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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Dec 03. 2020

1. 우리 빼고 다 아이를 낳을 건가 봐.

동기 대화방에 오랜만에 알람이 울린 것은 며칠 전이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남편과 나는 회사 입사동기 커플이다. 동기 커플인 우리에겐 공통분모를 가진 동기 친구들이 많다. 특히, 같이 출장을 다닌 친구들은 그중에서도 더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기껏해야 3박 4일짜리 출장만 다닌 나와 달리, 남편은 한 번에 두어 달 정도는 현지에 장기 출장을 가곤 하는 개발자였다. 우리의 출장지는 대체로 애틀란타였다. (나는 비행기 타고 내려서 미팅하고, 미팅이 끝나면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죽음의 출장만 다녔다.) 즉, 잠깐 짬을 내서 한국에 올 수 없는 지구 반대편이었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출장지엔 보통 남편 외에도 많은 개발팀, 품질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리고, 아직 가정이 없는 사원급이 유달리 더 출장을 많이 갔다. 때문에 출장지엔 우리 동기들이 항상 여럿이 있었다. 친구 하나 없는 출장지에서 동기들은 최고의 친구였다. 같이 밥을 먹고, 틈날 때마다 함께 놀았다. 출장을 함께 간 동기들과는 친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느덧 알게 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이다. 이제는 그 누구 하나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지만, 우린 여전히 안부를 묻고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회생활 친구가 되었다.


입사 3주년을 기념한 파티.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두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나보다.




그날도 평범한 그런 날이었다. 2020년은 코로나가 내내 극성이었다. 9명이 다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시간 되는 몇 명이라도 만나는 때가 있었는데, 올해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가끔씩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기원했을 뿐. 그래서인가. 우리는 2020년이 가기 전에 한 번은 꼭 만나자며, 송년회 생각에 불타올랐다. 코로나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기 전인 11월 초부터 우린 이른 송년회를 기획했다. 날짜를 정하는 투표부터 시작해서, 오랜만의 대화방엔 활기가 넘쳤다. 이 모임뿐만이 아니라, 올해는 모임 자체가 귀했기 때문에 들뜸도 느껴졌다. 남편과 나는 거실에 앉아 각자의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카톡을 보내고, 날짜를 체크하느라 캘린더 앱을 왔다 갔다 거렸다. 머릿속으론 9명이란 인원이 들어갈만한 룸이 갖춰진 음식점을 스캐닝하면서.


그때였다.
M오빠가 갑작스레 출산을 발표한 것은.


“다들 잘 지내죠!? 저도 가고 싶지만 애가 안 커서.”라는 메시지와 함께 M오빠는 꼬물거리는 아기 사진을 보냈다. 동기 대화방은 적어도 1~2달에 한 번씩은 꼭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동기모임만 없었지, 대화는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40주 동안이나 아내의 임신을 말하지 않았다니! 혹시, 나와 남편만 모르고 모두들 알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대화 분위기를 보니 우리 중 누구도 M오빠에게 곧 태어날 아이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M오빠의 입이 무거운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입이 무거운 사람인지는 몰랐다. 우리는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아이를 뒤늦게 온갖 이모티콘을 써가며 축하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축하 이모티콘을 골라 보내고, 우리 모임의 전통인 출산선물을 고르라며 보챘다. 정신없는 축하 대화를 이어가던 때 E언니의 카톡이 이어졌다.


“저도 같이 얼른 육아의 길로 따라갈게요 ㅋㅋㅋ”


저도? 저도???

‘도’라는 한 글자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 것인가! 출산소식에 이어, 한 글자만으로도 유추가 가능한 E언니의 임신 소식도 덩달아 터져 나왔다. 아, 아까 축하 이모티콘을 조금만 아껴둘걸!! 최대한 중복 티가 나지 않는 축하 이모티콘을 다시 골라 보내고, 축하 메시지는 이제 누구를 향하는지 모르게 되었다. 축하해! 축하해! 축하라는 말에 게슈탈트 붕괴가 올 때쯤, 뒤늦게 카톡을 확인한 S언니가 말했다.


