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Nov 12. 2015

지옥의 계곡이라고?

2012. 일본 ::: 노보리베츠


#1. 삿포로를 떠나야할 시간 - 고래군


삿포로 역에서 JR을 타고 하코다테 쪽으로 가기 위해 우린 길을 나섰다. 기왕 패스를 끊게 되었으니, 계획에 없던 어딘가를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마주하러 아무 데나 잠시 머물렀다 다시 떠나면 될 일이다. 여기서 곤란한 것은 그 ‘아무 데나’를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점이다.

전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티켓을 끊으면서, 우리는 북해도 각지의 여행정보를 담은 관광안내지(팜플렛)을 잔뜩 들고 숙소로 돌아왔더랬다. ‘내일 어디에 들러야 할까?’는 당면한 중요한 과제였고, 맥주와 함께 나눈 이야기의 결과는 이제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노보리베츠와 도야코이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어디에 머물까 하는 것은 그녀의 큰 관심사였다. 나는 그보다는 맥주를 한 캔이라도 더 마시겠다는 집념을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2. 몰라도 괜찮아 - 미니양 


 일본여행을 꽤나 많이 가봤지만 나도 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하는 건 처음이었다. 기차 안은 여행의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삿포로에서 출발한 기차는 하코다테까지 가는 기차였지만, 고래군과 나는 홋카이도 JR패스를 산 김에 여기저기 내려 보기로 했다. 설국을 가르며 달리던 기차는 1시간 30분을 달려 노보리베츠에 도착했다. 온천과 지옥의 계곡으로 유명하다는 노보리베츠는 유명한 이름에 비해 첫인상은 소박한 느낌이었다. 


‘기차역에 내려 어디로 가야하지? 

버스를 타야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버스를 타면 어디서 내려야하는거지?’


 고래군과 서로 마주보며 멀뚱멀뚱 서 있다가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그냥 따라가 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기차역 앞에 있는 서 있었던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 역시 버스에 오르기로 했다. 버스는 중간중간 안내방송을 해줬던 덕에 무사히 지옥의 계곡에 내릴 수 있었다.  




 


#3. 지옥의 계곡이라고? - 고래군 


 노보리베츠에서 우리가 마주한 풍경은 지고쿠다니(地獄谷). 사실 기차역에서 내리는 시점까지만 해도 난 ‘지고쿠다니’가 뭔지 잘 모르고 갔다. 그냥 ‘어감이 뭔가 유적지처럼 들리네.’ 하는 생각 정도만 머금고 갔던 것이다. 실상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내 관심사는 점심 식사를 위해 구입한 초밥 도시락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강하게 자극하는 유황 냄새, 그리고 ‘지옥곡(地獄谷)’이라는 무시무시한 지명에서 나는 뭔가 낯선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점차 느껴가기 시작했다.

 연녹빛을 띤 물이 부글부글 끓는 지고쿠다니의 첫인상은 귀여운 ‘오니’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한국에서 도깨비의 모습을 묘사하는 이미지가 사실은 일본의 ‘오니’라고 했던가? 확실히 추운 이 겨울 팬티만 입고 있는 뿔달린 뻘겋고 퍼런 녀석들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도깨비’였던 걸 보면 그 말이 맞긴 한가보다.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왜 이곳을 지옥에 비유했는지 알 것만 같다. 결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물이 흐르고, 유독해 보이는 연녹색 대지의 황량함은 처음 이곳에 들어선 이에게 적막한 공포를 느끼게 했으리라. 숨을 쉴 때마다 폐를 가득 채우는 매캐한 유황냄새는 자연스레 죽음과 고통을 숨 쉬는 느낌이다.

 둘러보고 돌아나오는 길에 젊은 일본인 커플이 우리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내민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돌아가게 될까? 

미니양은 황량한 이곳에서 무엇을 생각하나요?

그나저나 저기 보이는 호텔, 온천 물 하나는 정말 끝내주겠는데?     

 






#4. 바빠서 이만 - 미니양 


  버스에 내려 마을 상점가를 지나는 길, 도깨비마을답게 귀여운 도깨비들이 마을 곳곳에 서 있었고,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느낌이 좋았다. 우리나라의 등산로나 관광지입구의 정신없는 화려함을 좋아하지 않는 미니고래 커플에게는 취향에 맞다고 해야 할까? 물론 날씨가 엄청 추운 시기라 관광객들이 많지 않았기에 더 좋은 느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미니양과 고래군은 사람이 붐비는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상점가를 지나 지옥의 계곡을 만났다. 유황이 끓어넘치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계곡에 하연 눈이라니.. 지옥의 계곡이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멀게 아름다운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더 있다면 하루, 이틀쯤 머물다 가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홋카이도 패스 때문에 바쁘게 지내야 하는 하루였기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곳에 가볼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