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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Sep 26. 2023

올해는 토끼 해가 아니라 벌의 해인가

벌쏘임에 대처하는 법

8월 중순 숲해설가 교육에 다녀왔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의 주최로 매년 산림복지전문가들을 위한 보수교육과정이 개설되는데, 의무는 아니나 어쩌다 보니 매년 다양한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는 '디지털 융합 산림복지전문가 역량강화교육'이라는 아리송한 이름의 교육을 들었다. 사실 제보다는 젯밥에 관심을 둔 앙큼한 마음으로 신청한 거였는데, 바로 횡성숲체원에서 1박 2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경치 좋고 물 좋은 깊은 산속에서 동료들과 워크숍을 겸하여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심산이었다.


건강한 재료로 맛있게 만든 ―남이 차려주어 더 좋은― 밥을 매 끼니 배불리 먹고, 청명한 하늘과 짙은 초록의 숲에 둘러싸여 몸 편히 마음 편히 교육을 듣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밤이면 온갖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달빛에 기대어 잠에 들고, 아침이면 폐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쾌청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맑은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두 번째 날 아침, 이 상쾌함과 그윽함을 어떻게든 오래 품고 싶어 룸메이트인 바람 선생님과 아침 등산을 나섰다.


신발을 벗어 들고 흙과 나뭇잎, 나뭇가지와 모래를 발로 흠뻑 느끼며 걷고, 잣나무 숲 안에서는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풍욕을 즐겼다. 조금 더 올라가니 원래 가려던 길이 진입금지 표시와 함께 막혀있어 우리는 그 아래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길섶에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폭이 좁았다. 중간쯤 다다랐을 때 소담스럽게 핀 참취 꽃에 바람 선생님은 그만 마음을 빼앗겼고, 사진을 찍으신다기에 옆을 비켜 드리며 발 디딘 곳에 하필 땅벌집이 있었다.


따꼼!

처음엔 산딸기 가시에 찔린 줄 알고 놀랐는데, 가시로 인한 통증과 다름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몸 여기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따가움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달렸다. 무작정 반대방향을 향해 산길을 되돌아 뛰어 올라갔다. 그제야 몸 위를 전투적으로 기어 다니는 땅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마리는 왼쪽 새끼손가락에 꼭 붙어 아무리 손을 털어도 떨어질 줄 몰랐고, 두어 마리는 배와 어깨, 다리에 붙어 있었다. 주위에서 벌들이 왱왱 거리는 게 느껴졌다. 톰과 제리든 곰돌이 푸우든 벌에 쫓겨 혼 빠지게 뛰어가던 만화 캐릭터들이 떠올랐다. 아마 벌에 쫓기던 내 꼴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결국 그들은 커다란 물웅덩이에 몸을 내던지며 비로소 벌들의 맹공에서 벗어나곤 했는데, 물이라도 있으면 정말이지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아프고 정신없었다. 마치 끝이 예리한 핀셋으로 살을 꼬집어서 반 바퀴 돌린 다음 뽑아내는 듯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벌(Bee)과 벌(punishment, 罰)이 동음이의어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땅벌들은 제 집을 공격한 거대 생명체에 맹렬히 달려들었고, 그 생명체가 사정없이 휘두르는 것 -모자- 에 맞아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사건발생지점에서 10m쯤* 이동하여 모자로 온몸을 후드려 친 지 2~3분쯤 흘렀을까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벌들이 어느 정도 사라졌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분이 안 풀린 땅벌들은 여전히 벌집 근처를 왱왱 날며 보초를 서고 있었고, 나는 바람 선생님이 벌집을 피해 풀숲에 내어준 길을 따라 패잔병처럼 내려왔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개운하고 즐겁던 아침 등산이 중간에 끝나버려 아쉬웠다. 나중에 살펴보니 선생님도 손에 두 방을 물리셨다. 내려오는 길에도 끈질긴 땅벌들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발버둥 치며 목덜미에 한 방, 겨드랑이에서 쫓겨 나가다 또 한 방을 쐈다. 다 쫓았다 생각했는데도 산을 마저 내려올 때까지 두 마리나 몸에 붙어 있었다니 대단한 끈기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아빠에게 들으니 최소 20m는 이동해야 한단다. 원치 않게 거의 매년 장수말벌의 봉침을 맞으시는 아빠는 농부이자 산사람이시다.


