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 '취미'로 빛나는 한해 어떠신가요
인사기록카드 같은 신상을 적어 제출하는 곳에 요즘은 없어진 것이 '취미, 특기'를 적는 칸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담임선생님께 제출하는 상담카드에 처음 적어낸 나의 취미는 '독서'였다. 그때도 그랬지만, 취미를 물어보면 나는 좀 고민이 됐다. 대답을 하는 일이 어색하기도 했고, 같은 반에서 누구를 좋아하는지 말하는 것처럼 쑥스러웠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취미를 '독서'라고 하는 것은 마땅한 게 없어 써먹는 '취미 만능키' 같았다. 뭔가 그럴듯한 색다른 취미를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지만, 내게 그런 것은 없었다.
이제 나이가 좀 들었으니, 나의 취미라는 것도 좀 그럴싸한 멋진 것을 말해볼 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나를 가장 오래 지켜보고 잘 안다고 생각되는 가족들에게 대신 물었다. 나의 취미는 무얼까.
아내에게 물었더니, '수영, 독서, 달리기, 등산...' 이런다. 다시 딸아이에게 물었다.
'음, 아빠 취미는 달리기, 독서, 글쓰기?' 이런다.
국어사전에서 '취미'란 말을 찾아보면,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취미라는 것이 '즐기는 것', '마음이 당기는 멋'이라고 한다면, 나의 취미는 딸아이가 말한 것처럼 '달리기, 독서, 글쓰기'다.
매일 새벽 누가 깨우지 않더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일어나 달리기 복장을 챙긴다. 날씨가 춥건 덥건 달릴 수 있는 컨디션이면 나가서 달린다. 달리기는 고통의 과정이기도 하다. 가까운 거리든, 먼 거리든 달리는 것은 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지고, 중간중간 멈춰 서고 싶은 유혹에 늘 시달리는 힘든 일이다. 아무리 달리기를 좋아한다 해도 달리는 일이란 게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늘 나가 달린다. 어떻게 하면 더 가볍게 달릴지, 오늘은 어디를 얼마만큼, 또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달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은 벌써 달리기를 준비하는 것처럼 달라진다.
여행을 가도 나는 가장 먼저 달리기에 필요한 옷, 러닝화를 챙긴다. 어디를 가면 어떻게 달리면 좋을지 늘 살핀다. 해외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알지도 못하는 동네를 달리면서 이렇게 뛰니까 좋구나, 이런 코스로 뛰면 몇 킬로를 뛸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다른 도시의 러너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지난 11월에는 족저근막염이 생겨 한동안 달리기를 쉬었다. 힘든 달리기를 쉬는 것이니 편할 만도 한데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뛸 수 없다는 것이 이처럼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마음은 울적해졌고 몸은 더 무거워졌다.
달리기가 나의 취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취미'라는 말의 잣대를 들이밀어보면 달리기는 나의 취미가 맞다.
출근 전 시간,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 또 점심을 먹고 난 잠깐의 시간, 그리고 퇴근을 하고 집에서 무언가 할 일이 마땅치 않은 시간, 나는 그런 모든 시간에 대부분 책을 읽는다. 일부러 책을 읽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잠깐 읽다가 던져놓고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책 읽는 것을 까먹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사실 취미를 '독서'라고 하는 것은 좀 쑥스러운 일이다. 책 읽는 것이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특별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행동,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잘난 체'처럼 들릴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책 읽는 것이 '나 이만큼 읽었어요', '그래서 나 이렇게 똑똑해요' 하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당겨 하는 일이 책 읽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글쓰기는 나의 새로운 취미쯤 된다. 그간에도 가끔 글신이 영접되는 날이면 글을 썼지만, 글 쓰는 일이 일상 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재작년부터였다. 글 쓸 마음이 생겼을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고 쓸 무엇이 없다 해도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쓸 거리를 찾았다.
그러다가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를 반복할수록 나는 글쓰기가 더 좋아졌다. 쓸 거리가 없어 힘들 때도 있고 마음처럼 써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내일은 더 잘 쓰고 싶고,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어질 뿐이지 쓰지 말아야겠다 이러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가 더 좋아하게 된 셈이다.
지난 8월 중순, 나는 3월부터 시작했던 150일 매일 글쓰기를 마치고 한동안 글을 쉬었다. 글 쓸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았고 나는 다시 글 쓸 마음이 채워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만 허전해졌다. 글 쓸 무엇이 더 생겨나거나 글을 쓰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글 쓰지 않는 내가 이상했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연애하는 마음과 같다. 일상에 지치고 제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귀찮은 법이 없다. 만나기 위해 일부러 마음을 먹지도 않는다. 자연스레 보고 싶고, 만나지 않으면 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갈까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방법을 모색한다.
취미도 그렇다. 낮 동안의 업무가 힘이 들고 지쳐도 나는 글 쓰고, 책 읽고, 달리기를 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눈이 감기는 밤늦은 시간에도 나는 하루치의 글을 쓴다.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더라도 달리고 난 후의 기분을 못 잊어 나가 달린다. 가만있다 보면 생각나서 읽던 책을 찾아든다. 영락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삶 속에 감동을 남기고, 풍요롭게 하고, 삶의 깊이를 더하는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취미를 즐기는 삶도 그렇다. 어떤 취미를 하는 것이 더 멋진 삶이라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즐기는 삶은 어떤 취미에 빠진 삶이든 멋이 난다.
올해는 나의 취미를 더 깊이 사랑해볼 작정이다. 그간의 취미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더 깊이 마음을 다해 사랑해보고 싶다.
표지사진: Giulia Bertelli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