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5년 아산서원에서 '천자문과 격몽요결' 수업에서 쓴 글이다. 오래되어 그 진행 방식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천자문과 이이가 저술한 격몽요결(학문공부를 시작한 젊은이를 위한 책)을 할당량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격몽요결은 해당 장을 미리 예습하고 자유주제로 1페이지 레포트를 써야 했다. 아래 글은 격몽요결 제8장을 읽고 쓴 글이다.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 가정을 꾸릴 나이에 가까워진 내게 다시 한번 화목한 집안을 만드는 방법을 상기시켜 준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다'라는 말은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인 '말로 하면 다툼이 생겨나고 행동으로 하면 따르게 된다'라는 말과 통한다. 자고로 어느 집단이든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야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화목한 집안을 꿈꾸지 않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많은 수의 집들은 화목을 가훈으로 삼는다. 하지만 진정 화목한 집안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연예인 부부가 갑자기 이혼하고,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한 한 후보는 모든 게 완벽해서 인기를 끌었지만 후에 집안이 화목하지 못해서 생긴 일로 낙선했다. 또 드라마에서 나오는 가정은 주로 돈 문제로 갈등을 빚어 화목하지 못하다.(이 점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현실이 더 가혹할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화목한 집안을 꿈꾸며 한평생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아버지들은 은퇴 후 집안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치국(治國)을 하는 조선의 왕은 정쟁으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기도 했다. 화목한 집안이 가훈으로 널리 쓰이는 이유는 화목한 집안을 만들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일지 모른다.
격몽요결 제8장 이이의 가르침은 화목한 집안을 만드는 방법과 통한다. 이이는 제8장을 단순히 거가(居家)로 이름 붙였지만, 8장의 내용을 보면 화목한 집안을 위한 구체적 행동 지침으로 가득 차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집안의 가계를 잘 꾸려나가고, 형제가 우애 있게 지내고, 부부는 서로 공경하며, 자식을 잘 가르치고, 재물을 탐내지 않아야 한다. 이외에도 더 많은 행동지침이 있다. 행동지침 중에는 신분제·남녀차별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지만, 이러한 내용을 배제한 나머지 행동지침들은 화목한 집안을 만들기 위한 유의미한 조언들이다.
하지만 모든 지침을 기억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이이가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도 집안에서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이가 내세운 모든 행동지침들이 2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기반하고, 2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언행하면 이이가 말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두 원칙 중 하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다’이고, 다른 하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이다. 이 원칙들을 상술하면 가족에게 자신이 원하는 언행을 기대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실천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하며, 가계와 가족에 있어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잘 지키고 집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적용한다면 화목한 집안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은 모든 이에게 세상 어느 곳보다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장소이어야 한다. 아무리 바깥 일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집에 도착했을 때 마음의 온기를 느끼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크고 작은 갈등이 집안을 흔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집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집을 화목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각자 가정에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물론 이 두 원칙들을 사실 지키기 매우 어렵고, 어쩌면 원칙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화목한 집안이 우리 주위에 많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세상 어느 곳보다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 집이기를 원한다면, 화목한 집안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화목한 집안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