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신 '잡초'로 불리우는 세상 모든 풀들에게
‘밭이나 들판, 바닥에 뿌리를 내리며 사는 풀’이라는 뜻의 바랭이. 요즘 길섶에, 공원에, 작은 틈만 있으면 파고올라와 자라는, 생명력이 엄청 난 녀석이다. 바랭이를 검색하면 ‘제초제’가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 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밭에 바랭이가 피면 달가워하지 않을 만큼 강인하고 질긴 풀. 하지만 바랭이는 잡초라니 말이 못내 억울하다. 그저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하는 거친 땅에서도 나름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힘겹게 자라난 것일 뿐인데.
숲을 공부하면서 ‘잡초’라는 말을 더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잡’이라 함은 ‘자질구레한’, ‘막된’을 뜻하는 말인데, 세상에 자질구레하고 막된 풀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접미사를 가져와 사람한테 붙이면 ‘잡놈’, ‘잡것’이 되어 버린다. 아무데나 접붙일 단어는 아닌 듯싶다.
어릴 때 황대권 작가님의 ‘야생초 편지’를 읽으면서 그동안 무심코 써왔던 잡초라는 말이 얼마나 일방향적이며 폐쇄된 말인지 처음 느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풀은 좋은 풀, 그렇지 않으면 잡초라니. 인간중심적인 가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울타리를 쳐놓고 잡초라는 말로써 밖에 두어 배제하는 것만 같다. 이토록 폐쇄적인 말.
그래서 나는 잡초보다는 야생초, 한자인 야생초보다는 ‘들풀’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그 말은 이른 봄에 튼 새싹같이 풋내가 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냉이꽃같이 한들한들하지만, 그 속에 어떤 고집이 느껴진다.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이겨낸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고집 같은 것이.
'들풀'이라는 말은 아무나 쓸 수 없다. 길을 걷다 스치는 풀에 눈길을 주고 그를 가까이 들여다 본 사람만이 생각해내고 쓸 수 있는 말이다. 잡초라는 말이 널리 퍼져 쓰이는 세상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뜻을 담아 들풀이라 부를 수 있는 마음이란, 어쩌면 바람따라 휘어지는 갈대숲처럼 부드러운 결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