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시작하며
새해가 밝아오고 '시작하는 마음'은 설레게 한다. 새해에 '시작하는 마음'이 어디 하나둘일까마는, 내게는 특별한 '시작하는 마음'이 있다.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것이기는 한데, 나는 매년 해마다 그러고 있다. 새 다이어리를 '시작하는 마음'이다.
다이어리 첫 장을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펼친다. 장갑이라도 있다면 끼어야 할 것 같다. 살짝 펼치고는 또 쉽게 쓰지 못한다. 어떻게 잘 써야 할까, 어디부터 써야 할까, 어떻게 쓰면 잘 쓸 수 있을까, 무슨 말로 시작할까, 오래도록 고민한다. 이게 무슨 마음일까.
어차피 일 년을 두고 쓸 다이어리, 쓰다 보면 아무렇게나 끄적이게 되는 다이어리인데, 마치 작품이라도 남길 것처럼 조심스럽다. 꼭 발자국도 없는 눈밭에 첫 발을 내딛는 기분이다. 펜을 손에 쥐고도 첫 글을 시작하지 못해 기다렸다. 이게 뭐라고.
새해 첫 아침을 어떻게 시작할까 하다가, 나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매일 일어나던 대로 일어나서 운동을 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시작했다. 같은 시간에 나가서 똑같은 코스를 달렸다. 다만, 마음이 다르다. 어제 뛰던 그 마음, 또 일 년을 살아가는 다른 어느 날의 마음과는 달랐다. 조심스러웠다. 설렜다. 올 한해 좋은 일이 많기를, 무탈하기를, 무사하게 일 년을 보낼 수 있기를, 달리는 동안 나는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운동을 하고 씻고 났더니 이제 해가 뜰 시간이다. 아내와 둘이 거실에서 해가 뜨는 쪽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구름에 가린 해가 늦장을 부리는 사이, 나는 동쪽 하늘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이 새해의 일출을 보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않고 가고, 이른 새벽 산에 올라 해 뜨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제도 뜨고, 내일도 뜨는 해인데도, 새해 첫 일출을 기다리고 마음을 담아 기원한다. 모두가 새해를 잘 살아보고자 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일 테다. 오늘 하루 잘 살면, 오늘 아침의 해를 잘 맞이하면, 마치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마음.
다이어리의 첫 장에 나는 그런 마음을 담는다. 이 한 장을 잘 쓰면 올 한해 좋은 기억만 담을 것만 같다. 정성스레 글씨를 써 내려가면 2021년 한 해를 잘 살아가고 싶은 내 마음이 담길 것 같다. 다이어리가 일 년을 정하는 그런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 첫 장을 시작하고 일 년 동안 생길 일, 좋은 일, 마음 상하는 일, 기쁜 일, 힘들었던 일, 살아가는 일 년간의 흔적이 다이어리, 나의 일기장에 담길 것이다. 나는 좋은 일이 많이, 기쁜 마음이 더 많이 담기기를 바란다. 일기장에 써 내려갈 나의 일 년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이 간절해서 나는 잠시 주저했나 보다.
'정성스럽게', 조심스레 새해 첫날을 시작하는 것은 한 해를 잘 보내고 싶은 바람의 표현이다. 마음을 잘 먹는다고해서 한 해를 잘 살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 해를 살아가는 모든 일 중에 마음만큼은 또 내가 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중에 '시작하는 마음'이란, 새해 첫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이고, 일 년을 써 내려갈 다이어리 첫 장을 펼쳐들고 쉽게 펜을 긋지 못하는 마음이다. 오늘 하루 저마다의 '시작하는 마음'은 모든 이의 가슴속에 자리했을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 '올 한해 어떻게 살아가고 싶다' 생각했던 마음, 새해 첫 일출을 기다리며 간절한 소망을 담았을 마음, 모두 이루어지기를, 나의 새해 첫 글에 담는 나의 마음이다.
나는 이 마음으로 새해를 살아가기를, 힘들고 지치고 흔들릴 때마다 꺼내 볼 수 있기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할 때마다 오늘 아침의 나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