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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Sep 19. 2023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part.4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part.1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part.2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part.3

▲ 위의 글들 다음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4. 채식을 시작했다.


2021년 9월부터 채식을 지향하기 시작했으니 꼬박 2년이 되었다. 사실 채식이라 말하기엔 민망한데, 그다지 엄격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 까닭이다. 덩어리 고기는 먹지 않지만, 선택권이 없을 때면 다진 고기나 육수는 먹기도 한다. 해산물도 먹는다. 사랑하는 치즈는 여전히 멀리 하지 못했고 달걀은 가끔 먹으며, 우유를 거의 끊고 대신 두유를 마신다. 식당에서 어떤 식재료를 쓰는지까지 확인하지는 않지만, 직접 음식을 해먹을 때는 고기가 없는 식단으로 구성한다. 가끔 맛있는 비건 식당이나 베이커리를 찾아가고, 카페에서는 두유를 넣은 라테나 차를 마신다. 다양한 먹거리만큼이나 채식주의자의 식성과 선택 또한 다양해서 채식이 굉장히 세부적인 유형으로 나뉜다는 걸 채식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먹는 종류와 범위에 따라 대략 8가지 정도로 나뉘는 것 같지만, 특정 유형에 속하지 않고 넘나들거나 여러 유형이 섞인 이들도 많을 거다. 애초에 혈액형이건 MBTI건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몇 가지 틀 안에 넣어 설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나는 페스코 비건에 가깝다 할 수 있겠다.



뭔가 그럴듯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채식을 하겠노라'며 시작하기는 했으나 겉으로 볼 때야 그렇고 안에서부터 차근차근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둔 후, 숲해설가 공부와 요가 수련을 시작하니 전과는 다른 사람들이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 가지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면, 회사원일 때는 주변에 채식하는 사람은커녕 육식주의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고기를 즐기는 '고기러버'들이 많았는데, 숲과 요가원으로 주요 활동 장소가 바뀌자 채식주의자나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이들이 주변에 점차 많아졌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통해 채식하는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만의 신념을 위해 욕구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그들이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만 할 뿐 내가 저런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정확히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는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이 트리거가 되어 마음을 잡고 시작하긴 했지만, '채식'은 수년 전부터 마음의 숙제이자 짐 같은 거였다. 환경과 동물에 대한 관심과 마음씀이 많고, 그만큼 환경보호와 동물보호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먹을 것'에서만큼은 차마 양보하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공장식 축산업으로 인해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등 많은 동물들이 비참하게 한 생을 살다가는 것을 앎에도 치킨, 족발, 곱창 같은 것을 먹을 때는 애써 외면했다. 찜찜함과 죄책감으로 뒤섞인 고약한 현실의 맛을 자극적이고 강한 양념 맛으로 덮으려 했다. '아무튼, 비건'을 모바일 서재에 다운로드하면서 생각했다. '이제는 피할 수 없겠구나. 직면할 때가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속절없이 채식을 시작하게 될 거란 걸 느꼈지만, 개학 전날까지 미루고 미뤄둔 여름방학 숙제처럼 마음 한편을 묵직하게 내리누르던 불편한 진실을 이제는 바라보아야 했다. 그렇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 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채식의 세계에 살포시 발을 담갔다. 안녕, 나의 육즙 가득했던 생활이여.






