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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Dec 18. 2020

겨울 '잘' 보내기 : 맛있는 귤을 고르는 방법

맛있는 귤을 먹지 않고서는 겨울을 났다고 할 수 없다

한국에서 '겨울을 지냈다' 라고 말하려면 먹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방어와 귤이다.

방어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오늘의 주인공은 귤이다.



아주아주 맛있는 올해 첫번째 귤


며칠 전 귤을 한 박스 샀다. 난 매 년 얼음이 얼 때 쯤 되면 귤을 한 박스 산다. 그리고 다 먹으면 또 산다. 물론 다 먹으면 또 또 산다. 이 짓을 귤을 더 이상 살 수 없을 때까지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겨울이 가 있는 것이다.올해 처음 산 귤은 하나 까서 먹어보자마자 공중 앞구르기하면서 하나 더 까먹었을 정도로 맛있는 귤이다. 사실 이 글도 귤을 20개정도 까먹고 너무나 기분좋고 신나서 쓰고 있다.


나는 그동안 정말 수도 없는 귤을 먹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본능적으로 맛있는 귤과 맛없는 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동안 먹어온 수많은 귤의 크기, 형태, 질감에 대한 데이터가 내 안에 쌓이고 쌓여 마치 인공지능이 딥러닝 학습하듯 맛있는 귤을 고르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귤 고르는 방법은 직접 귤을 골라 담고 직접 전부 까먹으면서 은연중에 터득한 암묵지였기에 텍스트화 하는게 꽤나 고난이었다. 다만 만약 전 국민이 겨울에 맛있는 귤을 골라먹을 수 있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부탄을 제치고 행복지수 1위 나라로 도약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야심한 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귤 까먹으면서 치느라 점점 시간이 더 늦어진다)


지금부터 아래에 맛있는 귤을 고르는 방법을 소개한다. 사실 박스단위로 인터넷에서 살 때는 크게 도움이 안될 수 있다. 그러나 쟁반 위에 담긴 귤 몇 개 중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팁은 당신에게 천군만마가 되어줄 것이다. 번개처럼 눈을 굴려 가장 맛있는 귤을 쏙 빼오도록 하자.



1. 크기 : 소소익선, 작은 귤이 맛있다.


귤은 작으면 작을수록 맛있다. 정확히 말하면 귤은 크기가 커질수록 맛이 없는 귤일 확률이 증가한다.

손에 과즙 묻혀가면서 귤을 깠는데 달지도 않고 퍼석퍼석한데 그냥 버리기는 눈치보여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것 만큼 고역인게 또 있을까? 심지어 그 귤이 주먹만하다면?? 차라리 과즙 짜고 남은 오렌지를 먹으면 양이라도 적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귤을 시켜봐도 가장 비싸게 팔리는 사이즈의 귤은 S~M 사이즈이다. (L 사이즈 이상은 쥬스를 만들거나 청을 담글게 아니라면 쳐다도 보지 말자.) 하지만 난 가장 작은 2S 사이즈의 귤을 사먹는다. 왜 중간 사이즈의 귤이 더 비싸게 팔릴까?

내 생각엔 맛있는 귤을 먹겠다는 의지와 귤을 까는데 들이는 노동을 적당히 타협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M사이즈의 귤도 적당히 맛있는 귤이고 이걸 하나 까면 2S 사이즈의 귤 2개 정도의 양은 된다. 하지만 난 귤맛에 타협하지 않는 귤쟁이. 오늘도 2S 사이즈의 귤을 시킨다.  



2. 껍질 : 과육과 착 붙은 진공상태


진공포장기를 써 본적이 있는가? 귤 껍질은 마치 진공포장한 듯 아주 얇으면서 과육과 착 붙어있어야 맛있다. 이는 상술한 귤 크기와도 관련이 있는데, 크기가 작은 귤은 대체로 껍질이 얇고 과육에 착 붙어있어 뛰어난 맛을 선보인다. 껍질이 너무 착 붙어있다보면 귤이 한번에 까지지 않고 껍질이 뚝뚝 끊어지면서 귀찮게 하는 귤이 있는데, 축하한다. 당신은 세상 맛있는 귤을 까고 있는 중이다.

간혹 크기가 큰 귤을 주물러보면 껍질과 과육이 따로노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주무르던 손 그대로 창 밖으로 던져버리면 된다.



3. 색 : 초록은 동색 / 황금 보기를 돌 같이하라


귤은 당연히 선명한 주황빛이 나면 맛있어보이고 실제로도 맛있지만 귤은 날 때부터 주황색이 아니다.

간혹 초록색이 섞인 귤이 있는데 이는 맛에 큰 영향이 없다. 내 DB를 다시 살펴봐도 초록빛을 띄는 귤과 선명한 주황빛만을 띄고 있는 귤 사이에 유의미한 맛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노란색이 끼어있다면, 특히 꼭지가 노란색/갈색인 귤이라면 강제로 후숙시킨 귤일 확률이 높으니 다른 귤을 사먹자. 후숙이든 뭐든 맛만 좋으면 사먹겠지만  맛도 별로 없다.



+ 주물러주기


사실 이건 귤을 먹기 위해서는 기본이자 예의이다.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모든 귤은 주물러야 한다.

귤을 먹는데 있어 주물러주는 것은 겨울 바다에 다이빙하기 전에 하는 준비운동 같은 것이다. 준비운동을 무시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차가운 물 속에서 심장이 멈추고 손발이 굳어가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한 번 깐 귤은 다시 주무를 수 없는 법이다. 우리 모두 꼭 귤을 주무르고 먹어서 맛없는 귤이라는 대참사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도록 하자.




번외 : 유기농 귤


예전에 제주도의 지인이 자신의 귤밭에서 딴 것이라고 귤을 보내 준 적이 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었고 판매용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먹고 나눠줄 것을 농사짓는다고 했는데, 귤 크기도 들쑥날쑥이고, 심심치 않게 푸릇푸릇한 초록빛을 띄고 있는데다가, 아래 사진처럼 귤에 딱지가 있었다.


이 귤보다 더 크기가 들쑥날쑥하고 초록빛을 띄는 귤이었다.


상품성으로 치자면 시장 매대 제일 아래 땅바닥에 놓인 소쿠리에 담겨 떨이용으로 팔릴 비주얼이었지만, 그 귤은 인생 최고로 맛있는 귤이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말 맛있는 귤이었다.


맛있는 귤을 먹기 위해선 '예쁜' 귤을 고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조금 까먹기 '불편한' 귤이 더 맛있기도 하다. 이 조그만 귤에도 우리네 인생이 담겨있다. 겉보기에 번지르르하다고 내실있는게 아니고, 정말 좋은 것을 얻으려면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어떤 과일이 이런 멋진 인생교훈까지 줄 수 있을까? 올 겨울에는 위의 팁들과 함께 당신 인생 최고의 귤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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