 어김없이 포르투갈에서 한 달을 지내는 중이었고, 생일날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이미 행복했기에 딱히 특별한 계획 같은 것도 세우지 않아도 되었다.
여기에 있을 때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강변을 혹은 공원을 산책하며 여유있는 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생일날 나의 선택은 지내던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상 호케 공원'이었다. 상 호케 공원은 두드라강 경기장 옆에 있는 알라메다 쇼핑몰에서 아파트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들르게 된 곳이었는데, 해질녘 풍경이 정말이지 매우 아름다워서 조만간 다시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었다. 이날은 그때처럼 날씨가 아주 맑진 않았지만 그래도 산책을 즐기기엔 충분했다. 천천히 공원 곳곳을 산책하다 우리 눈에 들어 온 안내 포스터, 공원에서 동백꽃 축제(박람회)가 열리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포스터였다. 안 그래도 며칠 전 공원에 들렀을 때 한 켠에서 시청과 공원 직원들이 분주하게 뭔가를 설치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동백꽃 축제였던 모양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벌써 28년째 진행되고 있는 엑스포(박람회)였다. (28.ª Exposição de Camélias do Porto https://www.agenda-porto.pt/media/28a-exposicao-de-camelias-do-porto/)
동백꽃 축제가 열리는 곳은 공원 위쪽 출입구 근처에 마치 비닐하우스처럼 설치된 가건물이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서 보니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꽃을 둘러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안으로 들어가니 수백, 수천 송이쯤 되는 동백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동백꽃이 섹션별로 정말이지 '흐드러지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각각 다른 나라, 다른 품종의 동백꽃들이었다. 사실 축제를 보기 전까지 동백꽃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동백꽃' 하면 떠올리는 모습은 제주도에 갈 때면 종종 보는 짙은 빨간색의 동백꽃이었는데, 이 곳에서 본 동백꽃들은 훨씬 더 다양한 컬러와 꽃모양을 가지고고 있었던 것이다. 꽃을 보고 있으니, 꽃을 좋아하는 엄마 생각도 났다. 나 혼자 이렇게 눈호강을 하고 있자니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엄마에게 보내줄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영상도 찍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사진 보내드리니 엄청 좋아하시더라.)
꽃이 전시된 곳 한 켠에는 작은 공연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정해진 시간마다 공연하는 이벤트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갔을 때에는 곧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고 되어 있었지만, 배가 무척 고팠던 관계로 공연을 보진 않고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꽃이 가득한 공간에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음악은 상상만으로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한참 동백꽃들에게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고 공원을 나서는 길, 문득 포르투갈이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인 것만 같아서 더 행복해졌다. 내년 생일에도 내가 이 나라에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생일이 된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 Parque de São Roque
R. São Roque da Lameira 2040, 4350-307 Porto, 포르투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