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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Dec 31. 2019

2019년 끝자락, 유튜브를 시작했다

2020년이 기대되는 지금

너 유튜브 한번 해보면 어때?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친한 친구가 나에게 큰 제안이라도 하듯 비장하게 문자를 보낸 건 2018년 12월이었다.


11월에 뉴욕에 놀러 와서 3박 4일 수다를 떨고 돌아간 어느 날, 마치 나의 발전 가능성을 냉철하게 고민한 듯 내가 유튜브를 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댔다. 넌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늘 찾아보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니까 그런 걸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오빠도(그녀의 남편) 너 유튜브 하면 잘할 거 같댔어."라며 나름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 결과임을 밝히고 적극적 의사 전달에 종지부를 찍었다.


뭐래.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 도전해 본다는 유튜브. 초등학생 장래희망에 유튜버가 등극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화면에 나오려면 다이어트부터 해야 하고, 편집도 배워야 했다.


날 생각하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때는 학교 다니느라 매일 과제에 치여 잘 시간도 없었다. 일단 학교나 끝내고 보자고 했지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2019년이 오고, 봄에 학교를 졸업한 후 시간이 많아졌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를 생각해 온 친구와 몇 번 영상을 찍어보긴 했지만 그걸 편집해서 올리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3분짜리 영상은 수많은 사진들 뒤로 밀려나며 잊혔다.


2 만에 한국에 가면서, 여행 영상을 찍어 보겠다며 아이폰에 부착하는 광각렌즈와 대용량 하드 드라이브까지 챙겨 갔지만  보지도 못하고 짐만 됐다.


그렇게 1 가까이 할까말까 생각만 하는 내게 구독자 25만이 넘는 유튜버 이웃이 생겼을  하늘에서 선물을 보낸  같았다. 이제는 시작해 보라고 유튜브 신이 요정을 보냈지만, 아래층에 유튜버가 산다고 나도  시작할  있는  아니었다. 그녀의 영향력이나 유명세에 편승해선 안된다는 마음도 컸다.


나만의 채널을 시작해 오래 지속하려면 내가 영상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지는 게 가장 중요한데, 나는 편집도 못하고 검색도 구글이나 네이버로 하는 게(요즘 사람들은 검색도 유튜브로 한다던데) 훨씬 편했다.


Long story short,


유튜버 썸머썸머의 영상에서 위층 언니, 라라 언니로   언급이  이후  채널에 구독자가 생겨버렸다. 한두 분도 아니고 26분이나  채널을 구독하시게   왠지 마음이 급해져서 연습으로 찍은 영상을  편집해 이틀 만에 올리기에 이르렀다. 지나가는 말로 12 내에 영상 하나 올리면 목표 달성이라고 썸머에게 말한지 불과 일주일도   시점이었다.


첫 영상에서 한 말 중 "이렇게 유튜브를 시작하나 봅니다."한 게 이 모든 상황을 함축한다.


영상을 하나 올려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편집이 어렵지만은 않았고(편집은 나의 가장 높은 진입장벽이었다), 무엇보다  손을 통해 하나의 영상물이 탄생하는 과정이 꽤나 짜릿했다. 그동안 인스타 사진을 찍으며 쌓인 노하우, 글쓰기를 하며 배운 스토리텔링, 예능을 보며 관찰했던 프로듀서와 연기자의 재능까지, 그야말로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능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유튜브 영상제작이었다.


한때 PD 방송 작가를 꿈꾸던 내가  없이 창작욕구를 불태울  있는 놀이터가 생기니 혼자 놀기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눈뜨자마자 앉아 편집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갔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n4h-c0n5cOQgk37wHJMMKA?view_as=subscriber

너무 급하게  영상을 올린  같아 "원래는 이런 식의 영상을 올리려고 계획한 채널입니다."라는 의미로 다음 영상을,  다음 영상을 올리다 보니 그동안의 할까 말까 하던 열정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2주간 4개의 영상을 올렸다.


10월과 11월을 불태웠던 나의  브런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나에겐  사이 늘어난 글과  글을 읽어주시는 소중한 독자분들이 계시고, 따끈한 유튜브 채널이 있다.  년간의 소중한 사진이 쌓인 인스타그램도 있다.


내년, 내후년에 "그때 그걸 하길  잘했어"라고 할만한  하며 지금을 사는  삶의 목표인 내가 최근    가장 치열하게 보낸  달이었다.


한동안은 영상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낼 것 같다.




키워드로 보는 나의 2019년


1. 불면증

2019년 1월에 세웠던 가장 큰 계획은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도 아니고, 새벽 5시 전에는 잠들어 낮 12시 전에 일어나는 게 올해의 목표였다. 타고난 올빼미 인간이라 신생아 때부터 낮에 하루 종일 자고 밤만 되면 말똥말똥해져 엄마를 밤새 괴롭혔단다. 낮에 곤히 자는 아기를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던 난, 고질적인 저녁형 바이오리듬 때문에 평생 학교생활도 회사생활도 힘들었다.


미국에선 한국 시차로, 한국에 가면 미국 시차로 살았는데, 지난 몇 년간 부쩍 심해진 불면증 때문에 3년 넘게 매일 아침 해 뜨는 걸 봐야 했다.


의사 처방받은 수면제도, 멜라토닌도 와인도 소용없는 지독한 불면증이었다. 고독한 나날이 이어졌다.


이런 크고 작은 건강상 문제들 때문에 늘 '잘 사는 것'과 '몸이 좋아지는 것'에 관심이 많아 수시로 조사하고 공부하며 새로운 걸 알아간다.


