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우연히 기회가 왔고 용기 있게 기회를 잡았다. 그후 어찌저찌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다양한 나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의 나는 가만히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한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행복하다. 교무실에서도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거의 없다. 사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먼저 장난을 걸지도 않는다. 늘 소란스러운 교무실에서 나는 늘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일한다.
또다른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수업할 때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 집중할 때 즐겁다. 아이들이 모르는 걸 물어보면 온힘을 다해 알려준다. 같이 근무하는 교사들이 자식 입시 상담을 요청하면 앞뒤 안가리고 상담한다. 남이 모르는 걸 알려주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다.
세 번째 나는 인정 투쟁의 나다. 나는 인정 받고 싶어한다. 인정 받기 위해 자료를 만들고, 자료와 조언, 상담에 대해 상대방이 고마워 할 때 기쁨을 느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인정 받기 위해 열심히 산다고 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외부 학교 강의는 첫 번째 나와 두세 번째 내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남이 모르는 걸 알려주는 기쁨과 거기서 비롯된 인정의 달콤함이 좋다. 그러나 남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쏟아 내는 행위는 편하고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강의 전까지 괜히 잡았나 후회하고, 청중들을 보며 기뻐하고 ,강의에 대한 피드백에 행복해 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까마득히 아래로 내려온다.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는 셈이다.
일반적인 교사가 외부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학교에서 고3 담임 교사로서, 세 개의 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교과 교사로서, 학년부서에서 입시 정보를 담당하는 업무 교사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 와중에 저녁 시간, 수업 없는 시간, 시험 기간을 이용해 외부 강의를 다닌다.
밖에 나가 강의를 하려면 안에서 잘 해야 한다. 그냥 한 명 몫만 하면 눈치가 보인다. 몇 명 몫은 해야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간다고 붙을 리가 없다. 그래서 외부 강의를 나가기 위해 내 역할에 두세 배 에너지를 쓴다. 외부 강의를 가서는 학교 안에서의 에너지보다 두세 배의 에너지를 쓴다.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그래서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자투리 시간, 나 혼자만의 시간에 에너지를 보충해야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다. 지금도 그러하다. 인근 중학교 강의를 마치고 와서 몸과 마음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길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다.
한 달에 두세 번 있는 외부 강의는 나에게 심해 탐사와 같다.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매고 오리발을 차고 수경을 쓴다. 그리고 잠수. 숨도 가쁘고 에너지도 필요하다. 어둠 속을 더듬는다. 뭔가 잡히는 날도 있다. 아무 것도 아닌 날도 있다. 그리고 다시 수면 위로. 깊은 바닷속을 들어가면 곧장 수면으로 오를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의가 끝나고 나면 음악을 들으며 차분하게 현실의 나로 돌아오는 시간을 갖는다.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외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련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길,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생의 여정이 펼쳐치겠지. 그 또한 즐거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