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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Sep 05. 2023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part.1

숲해설가가 되기 전 나는 회사원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일요일 밤에 개그콘서트 엔딩 음악을 들으며 내일 출근을 걱정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사무실에서 나와 숲에서 일하면서 매일 비슷하던 삶이 조금 달라졌다. 직업 하나 바꾼 것일 뿐이지만, 지금까지 몸 담고 있던 곳과 전혀 다른 환경에 나를 놓는 큰 결정이었으므로 나는 점차 변했다. 어쩌면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자리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 변화는 관심사나 식성처럼 사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가치와 태도처럼 묵직한 것에도 찾아왔다. 숲에서 일한 지 3년을 꽉 채워 간다. 이 시점에서 숲해설가가 된 후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 한 번 짚어볼까나.




1. 온갖 곤충과 동물들을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자리에서 가만히 저 자라는 것에 집중하는 식물들 해설만 하면 편할 테지만, 자연은 어느 한 가지만 똑 떼어놓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수한 생명들이 서로 얽혀 살며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기에 식물을 이야기하려면 곤충과 동물, 버섯과 같은 균류나 미생물까지 모두 놓고 보아야 한다. 특히 곤충은 그 생김새나 습성, 행동양식이 무척이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생물이다. 어린이들이 유달리 좋아하지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인기 만점인, 숲의 셀럽이기도 하다.


그동안 숲을 다니면서 무척 다양한 곤충과 동물을 많이 만났다. 귀여운 녀석들도 있고 무서운 애들도 있다. 그래도 자주 보니 관심이 생기고, 관심 가는 만큼 공부하고 알아가니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서 이제는 그 애들을 손으로 만질 수도 있게 되었다. 잠자리와 가재, 거머리와 놀던 시골아이의 기질이 도시의 텁텁한 공기 속에 갇혀있다가 다시 슬슬 스며 나오기라도 하는 걸까.


아직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곤충이 많지는 않지만, 그 곤충과 동물들을 적어보며 지금 내가 어느 정도쯤 왔는지 발자취를 더듬어 보련다. 잡을 때 느끼는 심리적, 육체적 거부감의 정도에 따라 최상·상·중·하로 난이도를 매겼다.



난이도 下

거리낌 없이 잡을 수 있고, 귀엽게 느끼기까지 하는 정도

- 지렁이와 달팽이, 도토리거위벌레, 밤바구미, 밤나방 애벌레처럼 털 없는 애벌레가 여기에 속한다. 그중 지렁이를 가장 많이 만지는 것 같다. 수업할 때뿐만 아니라 산책로나 포장길 위에서 기어가는 지렁이를 다시 풀숲으로 옮겨줄 때도 많이 만지니 말이다. 요즘 볼 수 있는 박각시나방 애벌레는 성인의 손가락만큼 두툼하고 길어 애벌레 치고는 꽤 큰 편인데, 크기는 커도 털이 없어 만질 만하고 귀엽기도 하다. 오히려 커서 더욱 쓰다듬는 맛(?)이 있달까.

- 매미 허물: 예전에는 아무리 허물이라도 맨손으로 잡기가 꺼림칙했는데, 요즘은 여름이면 나무줄기나 키 작은 나무, 풀을 열심히 살펴보며 보물 찾듯 매미 허물을 찾아다닌다. 가을에 아주 좋은 수업 자료가 되어주기 때문. 담을 만한 통이나 보자기를 챙기지 않았을 때에는 옷 위 여기저기에 브로치처럼 붙여 가지고 오기도 한다.


난이도 中

마음은 조금 불편하지만 잠시 잡고 있을 수 있는 정도

- 작은 거미: 늑대거미나 깡충거미와 같이 땅을 기는 배회성 거미들은 대체로 크기가 작은 편이다. 이런 작은 거미들은 만질 만하다. 너무 작고 가벼워 손에 올려도 별 느낌이 없다. 다만 생각보다 무척 빠르기 때문에 몸 위로 올라가거나 옷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않도록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이 애들은 힘이 굉장히 세고 집게와 뿔이 있어 조심해서 만져야 한다. 허리 쪽을 잡으면 되는데, 거센 발버둥이 손끝으로 느껴져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래 잡고 있기가 꺼려진다. 그래서 가능한 신속하게 채집통에 넣어 관찰한 후 놓아준다.

-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등 가을 곤충들: 가을에 풀밭을 걸으면 메뚜기와 그 친척뻘 곤충들이 여기저기서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어 마리씩은 튀어 오르며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니 가을 수업에는 곤충채집이 필수다. 이 애들은 손이나 채집도구로 기습해서 잡는데, 위협을 느끼면 거무죽죽한 토사물을 토해내기도 하고 가끔은 물기도 한다. 작년 가을 내 손가락을 물었던 메뚜기는 덩치는 작아도 턱 힘은 제법 센지 물린 자리가 따끔했다. 어디로 튈지 몰라 꼭 잡고 있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뒷다리가 떨어지진 않을까, 세게 잡았다가 몸이 눌리진 않을까 겁이 난다. 나도 이런데 잡힌 메뚜기는 얼마나 겁이 날까. 그래서 웬만하면 잡아서 바로 채집통이나 봉지에 넣고 관찰한 뒤 놓아준다.


