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기획창 408회 '이대남 이대녀'를 보고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가볍게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글을 써놓고 마무리가 되지 못해 발행하지 못한 글이 여러 개 있다.
그러던 참에 좋은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이 영상을 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ghfKiwfD4&t=1s
KBS 시사기획창 408회 '이대남 이대녀'는 20대 남성 3명과 20대 여성 3명이 2박 3일 동안 함께 캠핑을 떠난다. 식사와 산책 같은 일상적인 활동 중간중간 제작진이 준비한 질문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질문은 현재 젠더 갈등이 첨예하게 이루어지는 지점에 관한 것이다. 서로 날을 세우는 지점도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남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은 서로가 가진 다른 생각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프로그램 말미에 각자가 가진 생각이 하나로 모아진 것도 기존의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이 첨예한 젠더갈등의 핵심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그렇다. 젠더 갈등을 풀어나가는 핵심에는 소통이 있다. 소통 없이 자신이 속한 성집단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받은 차별에만 집중하면 젠더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가 가진 어려움을, 그동안 각자가 겪은 차별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야 젠더 갈등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쉽게도 나 또한 이성이 있는 모임이 여럿 있음에도 젠더갈등이 첨예한 문제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한 경험이 거의 없다. 물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혹시라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분위기를 망칠까 또는 내가 혹시 의도와 다르게 말을 잘못해서 갈등이 생길까 우려가 되었다.
그래도 한번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아산서원 때였다. 당시 짐을 옮길 일이 있을 때 운영실 직원 분은 주로 남성 원생에게 그 일을 시켰다. 물론 남성이 할 수 있었지만 항상 짐 옮기는 일이 짐의 무게를 떠나서 남성에게 주어지는 것은 속으로 온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남성, 여성 나누지 않고 일을 함께 하되 무거운 것은 남성이 들고 가벼운 것은 여성이 옮기는 것이 더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일이 짐을 옮기는 것부터 다른 일까지 몇 번 있었을 때 여성 원생 몇 명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는 평온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고 듣는 여성들도 그 부분에 공감해 주었다. 동시에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한 여성 원생은 함께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고 싶으나 과거의 경험 때문에 짐 옮기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학교 MT에서 다른 여성과 달리 무거운 짐을 직접 옮기자 어떤 남학생이 'OO(무거운 짐을 든 여성)은 알아서 잘 드니 도움이 필요 없지'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여성을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일부 남성이 스스로 자신의 몫을 하려는 여성의 의지를 꺾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젠더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녀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과 그 소통에 있어서 단어 하나에 상대를 지레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를 낳는 일이 여성에게 달려있다는 인식을 주는 저출산보다는 아이의 태어남을 뜻하는 저출생이 더 합당한 말이다. 그렇지만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누군가 썼다고 그 사람을 젠더감수성 없는 사람으로 단번에 평가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애초에 저출생을 사용하면 좋았겠지만, 단어에 대해 무지해서 실제 의도와 달리 저출산을 썼다고 무지하고 소통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그보다는 맥락과 전체적 의도에서 해석하며 조금 더 기다려주고 필요하면 설명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짧은 시간의 다큐였지만 젠더갈등이라는 첨예한 문제에 대해 좋은 형식을 사용하여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밀도가 높은 좋은 기획이었다. 이 다큐를 보면서 앞으로 나 또한 좀 더 솔직하게 젠더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내 생각을 고치고 시야를 넓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