도합 열한 방을 쏘였다. 발목부터 다리, 어깨와 겨드랑이, 배와 등, 목뒤까지 골고루. 천연 봉침을 제대로 맞은 셈이다. 침을 쏘면 내장이 딸려 나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꿀벌과 달리 땅벌은 말벌과라 날카로운 침을 여러 번 쏠 수 있다. 그래도 말벌이나 장수말벌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가슴을 쓸었다. 숲체원 내 보건소에 비상약은 없었고 대신 환부에 댈 수 있는 얼음주머니를 주었다. 온몸을 비누로 씻고 나와 동료 선생님이 주신 연고를 바르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냉찜질을 계속했다. 몇 시간 동안은 벌에 쏘일 때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계속되더니 -계속 벌에 쏘이고 있는 것 같았고 옷에 스치기만 해도 벌이 옷 속에 남아 있는 듯 찜찜했다.- 그 후에는 욱신욱신, 벌 쏘인 데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면서 “나 여기 있어요!” 라며 자기주장을 해댔다. 가장 아픈 곳은 새끼손가락으로, 아마도 모세혈관과 신경이 많이 모여 있어 그런 듯했다.


따끔따끔 욱신욱신한 것 외에 별다른 증상은 없었는데, 그날 저녁부터 컨디션이 저조하고 쳐지더니 온몸에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열한 군데로 독이 들어왔으니 이 낯선 물질과 싸워내느라 몸도 어지간히 애를 썼겠지. 평소 약을 멀리하는 편이지만 그날만큼은 해열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통증 다음에는 가려움이 왔다. 벌침이 들어왔다 나간 자리들이 서로 뜨거운 감자를 주고받듯 돌아가면서 무척 가려워 일주일 정도 열심히 긁어댔다.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날 찾은 병원에서 급성기*는 넘어갔으나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니 약을 먹으라 하여 네 번쯤 먹고, 상처에 연고를 바르다 보니 어느새 나았다. 벌을 타지 않는 체질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벌에 쏘인 후 1시간 정도가 급성기라 한다. 벌을 타는 사람은 곧바로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와 호흡 곤란, 두통, 구토, 혈관 부종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벌에 쏘이면 응급처치 후 재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안전하다.


비자 문제로 중국에서 추방당하던 때마저도 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것을 예감했다던 김영하 작가님이 떠오른다. 그와 같은 일종의 직업병일지 모르겠으나, 정신없이 벌과의 사투를 벌인 후 산을 내려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괜찮은 숲해설 재료가 아닌가!' 숲을 다니다 보면 벌은 마주하기 마련이고, 이제 곤충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 경험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참여자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재밌겠다 싶었다. 어디서 읽거나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것이니 더욱 생생하게 전해줄 수 있겠다면서. 이런 이야기 따위를 하며 바람 선생님과 시시덕거렸으니 누가 보면 머리라도 콩 쥐어박을 만하다. 지금은 말끔히 나아서 수업 때마다 경험담을 요긴하게 써먹고 있으니 세상에 정녕 나쁜 경험은 없지 싶다.




