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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Dec 14. 2023

숲해설가들은 겨울에 뭘 할까?



겨울에는 나무들도 풀들도 겨울잠에 든다.

한해살이 풀은 날이 추워지기 전 서둘러 씨앗을 퍼뜨리고 생을 마감하여 기꺼이 다른 생명들의 밑거름이 되어준다. 나무도 우수수 잎을 떨구고 최소한의 생명 시스템만을 가동한 채 가만히 겨울의 차가움을 이겨낸다. 가을을 수놓던 곤충들은 찬바람이 불기 전에 죽거나 낙엽 아래, 땅속, 나무줄기 틈처럼 저마다의 안식처에 몸을 숨긴 채 봄을 기다린다. 갈색과 조금 더 짙은 갈색, 그리고 그보다 더 옅은 갈색의 단조로운 색채로 겨울은 이내 뒤덮이고 만다.


하나 인간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계속 일을 해서 자본을 충당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숲해설가들도 마찬가지이나 중요한 건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언제든 아낌없이 주는 조력자들이 겨울이면 잠을 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듬해 봄을 준비하는 나무와 풀을 살펴보고, 동물의 자취, 겨울을 보내는 곤충의 흔적을 찾아보는 활동을 사람들과 함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숲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자연 생태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아닌 이상 추운 겨울에는 누구나 따뜻한 공간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거다. 실제로 날이 추워질수록 출결에 변동이 생기는 일이 잦고, 무료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노쇼가 늘어난다.


그리하여 매해 겨울 찾아오는 계약만료.

겨울숲과 자연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밖으로 나오게 하기엔 역부족인지 숲해설가들에게는 강제로 겨울 방학이 주어진다. 개학일이 정해지지 않은 방학. 그저 방학이라면 좋겠다만, 이후의 거취를 기약할 수 없으므로 마치 애벌레로 겨울을 나는 곤충처럼 헐벗은 듯한 상태로 겨울을 맞는다.


그동안의 글에서는 숲해설가로서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 성취와 같이 긍정적이고 희망찬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이번에는 그 이면을 살짝 들춰보려 한다. 어떤 직업이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공존하기 마련이니. (사실 직업뿐 아니라 세상만물이 다 그러하듯 말이다.)




숲해설가로 활동하는 건 정말이지 보람 있고 기쁜 일이다. 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도 있다. 여러 경험이 쌓이고, 자연과 생태계에 관해 공부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많은 좋은 점들이 있지만 직업으로써 치명적일 수도 있는 단점이 있으니, 바로 고용불안과 낮은 급여 수준이다. 숲유치원이나 사설 숲학교 등의 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으나 많은 산림복지전문가들은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무기계약, 1~2년의 계약도 있고, 1년이 채 되지 않는 단기 계약도 있다.


농부가 계절에 맞춰,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맞춰 일하듯 자연이 일터인 숲해설가들도 계절에 따라 일한다. 보통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일을 시작하고, 늦가을이 되면 지는 낙엽을 따라 우리의 일도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단기 계약은 보통 2~3월에 시작해서 11~12월에는 만료되는 경우가 많다. 조건이 맞으면 실업급여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좋은 건 역시 실업 걱정 없는 일자리의 보장이다.


불안정한 고용계약이 많다는 걸 앎에도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했으나 멀리 떨어져서 짐작하는 것과 그 안에서 직접 겪는 것은 다르다. 이제까지 채용전환형 인턴과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만 경험해 본 터라 매년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이 생활이 불안하고 녹록지 않은 건 사실이다. 물론 매번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고 조금 더 유연한 직업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생각보다 한 해는 빨리 흐르기 마련이라 즐겁게 일하다 보면 금세 일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돌아온다.




그렇다면 숲해설가들은 일이 없는 겨울에는 뭘 할까?

겨울에도 수업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계약만료나 방학 등으로 쉬어 가는 이들도 있을 거다. 그 기간 동안 다른 숲해설가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쉬는 동안 하는 일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로 나뉘는 것 같다.


쉰다.

그렇다. 말 그대로 쉰다. 방학이다 생각하고 쉰다. 휴일의 가장 좋은 점이라 할 수 있는 늦잠도 자고, 하루종일 집에 있기도 한다. 편안한 옷을 입고 건강한 밥을 차려먹고 기분에 따라 잔잔한 음악,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집을 정리하고 가벼운 산책을 한다. 편안히 누워 반려견을 쓰다듬는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한다.


취미생활을 한다.

쉬는 동안에는 글을 쓰는 데 더욱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읽고 싶던 책들을 마음껏 읽는다. 운동을 하고 평소에는 잘 챙기지 못했던 루틴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진지한 취미가 있어 올 겨울에는 그것에 집중하려 한다. 몇 달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한 도막을 통으로 낼 수 있으니 취미생활일지라도 제법 집중하여 깊게 경험할 수 있다. 숲해설만 하며 지내는 것도 좋겠지만, 일이 없는 공백기와 낮은 급여를 고려할 때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때 이 공백기를 잘 이용하면 좋다. 이 시간에 공부를 한다거나 자격증을 딴다거나 다른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는다면 자기 계발을 통해 나름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문드문 들어오는 일을 한다.

겨울에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더러 있다. 실내수업을 한다거나 계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생태체험을 진행하는 곳들이다. 보통 일회성의 특강 형태지만 주기적으로 숲체험을 하는 단체도 있다. 그런 곳과 연결되어 의뢰를 받으면 드문드문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있는 것은 아니며 횟수도 많지 않다.




가끔 지인들이 묻곤 한다.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 중인데 나와야 하는지 있어야 하는지.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처한 사정도 다르기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어 나는 대체로 이런 말을 그들에게 전한다.

어떤 일이든 좋은 부분이 있으면 안 좋은 부분도 있기 마련이니 일을 하면서 좋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더 크거나 클 것이라 기대되면 계속 가는 거고, 아무리 애써봐도 안 좋은 부분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는 날들이 계속된다면 그때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라고.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비교적 안정적이라 여겨지던 회사에서 나와, 계약직과 프리랜서 그 어디쯤에서 적은 보수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정규직이라는 안전함과 적당한 임금을 보장하는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대신 조금은 불안정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걸 택했다. 그 선택에서 오는 안 좋은 점들이 있다면 그것도 내가 감안하며 껴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상회할 만큼 좋은 점들이 더 많아지도록 스스로가 노력할 거란 걸 알기에, 믿기에, 조금 더 자신 있게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다. 가끔은 회사 다닐 때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이 좋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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