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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Sep 02. 2023

나무뿌리와 이빨 뿌리

가끔 만나는 친구보다 자주 만나는 친구와 더 이야기할 것이 많듯 숲도 그렇다. 꾸준히 숲에 오는 아이들은 아는 것도 궁금한 것도 늘어간다.


"선생님~ 마 있어요?" (지난달에 마의 주아*를 맛보더니 의외로 맛도 있고, 산에서 뭔가 채집해서 먹는 게 퍽 재미있었나 보다.)

"여기 뭐가 있어요. 이거 뭐예요?" (나무의 뿌리를 만지며)

"저건 뭐예요? 만져봐도 돼요? 독 있어요?" (말라죽은 나무에 핀 버섯을 보며)

"왜 버섯은 죽은 나무에 피어요?"


사방팔방 퍼져 나가던 아이들의 흥미가 버섯으로 모여들었다. 거뭇거뭇 울퉁불퉁, 나무에 핀 버섯을 보더니 한 아이가 "이건 나쁜 거야" 란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나무줄기에 핀 버섯이나 이끼를 보면 나무를 괴롭히는 나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허락도 없이 다른 나무의 몸 위에 자리 잡고 자라나니 마치 기생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나는 버섯이 나쁘다고 하는 아이에게 되물었다.

"그래? 버섯이 정말 나쁜 걸까?"


버섯은 ‘자연의 청소부’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나무를 가만 보면, 거기서 자라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과 크기의 버섯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죽은 나무에는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틈마다 버섯이 자라나 영양분을 빨아먹고 뻗어나가며 나무를 점점 잘게 부수어간다. 나무는 오랫동안 썩어가며 점점 더 잘게 나뉘고 이내 흙에 섞여 부엽토가 된다. 수분과 양분이 가득한 부엽토 속에서 또 다른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곤충들이 자라난다. 버섯은 식물을 분해해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숲의 한구석에서 아주 조용히, 아주 조금씩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고마운 청소부이다.






아이들과 쪼그려 앉아 버섯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나니 이번엔 그 옆에 있는 ‘나무뿌리’로 관심이 옮겨간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서 흙이 파이자 나무뿌리가 땅 밖으로 나와 버렸다. 땅속에서 나무를 지탱해 주어야 할 뿌리가 밖에 있으니 나무는 흔들흔들, 아이들의 작은 힘에도 흔들린다. 버섯을 달고 죽어가는 나무라 뿌리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아~ 우리 이빨도 뿌리가 약해지면 뽑히는 것처럼 나무도 그런 거죠?"


와우! 이토록 명쾌한 비유라니! 일곱 살 어린이의 말이라고 누가 믿을 수 있으랴. 이빨 이야기가 나오자 여섯 명의 아이들이 마치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서는 지금까지 이가 몇 개나 빠졌는지 내보인다.

”저 6개 빠졌어요. 저번에 이빨 뺐어요!”

“저는 4개요.”

“저는 빵개요. 아~”

귀여운 녀석들. 악어새처럼 입 안을 들여다보고, 뮤지컬 배우처럼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뽕 뚫린 구멍과 새로 돋은 이에 감탄하니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늦가을 하늘을 넘어가는 해가 아이들의 웃음에 와닿아 노랗게 부서진다. 나무뿌리와 우리의 뿌리를 연결하며 우리는 자연과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주아: 마의 잎 겨드랑이에서 생기는 곁눈이 변한 양분덩어리로 씨앗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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