채식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 몇몇 친구들은 무척 의아해했다. 고기뿐 아니라 먹는 걸 엄청 좋아하고 뭐든 잘 먹는 나를 알기 때문이다. 고깃집에 가면 갈빗대에 붙은 살점까지 야성적으로 뜯어먹고, 설렁탕이든 뼈해장국이든 고깃 국물은 남기면 안 된다며 뚝배기를 들고 '완탕'을 하고야 말며, 발라먹은 치킨 뼈를 보았을 때 이것이 후라이드였는지 양념이었는지 모를 만치 성실하게 먹는 사람. 먹는 걸 좋아하기에 고기도 최선을 다해 먹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 채식은 어려울까, 아니면 생각보다 쉬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그리 어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음식 선택의 폭이 줄긴 했지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먹성 덕에 그 안에서 충분히 다양하고 맛있게 즐기고 있다. 전보다 생선을 더 자주 먹게 되었으며 두부를 굽고, 으깨고, 짜는 등 여러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다. 감자, 옥수수, 고구마, 단호박 등 구황작물로 한 끼를 건강하고 든든하게 채우는 날이 늘었다. 채소나 과일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먹고, 가끔은 쌈채소에다 당근, 우엉, 연근 따위의 뿌리채소를 싸서 채소쌈을 먹기도 한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매 끼니 고기를 먹어야 한다거나 고기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불판 위 고기보다 그 옆에서 익어가는 버섯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나물과 장아찌인 사람인터라 고기를 포기하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신기하게도 채식을 하겠다 마음먹고 나니 고기가 그리 당기지 않았다. 치킨을 좋아하는 반려인이 앞에서 닭다리를 맛있게 뜯어도 흔들림 없이 밥에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피자에 올라간 베이컨과 페페로니, 떡볶이에 들어간 소시지도 흔쾌히 양보했다. 그러나 고기 금단 현상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입에서 고기를 금하자 눈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도 가끔 먹방 영상을 보긴 했지만, 고기를 끊은 후로는 치킨이며 곱창, 햄버거, 라면 등 온갖 먹방 콘텐츠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볼이 터질 정도로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아귀아귀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기 먹는 영상을 소비하는 것도 육식과 다름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식 영상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 크리에이터들이 더 많은 영상을 생산하려 할 테고 그에 따라 동물들이 더욱 많이 희생될 거라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는, 지극히 경영학도다운 생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먹방 영상을 보는 게 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점차 시청 빈도가 줄어 지금은 무척 배고플 때에만 찾아서 본다. 해산물 먹방, 떡볶이 먹방 위주로.





채식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메뉴를 고를 때, 아무래도 먹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는 내가 그들은 신경 쓰이기 마련이라 감사하게도 자주 배려를 받게 된다. 동료들과 회식을 한다거나 가족과 외식을 할 때에도 고깃집보다는 해물요리 전문점이나 다양한 메뉴가 있는 곳에 가는 경우가 많다. 메뉴 선택권이 나에게 올 때가 왕왕 있고, 식사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모임 ―이를테면 뭐든 괜찮으니 번거로운 메뉴 선택을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유형― 에서는 나서서 여러 식당 후보들을 찾아 올리곤 한다. 식당마다 비건 메뉴가 있지는 않아도 어떻게든 내가 먹을 것들은 있다. 하물며 그곳이 고깃집이라도 말이다.


채식을 시작한 바로 다음 날, 동료 선생님이 밥을 사시겠다 해서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 장소는 무게가 아니라 한 판 단위로 파는, 제대로 고기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소고기집. 이럴 수가. 시작하자마자 시험에 들게 생겼다. 아직 동료들에게도 바뀐 나의 식성(?)에 관해 말하지 못했는데... 걱정하면서 얼떨결에 음식점에 따라 들어갔다. 눈앞에서 구워지는 소고기는 매력적이었지만, 이왕 마음먹고 시작한 거 흔들림 없이 지켜가고 싶어 소고기의 향연 속에서 홀로 된장찌개에다 밥을 먹었다. 기분 좋게 한턱 쏘는 동료가 미안해할까 봐 차마 '이제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말 못 하고, 그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쉬지 않고 젓가락을 움직이면서, 가끔 고기를 뒤집기도 하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부지런히 어필했다.

 

나와 가장 자주 식사하는 반려인은 고깃집, 곱창집, 치킨집을 간 지 오래다.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는 무던한 입맛의 소유자이지만, 가끔은 고깃집에서 구운 고기가 먹고 싶진 않을까 싶어 여러 번 물어보았으나 언제나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이따금 집에서 고기나 햄을 구워 준다. 부부의 식성은 닮아가는 건지 아니면 요리사의 취향에 어쩔 수 없이 물들어 가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반려인의 식성도 조금 변하고 있다. 몸을 이루는 음식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좀 더 건강하게 먹게 되었달까. 콜라를 거의 끊었고 최애 간식인 초콜릿도 줄였으며, 무엇보다 매일 마시던 카페모카를 카페라테로 바꾸었다. 건강한 변화가 아주 보기 좋다. 더불어 고기 없는 밥상도 맛있게 먹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주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배려와 이해 덕분에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견지하며 살 수 있는 것 같다. 티끌 같은 나의 노력이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쁘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믿음으로 앞으로도 쭉 채식을 지향하고자 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하루하루 조금씩 해나가는 작은 것들의 힘을 믿는다. 작은 힘들이 모여 결국은 세상을 바꿀 지렛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






#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시리즈를 마칩니다.

'달라진 점'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으니 이야기보따리에 적당히 쌓이면 그때 또 이곳에 풀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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