내가 쏘인 건 참아내면 그만이라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벌에 쏘이면 못내 마음이 쓰인다. 열흘 전쯤 남동생이 산에서 일을 하다 장수말벌에 손을 쏘였다. 10시간을 내리 앓면서 무척 아팠다던데, 손을 보니 땡땡 부어서 주먹을 쥐어도 뼈마디가 보이지 않아 마치 호빵맨 주먹 같았다. 꿀벌, 땅벌, 말벌, 쌍살벌, 나나니벌 등 온갖 벌들에게 쏘여봤지만, 장수말벌은 쏘일 때는 느낌부터가 다르단다. 뱀에게 물린 줄 알았을 정도라니 내 '땅벌 열한 방'은 댈 게 못된다. 몇 해 전 아빠도 장수말벌에게 허벅지를 쏘이셔서 무릎 위쪽으로 다리 전체가 퉁퉁 부으셨었는데, 나와 동생에게 벌독을 이겨내는 건강한 체질을 물려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동생이 벌에 쏘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수업에서 벌 쏘임 사고가 발생했다. 5학년 아이들과 좁은 산길을 따라 걷던 중, 뒤쪽에서 아이들이 "벌이다!" 라며 외쳐 다가가서 보니 집이 근처에 있는지 말벌로 보이는 벌 대여섯 마리가 땅 위에서 붕붕 날아오르고 있었다. 벌을 발견하자마자 아이들에게 앞으로 재빨리 뛰어가라 외쳤다. 오르막 산길에 계단까지 오르고서 멈춰 벌의 동태를 살폈다. 뒤쪽에서 여자아이들 몇이 느릿느릿 달려오고 있었다. 기분이 쎄했다. 아이들을 확인하는데 벌 한 마리가 따라오는 게 보였다. 또 한 번 냅다 달렸다. 최대한 벌에게서 멀어지는 게 우선이다.


벌들이 있던 곳에서 제법 멀리 온 다음, 벌에 쏘였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그런데 뒤쪽에서부터 "00이가 벌에 쏘였어요"라는 말이 파도처럼 넘어왔다. 맨 뒤에서 두 손을 포개고 걸어오는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선생님들의 숲이름을 듣더니 본인은 '바퀴벌레'라 불러달라 생글생글 웃으며 장난치던 명랑한 아이였다.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띠고는 벌에 쏘였다고 말해서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평소에도 워낙 장난을 잘 치는 아이라 다른 친구들도 믿지 않았단다. "진짜야?" 물었더니 "진짜예요~!" 하며 포갰던 두 손을 열었는데.. 아뿔싸! 한쪽 손바닥이 붉었다. 붉은 부분은 빠르게 진해지더니 벌침이 들어갔던 자리가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물을 부어 환부를 씻어냈고, 다행히 근처에 담임 선생님이 계셔서 상황 설명 후 아이를 인계했다.


분명 수업 전 답사할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앞에 다른 팀도 무사히 지나갔는데, 마침 우리가 지나갈 때 벌들이 나타나다니, 야속했다. 당연히 숲에서 활동하다 보면 벌레 물림, 풀에 쓸림, 넘어짐, 긁힘 등 여러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항상 유념하고 주의하지만, 이렇게 어찌할 수 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자꾸 마음에 걸린다. 저녁이 되어서야 학교 측으로부터 벌 쏘인 아이가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 혹시나 벌을 타는 아이라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오면 어쩌나 걱정하며 보낸 초조한 시간을 쓸어 내렸다.




다른 해보다도 벌이 많이 보이는 요즘이다. 수업할 때 말벌을 만나는 횟수도 작년, 재작년보다 확연히 늘었다. 지난주에는 매 수업 때마다 말벌을 마주했다. 벌을 만나면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멈춰서 벌이 떠나기를 기다리라 배웠으나 말벌이라면 조금 다르다. 영리하고 호전적인 말벌은 영역을 침범하면 죽자 사자 달려든다. 침도 여러 번 쏘니 숲에서 만나면 여러모로 위협적인 생물이다. 벌 한두 방이야 시골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 여러 번 쏘여봤지만, 이번처럼 여러 방을 쏘인 적은 처음이다. 왕창 쏘이고 나니 벌 무서운 줄 이제 알겠다. 벌처럼 춤을 추면서 '우리는 널 공격하지 않을 거야' 라며 설득하기는 힘들 테니 최대한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며 다니고, 알맞은 옷차림과 비상약을 잘 챙긴 다음 숲에 들어가야겠다. 그것이 벌들과 숲을 공유하는 가장 평화로운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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