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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를 찾아서

탄자니아 모시 <셀리그 호텔(Selig Hotel) 루프탑>

by 미니고래

탄자니아의 여러 곳 중에서도 모시(Moshi)를 찾아가게 된 이유는 단순하게 킬리만자로산을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조용필의 노래 때문은 결코 아니고, 예전에 일했던 곳에서 판매한 원두 제품의 이름에 '킬리만자로'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덕분에 정작 본 적도 없는 그 산의 이름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막연히 '아프리카에 가게 되면 킬리만자로산을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이 이미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제 난 아프리카에 와서 머물고 있으니, 게다가 거대한 아프리카 땅을 놓고 본다면 킬리만자로는 나이로비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니, '그래 그럼 가서 한번 보자'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모시'라는 작은 도시를 찾아간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루샤처럼 좀더 큰 도시에서라면 킬리만자로 트래킹이나 사파리 투어(게임 드라이브) 등을 운영하는 여행사가 더 많을 것이지만, 반면 모시에 가면 날씨만 좋다면 킬리만자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땅의 거대함에 비해 멀지 않다는 것이지, 사실 나이로비에서 모시로 오는 길은 한국에서 자라고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는 결코 가깝지도 순탄치도 않았다. 그래도 하루 종일 이동한 끝에 모시에 도착하고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 수 있었다. 모시 시내에서 킬리만자로산을 보기 좋은 뷰포인트가 시내에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셀리그 호텔(Selig Hotel)>의 루프탑, 그리고 다른 하나는 <키보 팰리스 호텔(Kibo Palace Hotel)>의 루프탑이다. 모시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서 시내에서 나름 고층 건물인 두 호텔의 루프탑에 올라가면 시야의 방해를 받지 않고 킬리만자로 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해당 호텔에 묵진 않아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킬리만자로산을 보기로 했다.


일단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키보 팰리스 호텔>로 찾아갔다. 하지만 카운터 직원은 우리가 찾아갔던 그 날에는 저녁부터 루프탑을 오픈한다며, 늦은 오후에 다시 찾아와 달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셀리그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는 시내 중심에서 아주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걸어가기에는 충분한 거리에 있다. (애초에 모시라는 동네가 정말 작다.) 호텔 입구 같지 않은 건물 입구로 들어가니, 1층에 있던 가드 겸 안내 직원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루프탑에 올라가고 싶다고 말하니, 우리에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고층 호텔이라고 했지만 그래봤자 10층도 되지 않는 높이. 금세 꼭대기 층에 도착해서 옥상으로 나가보니 탁 트인 전망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루프탑 레스토랑에는 아무도 없다. 뭐랄까,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 같았다.



인적이 없는 작은 옥상 공간에 플라스틱 의자와 철제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사람은 우리 뿐이다. 아직 문 열 시간이 아닌데 우리를 들여보내 준 건지 아예 문을 닫는 날인 건지 알 길이 없다. 우선은 자리에 앉아서 사람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직원이 오면 그 때 주문을 하기로 하고, 뭐 아무도 안 오면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내려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킬리만자로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랬는는데... 아, 킬리만자로 산이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아주 흐린 것은 아니었지만, 구름이 제법 껴서 산의 아랫부분만 보이고, 윗부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킬리만자로산을 보러 나이로비에서 고생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산을 볼 수 없다니 아쉬웠다. 그래도 어쩌면 구름이 걷히고 킬리만자로 봉우리가 '짠!'하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계속 앉아서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산은 보이지 않았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등장한 직원에게 맥주(2,500 탄자니아 실링)와 수박주스(3,000 탄자니아 실링)를 주문했다. 맥주라도 한 잔 하면 기분이 풀릴 것 같아서였다.



시원한 탄자니아 맥주 한 잔을 마시는 동안, 그냥 모시의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시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읍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규모의 작은 시골 마을의 전경과 거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킬리만자로는 보이지 않아도,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이렇게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계산을 하고 호텔을 내려와서 시내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큰 볼거리가 있는 동네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모시를 걷고 있으니 새삼 나이로비는 아주 거대한 도시처럼 느껴졌다. 걷는 동안 시간은 흘러 한낮이 되었다. 그리고 올려다 본 하늘은 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셀리그 호텔>로 가보기로 했다. 날씨 예보를 보니, 그나마 오늘이 가장 맑은 날이란다. 그래서 '킬리만자로산 보기'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루프탑에 올라갔음에도 여전히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킬리만자로. 누군가 명산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더니, 아무래도 덕이 부족했나 보다. 그래도 다시 앉아서 아까보다는 훨씬 얇아진 구름이 혹시나 걷히지는 않을까 기다려 보았다. 그러다 보니 구름 사이로 산 정상부의 윤곽이 보이는 것도 같다. 기분 탓인 것 같기도 하고 흐릿하니 잘 보이지 않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점심 식사나 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어느 블로그에서였는지 아무튼 <셀리그 호텔> 루프탑 레스토랑 피자가 맛있다는 평가를 본 것도 같아서, 피자와 맥주(2,500 탄자니아 실링)를 주문했다. 피자는 심플하게 마르게리타(8,000 탄자니아 실링).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주문한 피자가 나오지 않는다. 이건 뭐 반죽 숙성부터 시켜서 만드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에야 피자가 나왔다. 따끈한 피자를 한 입 물었는데, 빵이 딱딱하다. 게타가 마르게리타 맛도 아니다. 빵에 케첩과 치즈만 조금 올라간 것 같은, 피자 아닌 피자 같은 음식. 그런데 '이게 뭐야?' 하는 불만이 들기보단 어쩐지 뭔가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마르게리타 피자를 열심히 만들었을 요리사가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 사이에 아프리카 분위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딱딱한 피자도 맥주랑 먹으니 나름 먹을만했다. 물론 다시 사 먹겠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지만.


결국 킬리만자로산의 온전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래도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딱딱한 피자를 먹었던 건 지금도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덕을 조금 더 쌓아 다음에 다시 킬리만자로산 보기에 도전을 해봐야겠다.




- 셀리그 호텔(Selig Hotel)

탄자니아 Lindi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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