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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Jul 31. 2023

사랑스러운 나의 일터, 나의 숲터

숲이 일터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지

김포시 운양동 운양 초등학교 옆에는 ‘모담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앞과 옆은 전원마을이라는 아파트 단지로 빽빽이 둘러싸여 있으나 뒤편으로는 우람한 산을 하나 든든하게 업고 있다. 산의 이름은 ‘모담산’, 공원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나무들과 작은 분수, 농구장 하나, 잔디공원이 한눈에 들어와 얼핏 보면 작은 공원 같지만, 그 뒤로는 모담산이라는 자연을 큰 꿈처럼 품고 있는 곳이다. 나의 일터이자 놀이터인 모담산. 나는 숲을 걸으며 사람들에게 자연의 이야기를 전하는 ‘숲해설가’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하는 나의 일터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잔디공원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멍하니 모담산을 마주 보는 걸 가장 좋아한다. 봄에는 오른쪽 언덕에 무더기로 피어난 큰금계국이 훈훈한 봄바람에 날려 노랗게 물결친다. 여름의 문턱을 넘어갈 때쯤, 어쩌면 개나리보다 더 노란 꾀꼬리 한 쌍이 머리 위로 우아하게 날아가는 걸 볼 수도 있다. 모담산은 나이가 어린 산인지 아까시나무가 꽤 많은데, 유월 즈음 주렁주렁 핀 아까시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나뭇잎의 초록이 짙어져 가면 참매미부터 애매미, 말매미까지 온갖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숲과 함께 짙어진다. 그러다 ‘찌르르르르’ 늦털매미 소리가 들릴 때쯤엔 계수나무의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바람에 실려 온다.




자, 이제 산으로 들어가 보자. 열 걸음 정도 되는 나무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가면, 공원에서 보던 것과 다른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초록빛이 깊어지고 새소리와 매미소리가 선명해진다. 숲의 향은 더욱 짙어지고 피부에 와닿는 공기의 느낌과 흐름이 달라진다. 더운 여름에는 숲으로 몇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금세 시원하고 상쾌해진다. 숲속 온도는 도심에 비해 낮아 숲에 들어가면 우리 얼굴 표면 온도가 2~3도가량 낮아진다고 한다. 여름에 온도 차가 많이 날 때에는 10~15도나 차이가 나기도 한다니 무더운 날 숲에 들어가 앉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정상에 배수지가 있어 땅이 축축한 편인 모담산에는 지렁이와 달팽이가 많다. 오전에 가면 가끔 굵직한 지렁이와 떡볶이 떡만큼 크고 통통한 민달팽이를 만날 수도 있다. 숲길 앞 잔디밭에는 항상 지렁이들이 싼 똥이 한 무더기씩 쌓여있다. 동글동글한 흙 알갱이들이 견고한 산처럼 쌓여있는 걸 보면 지렁이의 건축 능력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지렁이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두더지도 나타나기 마련. 맛있는 지렁이를 먹으러 온 두더지가 여기저기 땅을 들쑤셔놓으니 숨은 두더지 굴을 찾는 것도 재미다. 운이 좋으면 두더지가 굴을 파면서 불쑥불쑥 땅을 흔드는 기척을 들을 수도 있고, 뚫린 구멍으로 부리나케 도망치는 두더지의 뒤꽁무니를 볼 수도 있다.


봄에는 새큼한 수영과 괭이밥, 싱아 잎을 씹어 먹고, 여름에는 뱀딸기와 산딸기가 익어 야금야금 따먹는 재미가 있다. 가을에는 신갈, 떡갈, 졸참, 굴참, 갈참, 상수리까지 참나무 육 형제를 모두 만날 수 있어 여섯 가지 다른 모양의 도토리를 줍는 재미가 있다. 도토리나무가 많으니 숲을 걷다 보면 종종 청서를 만나기도 한다. 이 녀석들은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아 가만히 서서 눈으로 좇으면 저도 나뭇가지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곤 한다. 먹는 것에 진심인 청서는 큰 밤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밤나무혹벌혹 속 애벌레를 잡아먹기도 한다. 한참 만찬을 즐긴 후엔 나뭇가지로 만든 둥지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즐긴다.


계수나무 길로 걸어 들어가면 키 큰 나무가 우거지고 땅이 축축해 꼭 밀림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산새들도 조용한 날에는, 빽빽한 나무를 헤치고 슬그머니 커다란 공룡이라도 걸어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다. 나무가 많은 이곳엔 공룡 대신 까치, 박새, 직박구리 등 온갖 산새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가끔은 나무를 타며 드러밍을 하는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도 만날 수 있다. 산책하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지만, 이 길 위에서 직박구리는 알을 낳아 기르고, 박새 새끼가 비행 연습을 하고, 까치들이 깍깍대며 고양이와 대치를 벌이기도 한다. 사람과 동물이 각자 제 할 일을 하며 일상을 어김없이 살아가는 곳. 모두가 평화롭게 나눠 쓸 수 있도록 모담산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놓는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모담산이지만,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사람’ 일 것이다. 2021년부터 모담산에서 사람들과 쌓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대벌레를 발견해서 한 명씩 손에 올려 보았던 길,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에 귀 기울였던 깊은 산속, 초등학생 친구들과 경주하듯 뛰어오르던 숲의 오르막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더지 굴을 파보았던 습지대, 열매를 물감 삼아 보라색 그림을 그렸던 숲 터. 숲을 걷는 걸음걸음마다 즐거운 기억들이 떠올라 미소 짓게 한다. 아름다운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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