난이도 上

만지기 전 마음을 다잡거나 속으로는 무섭지만 겉으로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는 정도

- 너무 크지 않은 무당거미: 짝짓기 철이나 산란기에는 예민해지고, 거미들한테도 좋지 않기 때문에 웬만해선 잡지 않는다. 그때쯤이면 몸집도 웬만큼 크고 배도 빵빵해져 나도 무섭다. 아직 물려보지는 않았지만 거미의 공격을 받아 본 동료들에게 들으니 물리면 제법 따끔하단다. 독이 있지만 사람에게 해가 될 정도는 아니라 무당거미는 한 번씩 잡아서 실젖에서 실을 뿜어내는 모습을 관찰하곤 한다. 얘는 크기도 커서 손과 팔 위를 기는 여덟 개의 다리의 압이 전해져 와 짜릿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 뱀 허물: 이건 무섭다기보다는 징그럽다. 무엇보다 위생상의 문제로 손으로 만지지는 않고 나뭇가지를 이용해 든다. 아직 마르지 않은 허물이 있는 곳에는 뱀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채집해 와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관찰한다.

- 잠자리: 어릴 때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날개를 꽂아 잡고 놀던 잠자리를 지금은 눈으로만 본다.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잠자리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다. 실잠자리와 물잠자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잠자리는 본디 날개를 접을 수 없는 곤충이다. 날개를 위로 오래 접어두면 힘이 빠져 회복이 늦거나 날개에 손상이 생길 수 있고, 심하면 날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난이도 最上

아직 못 잡겠고, 앞으로도 그다지 손으로 잡고 싶지 않은 정도

- 큰 거미: 통통하게 살 오른 무당거미나 산왕거미처럼 크기가 큰 거미는 웬만해선 만지고 싶지 않다. 가까이서 보는 거미는 꽤 무섭다. 입 옆에 더듬이다리를 촉수처럼 움직일 때면 괜히 긴장이 된다. 거미는 거미줄 한가운데서 있을 때가 가장 우아하고 멋지다.

- 사마귀: 사마귀는 여전히 무섭다. '당랑거철'이라는 말마따나 이 녀석들은 겁도 없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센 줄 아는 것 같다. 자세히 관찰하려 다가가거나 사진을 찍으려 핸드폰을 가까이 들이댈라치면 재빨리 앞다리를 치켜들며 위협한다. 고개는 어찌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지, 분명 방금 전까지 앞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인간은 할 수 없는 괴상한 각도로 고개를 꺾고는 빤히 쳐다본다. 사마귀의 겹눈을 자세히 보면 검은 점이 작게 박혀있는데, 이게 꼭 눈동자 같이 보인다. 이 검은 점은 사마귀 눈에 맺힌 우리의 상(像)이다. 그래서 움직일 때마다 사마귀 눈이 같이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져 섬뜩할 때가 있다. 손가락 만한 곤충이 이다지도 무섭다니 작은 곤충들은 사마귀가 얼마나 무서울까. (그럼에도 알을 밴 사마귀의 산방을 마련해 주고, 몇 시간 동안 알 낳는 걸 지켜보던 때에는 무섭기는커녕 대견스럽고 기특했다.)

- 매미: 매미라는 녀석은 몸집도 크고 딱딱한 데다 날개도 크고 눈도 크다. 힘도 센 데다 수컷은 시끄러운 소리까지 낸다. 죽은 매미는 만지겠으나 산 것은 영 꺼려진다. 갑자기 괴이한 소리를 우렁차게 내면서 달려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만질 수 있는 것보다 만지지 못하는 곤충과 동물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왠지 머쓱해진다. 그래도 전과 비교하면 제법 담력이 늘고 요령도 생겼다. 3년 동안 이만큼 자랐으니 날이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성장하겠지. 더 많은 곤충과 동물들을 감싸 안고, 그 자체로 사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곤충과 동물들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빙글빙글 웃으며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다.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은 파트를 나누어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파트 2를 궁금해하시는 독자 분들이 계시길 바라며, 어떤 점이 바뀌었나 곰곰 생각해 보아야겠다.




솔박각시나방 애벌레 종령(왼쪽)와 넓적배사마귀(오른쪽)
회색재주나방 애벌레(왼쪽)와 검은다리실베짱이(오른쪽)
달뿌리풀 줄기에서 빼꼼 쳐다보는 우리벼메뚜기(왼쪽. 너무 귀엽다..)와 참매미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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