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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챗쏭 Mar 30. 2020

떠날 수 없는 일상 속에서의 여행이란

남편 작가, 여행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 아내 사서, 사색하기 좋은 도시

누가 이런 잔인한 이름을 지었을까.

절박한 현실을 말속에 감추어두려고 무척 애쓴 이 말이 점차 입에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여덟 글자, 세 단어 속에서는 그 무엇도 '떠남'을 막아서지도, '여행의 낭만'을 깨뜨리지도 않지만 지금 우리는 쉽게 떠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일상의 나들이도 눈치 보이고 봄날의 햇살을 쬐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만 할 것 같은 이때, 나는 '여행책' 두 권을 손에 들었다. 그것도 출퇴근용으로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나는 어쩌자고 떠날 수 없는 이때, 떠남을 자극하는 이 책을 만났을까.


아직 봄햇살이 창가에 채 닿지 않은, 지난 2월.

나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동네책방 '책이는 당나귀'에 들렀다. 가로세로가 한눈에 모두 담기는 작은 책방. 큰 걸음으로 세발이면 이끝에서 저 끝에 가 서있을 수 있는 공간에 온통 책으로만 가득 찼다. '책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했지만 서점의 책장은 한쪽 벽만을 채웠을 뿐인데. 나는 그 공간 전부가 책의 공기로 가득 찬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주인장 내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의 느낌은 더욱 강렬했다. 왠지 이 분들과 책 얘기로만 시간을 모조리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이 커피 있는 곳에 가면 가장 먼저 커피 향을 맡듯, 빵 좋아하는 사람들이 빵집에 가면 가장 먼저 고소 달콤함 빵 냄새에 빠져들듯,

아내와 나는 주인장 내외의 첫인사도 설렁 지나쳐 놓고는 책장에 바짝 붙어 섰다. 그중 한 칸. 아내는 이렇게 이 두 권의 책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여기 작가님(책이당 주인)과 사서님(아내분)이 각각 쓰신 책이야. 어때 멋지지"


우리는 책 앞장을 펼쳐 들고는 부탁드렸다.


"저희 여기에 서명해서 주시면 안 될까요?"


아내의 책을 먼저 읽을까, 남편의 책을 먼저 읽을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나는 출근 때는 남편의 책을, 퇴근하고는 아내의 책을, 조금 더 긴 시간이 났을 땐 남편의 책을 조각 시간이 났을 땐 아내의 책을. 그렇게 두 권을 오갔다.

두 권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 꽤 됐건만 나는 여전히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한 채로 이 두 권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감상을 쓰고 있다.




남편의 책은 이 책을 소개하는 그의 아내의 메모처럼, "대체 여행이 뭐길래 우리는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것인지, 여행의 본질을 정의하는" 그런 책이었다. 자기의 알을 깨고 나와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여행기. 남편 작가는 이 책에서 수많은 여행의 경험을 통하여 여행의 속살 깊은 곳을 만나게 한다. 잘 싸인 여행 트렁크를 들고 네모 반듯한 여권과 잘 프린트된 항공권을 손에 쥔 채로 깨끗한 공항을 떠나며 시작하는 여행. 남편 작가의 여행기는 이것과는 다르다. 복대 깊숙이 넣은 비상금, 캐리어 속의 온갖 노하우로 집약된 테트리스 짐 싸기, 온갖 연필로 줄 그어지고 메모가 붙은 '론리 플래닛' 같다고 할까. 길 위의 우리에게 긴요할 여행의 경험이 그의 생각과 통찰력으로 풀어져 있다. 눈으로 보고 즐긴 것에 머물지 않고, 바람을 느끼고 그들의 삶과 함께 숨 쉬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지긋이 보낸 시간마저 우리의 여행임을, 그는 새삼 느끼게 했다.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 우주비행사 제임스 러벌은 말했다.

'지구를 떠나보지 않으면 우리가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 참모습이 보인다. 숲 속에서는 나무만 보일 뿐 숲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비행기에 오른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위해서."(여행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 186쪽)


"뇌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야 활성화되는 부위가 있다. 일명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 불리는 이 부위는 통찰력과 창의성을 높여준다. 결국 멍하니 앉아 차를 마신다는 건 오늘 본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가려내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결하는 활동인 셈이다....


요즘은 여행을 가서도 SNS를 통해 지인에게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날아온 엽서를 받는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외국에서 발행된 우표 위에 날짜 도장이 쾅 찍혀 있는 엽서는 여행지의 정취를 듬뿍 싣고 온다.... 한참을 쓰다 보면,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표정과 목소리에 떠도는 웃음기에 전염되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편안히 앉아 현지인을 관찰할 수 있는 이런 이국적인 기회를 마다할 여행자가 과연 있을까?"(여행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 160쪽)


떠나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읽은 책이어서 그랬을까. 이 책을 읽으며 굵게 밑줄 그은 몇몇은 '떠남'보다 머무는 일상에 관한 깊은 울림에 관한 내용이었다.