작년 말, 어느 책을 통해 밤낮이 바뀌는 게 인간의 면역력과 컨디션에 최악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초저녁부터 온 집안 불을 끄고 핸드폰도 거실에 둬가며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밤에 잠들었다. 그렇게 한 달간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을 유지한 후 2019년을 맞았을 때 올해 계획은 딱 한 가지였다.


딱 일 년만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자.


올해는 미국과 시차가 반대인 한국에 가서 두 달 넘게 지내다 왔지만 쭉 유지했고 이제 12월의 끝이니 그 계획은 거의 완벽하게 달성했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분명 어느새 새벽 4~5시까지 깨어있게 될 것이다. 매일매일 주의를 기울여야 하니 평생 운동하듯 노력할 예정이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하루가 길고 활기가 넘친다. 낮시간을 온전히 활용하니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하루가 알차다. 지난 학기만 해도 저녁 5시에 시작하는 수업에 맞추기 위해 간신히 일어났을 만큼 생체시계가 망가져있었고, 늘 컨디션이 나빴다.

불면증 약 이외에 시도해 본 것들 중 가장 효과적인 건 몸의 긴장을 밑으로 내리는 것이다. 나는 자려고 누우면 머리와 목, 어깨가 긴장되는데, 그럴 때 무릎으로 숨을 쉰다고 생각한다. 무릎과 정강이로 호흡한다고 생각하며 느껴보다 보면 어깨와 목이 느슨해지며 잠에 든다. 처방 수면제에 와인을 마시고 누워도 아침 11시까지 말똥말똥하던 내가 이렇게 잠에 들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적이다.

좋은 일이 많았던 2019년이지만 그중 최고가 불면증을 고친 일이다. 아마 고질적인 불면증에 시달려 본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2. 문예창작과 졸업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를 한번 제대로 배워보자며 학원도 아니고 (굳이) 대학교 학사과정에 들어간 게 33살의 일이다. 헌터 칼리지 영문학과에 들어간 지 한 학기 만에 문예창작으로 전공을 정한 뒤엔 창작의 고통에도 시달렸다. 휴학도 한번 했고, 이 정도 했으니 이제 석사에 들어갈까 하며 여러 번 그만두려고 했었다.


미국에서 오래 공부한 친구들은 대부분 석사가 더 쉽다고 할 정도로 미국 대학교 학사는 매일매일이 과제와 시험과의 전쟁이었다. 수업은 세 시간짜리 숙제 검사 같을 정도로 수업시간 이외에 해야 할 일이 넘쳤다. 전투적으로 학교를 다니다 보면 학기가 끝나 일주일은 나가떨어질 정도로 체력전이었다.


언젠가 석사를 하더라도 학사 단계에서 다루는 고전과 배경지식을 제대로 쌓고 싶다는 고지식한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결국 내 발등 찍었다며 후회가 막심했다. 어떻게든 끝을 보자며 도를 닦는 마음으로 다니다 보니 영영 안 올 것 같던 졸업이 왔다. 성적도 잘 나와서 언젠가 석사과정에 가고 싶어 지면 (전보다) 선택의 폭이 넓을 것 같다. 다닐 땐 힘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학교에 갈 결정을 하고 고군분투한 내가 기특하고 감사하다.


마흔 살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잘했다, 고맙다' 하게 하려면 지금 뭘 하며 또 바쁘게 지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3. 한국 방문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서 여름을 보냈다. 한국의 여름은 뉴욕보다 습하고 더워서 걱정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가족들과 여행도 하고, 버킷리스트였던 삿포로 맥주 축제에도 다녀왔다. 호텔에 묵으며 서울여행도 했고, 남편이 입양되기 전에 살았던 집도 찾았다.


몇 년간 생각만 했던 '가족들에게 요리해주기'도 실행에 옮겼다.


외국에 사니 부모님께 내 손으로 식사 한번 차려드릴 기회가 없다. 다른 때는 한국에 가면 뭐가 그리 바쁜지 석 달을 있으면서도 가족들에게 요리해 줄 시간 한번 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엄마 음식을 실컷 먹고만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이번엔 미국에서부터 한국 가면 만들 음식 리스트를 정해서 갔다. 부모님께 처음으로 내 필살기 요리를 맛보게 해 드릴 수 있어 뿌듯했다.


어렸을 땐 내가 커서 성공하면 세계일주도 보내드리고 집도 차도 사드리고 하는 거창한 꿈을 꾸곤 했는데, 이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찾는데 더 집중한다. 지금 내 능력껏 드릴 수 있는 용돈과 지금 내가 사 드릴 수 있는 것들이 더 의미 있다. 엄마 아빠 흰머리 염색을 내 손으로 해드리는 것도 계획이었는데 그것도 하고 올 수 있어서 부모님도 좋아하셨고 나도 행복했다. 


4. 브런치

학교 졸업과 동시에 가장 집중했던 건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일이었다. 작년 여름 브런치를 시작하고 내내 했던 생각이, 졸업하고 여유만 생기면 내가 브런치에 글을 훨씬 많이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거였다.


더 쓰고 싶고, 더 표현하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다.  


올해는 얼떨결에 처음으로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도 참여해보며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써 봤으니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책 출간의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 내 차례도 오지 않을까?


이 글을 2019년의 마지막으로 올리며 글 수가 50개로 채워진다. 딱 떨어지는 숫자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다. 다른 작가분들은 글이 100개도 훌쩍 넘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나도 분발해야겠다.


참 좋았던 2019년이 가고 2020년이 온다. 딱 떨어지는 숫자가 벌써부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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