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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띠선비 Apr 09. 2023

우리는 너무 늦어버린 건가?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사태에 대한 생각

군 복무를 하며 매일 중앙일보를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 접한다는 점은 좋았지만 보통 신문에 좋은 소식은 별로 없었기에 그걸 읽고 나서 내 감정이나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기 쉬웠다. 그 뒤로 때때로 사회 소식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미 바쁜 일상에 머리 아픈 생각을 추가하기 싫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고 있다.


그러다 이번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출산율 저하 및 인구절벽(22년 합계 출산율 0.78명),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에 관한 100분 토론을 보았고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태에 관한 MBC 프로그램까지 보게 되었다. 출산율 저하와 대일외교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지만 글까지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PD 수첩을 보고 황망하고 기가 막힌 마음에 글을 써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pRbswdw3F90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의 사퇴, 사퇴 원인이 된 아들의 학교폭력 사태에 대한 사실에 대해서 인지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학교폭력 사태의 실상이 어떠했는지, 그 과정에서 정순신 변호사는 어떠한 개입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이번 영상을 통해 그 부분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은 민족사관고 재학 시절 2명의 친구를 괴롭혔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지속적인 언어폭력으로 피해 학생에게 커다란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 이것이 공론화되었고 민족사관고에서는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린다. 교사, 동급생,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되었고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반성은 없었다. 그 결과 전학 처분이 내려진다.


정순신 가족은 이에 반발하여 아래와 같은 조치를 취한다. 학폭위부터, 교육청 학생징계위원회,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전학조치를 막을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 다음 이미지의 출처는 MBC PD수첩 - '검사 아빠 정순신과 학교폭력' 유튜브 영상입니다.


그 결과 대법원에서 '전학' 처분이 정당함을 인정하여 정순신 변호사 아들은 서울 반포고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 사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한 채 학교생활을 해야 했던 피해자 2명은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된다. 이들은 취재 결과 아직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고 현재 민사고 동문들과 연락은 두절되었다고 한다.


가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없이 정순신 변호사 아들은 학교폭력으로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을 확정 짓는 전무후무한 이력을 만들었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3에 반포고로 전학 온 정군은 21년 서울대 정시에 합격하여 서울대 인문대학 철학과에 진학한다. 아이러니하게 졸업식 직후 정군의 학교폭력 기록은 삭제된다. 물론 학교폭력 기록은 졸업 후 2년까지 기록이 의무이나,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와의 화해'가 전제되면 삭제가 심의를 거쳐 진행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전제가 충족되었는지 여부이다. 대법원까지 가며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던 정군이 진심으로 반성을 했는지, 반성을 했더라도 피해자와의 화해를 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큰 의문점으로 남았다.


정군은 주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서울대학교 정시에서 학교 폭력을 이유로 수능 점수 2점을 감점당하며 서울대학교에 합격한다.


정말 이 사태와 그 전모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 부모의 권력과 경제력이 자식의 잘못을 잘못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을까? 물론 학교폭력이라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평생 사회의 변두리를 전전하게 하며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이 온당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적어도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게 하고 더 나은 인격체로 나아가도록 가정과 학교가 이를 도와야 하는데 이 과정이 부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불어 서울대 정시 입시가 수능 100% 전형이기에 학교폭력으로 감점을 받고도 결국의 자신의 실력으로 들어온 것이라는 정군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도 씁쓸하다. 이 입장에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지점은 2가지이다.


하나는 아무리 수능 100% 전형이어도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를 일으켰던 학생에 2점 정도의 아주 경미한 감점을 줬다는 점이다. 2점은 수능으로 따지면 1개 문제에 해당하는 점수이다.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아주 작은 점수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 지성을 길러낸다고 자부하는 서울대가 단순히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뽑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수능점수 100%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그 외 학교생활에 대한 부분도 심도 있게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인문학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학문인 교양(Liberal arts)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에서 단순히 수능 점수만을 잘 받았다고 학생을 뽑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 평가 체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실력에 대한 부분이다. 과연 단 하루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험지로 동일한 시간 동안 시험을 봤기 때문에 수능은 평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수능 시험 당일에 오기까지 서로 달랐을 교육환경(학원, 사교육비, 공부환경)과 부모의 지원과 '실력'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부모의 지원 없이 스스로 교과서 위주의 공부를 해서 과연 수능을 잘 볼 수 있었을까?
(이 부분은 이전에 '공부방 계급론'이라는 글 통해서 다룬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petitseonbi/60


사회가 모든 것이 평등하고 정의롭게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해도 이번 사태는 그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동안 가려진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번 사건을 꼭 반면교사 삼아서 모든 아이들의 교육이 최대한 평등해지기를, 교육에서 있어서 만큼은 기회가 균등히 주어지기를, 부모라는 외적 배경이 아이들의 교육에 그들의 관계에 침투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더불어 극단적으로 부모의 부가 자식의 부와 지식을 결정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온 우리나라에 계층 간 이동성, 기회의 평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서울대와 같은 국립대학교 또는 흔히 말하는 명문대학교에서 정원 일부를 성적과 상관없이 선발하는 실험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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