"온천물을 떨어뜨린 건 마지막 한 방울의 힘만은 아니다. 그동안 쌓여온 수많은 물방울의 힘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일도 마찬가지다. 수만 가닥의 인연이 얽혀 한 가지 사건을 만들어낸다.... 모든 일에는 시절 인연이 있는 법. 이제는 무리해서 여행을 추진하지 않는다. 인연이 무르익으면 가게 되리라는 것을 믿기에."(여행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 200쪽)





남편 작가의 책이 여행의 속살을 만나게 했다면 아내 사서의 책은 여행 엽서의 낭만과 정취, 그것과 닮았다.

'조용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친구와 산책하듯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기분'이 들 만큼.


책의 목차에 적힌 꼭지만으로도 80곳. 아시아와 유럽에 그치지 않고 이집트와 멕시코, 쿠바와 아르헨티나, 칠레에 이르기까지. 그의 떠남을 잠깐 읽어 스친 것만으로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상상되는 기분전환이 됐다.


지나 온 여행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법, 한 가지는 '사진처럼 기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영상처럼 기억하는 것'이라고 나눈다면, 아내 사서의 책은 잔잔한 배경음악이 덧붙여 흐르는 '사진'과 같은 책이었다. 여행지의 어느 한 장면, 어느 한 곳의 강렬한 기억을 되살려 쓴 장면 장면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우리의 여행 기억 속에 있는 그곳을 만날 때면 아내 사서가 그린 그림이 더욱 선명했다.


"성당 둘레를 천천히 돌았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멀리 물러나기도 하면서.... 다른 건축가들이 지은 부분은 가우디의 것과 달랐다. 곡선이 사라진 자리에 직선이 들어서 딱딱하고 거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신성한 예수 탄생 파사드 앞에서 볼멘소리를 했다. 가우디의 아름다운 창조물이 조화를 잃고 타인의 손에서 우스꽝스럽게 변해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이 실린 한탄이었다.(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129쪽)"


"택시가 괴레메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지구의 것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카파도키아에선 외계 행성에 홀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두고 온 사람들과 일상이 그리웠다."(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298쪽)


"노래가 끝날 때쯤 전차에서 내렸다. 코즈웨이 베이로 들어선 전차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아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떠올렸다. '결혼'이라는 전차에 오른 소군과 '성공'이라는 전차에 오른 이교. 둘의 사랑은 각자의 노선을 달리며 스칠 듯 말 듯, 아슬아슬 비켜가는 전차 같았다."(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270쪽)


남편 작가의 책과 아내 사서의 책을 번갈아 읽다 보니... 무척 재밌는 점이 있었다.

나의 독서력이 짧아 장담은 못하겠지만, 아마 이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두 권의 책이 또 있을까 싶기도 했다.


남편 작가의 책에 등장하는 'A'가 아내 사서라는 사실. 아내 사서의 책에 등장하는 '준'은 남편 작가라는 것. 결과가 뻔한 드라마에 오글거리며 마음의 긴장을 풀지 못하고, 그래도 결말을 확인하기 위해 본방 사수하는 드라마 마니아처럼... 나는 얼마 전 남편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에 들러 이 말을 꼭 짚어 묻고 말았다.


"책에 등장하는 A... 그러니까, 두 분이 함께 여행하신 것 맞죠?"




그 후로 두어 번 '책이는 당나귀' 책방에 가서 남편 작가와 아내 사서를 만나 한참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얼마나 큰 기쁨이던가. 더욱이 그 둘이 한분은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이고 다른 한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이니... 아내와 나는 주인 내외와 함께 책 이야기로만 한참의 수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나는 동네책방 '책이는 당나귀'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어떤 바람과 어떤 꿈을 가지고 책방을 운영하고 글을 쓰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다 이야기 나눠본 적은 없다. 하지만, 책에서 만난 이 둘의 여행이, 언젠가 나의 여행에서 느꼈던 곤한 여행의 땀을 식혀 준 선선한 바람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장 한 장 책을 넘겨가며 사색의 시간을 쌓아 온 삶의 깊은 성찰이 그들의 여행과 함께 책방 곳곳에 묻어 있다. 요즘처럼 이렇게 쉽게 '떠남의 설렘'을 찾을 수 없는 일상 속에서 한 줌 여행의 바람을 느끼고 싶을 때, 나는 사람들이 이 책방을 물어 찾아 가 잠시 넉넉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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