“헐. 나는  내년 3월 말 예정이야.”


잠깐.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카톡을 보고, 시트콤, 그것도 오래된 시트콤에서나 보던 ‘잠시 멈춤’을 경험했다. 두 눈을 뜨고 보낸 사람을 확인했다. E언니가 아니라 S언니가 맞다. 다시 봐도 내용이 사라지지도, 바뀌지도 않았다. 바뀌는 건 읽지 않은 사람 수를 의미하는 숫자만 하나씩 내려갔다. 찰나의 정적 후에 우리는 또다시 아까 보낸 이모티콘을 또 보내고, 축하 인사를 보내고, 또 한 명의 예비 엄마를 축하했다. 그렇게 11월의 어느 날. 8명의 기혼자가 모인 동기 대화방에, 나와 남편을 제외한 모든 기혼자가 부모(또는 예비부모)가 되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구글링한 밈. 올해 격리기간동안 태어난 아이들은 coronials고, 13년 후에는 quaranteens가 된단다.


“오빠, 봤어? S언니도 임신했대.”

“그렇다면서? 웬일이니.”


우리 부부는 어지간한 일에 잘 놀라지 않지만, 동기들의 연이은 출산-임신 발표는 조금 놀라웠다. 동기 9명 중 우리 부부를 포함 8명이 결혼을 했고, 그중 우리 부부를 제외한 모두가 이제 부모 또는 예비부모였다. 뉴스엔 온통 N포세대, 비혼, 비출산이 판을 치는데! 이 대화방은 대유행에도 역주행 중이었다. 세상은 코로나 블루로 우울하다던데, 우리 동기 대화방엔 코로나 블루보다는 코로나 베이비들이 찾아왔다.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갖지 않은 부부는 우리 부부뿐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쫓아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순간 주변 상황이 바뀌니 어색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다음 말을 뱉기 전, 나 자신을 다그쳤다. 지금 하려는 그 말 하지마. 물어보지 마. 지금만 넘기면 돼. 짧은 경고가 머리를 웅웅 울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내 입은 자꾸 옴짝거렸다. 나도 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궁금함은 참을 수 없는 사람인 걸. 애매한 게 제일 싫은걸.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도 애매모호하고, 내 머릿속은 남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렇게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묻고 말았다.


“우린 어떻게 하지?”

“그러게. 근데 이제 네가 곧 35살이 되니까, 노산이 되기 전엔 낳아야 하지 않을까?”


아.

결국 이 말을 듣고 말았구나.

내 입으로 물어보고, 내 귀로 듣고 말았구나.

결국, 영원히 묻어두고 싶었던 그 날이 왔다.




말의 힘은 꽤나 크고 무섭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 담을 수 없다. 다시 이 말을 하기 전으로 돌릴 수가 없다. 우리는 결국 (한동안) 회피하던 문제를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어느덧 7년 차인 우리 부부는, 사실 5년 전에도 이 문제로 한참을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5년 전의 우리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때 내가 만 28세로 정말 어리기도 했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일단은 각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중에 결정하자. 일단은 그렇게 흐지부지한 상태로 의견 조율을 미뤄버렸다. 결정을 미루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편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각자의 생각과 의견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고, 점점 발전해갔다.


아이를 낳고 싶은 남편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


물론 우린 대화가 없는 부부가 아니라서, 어느 정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결정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처음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편의 마음까진 알 수 없어도,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랬다. 기나긴 상담과 오랜 고민 끝에 간신히 내 마음속 깊은 곳 원하는 바를 알아냈는데. 그리고 그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지쳐버렸는데. 심지어 그 의견이 남편과 다르다니. 우린 이 상황을 직면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선택을 종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어느덧 만 33세가 되었다. 흔히 ‘노산’으로 분류되는 만 35세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시간이 촉박했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모른 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밤 기나긴 대화를 나누었고, 여전히 결론을 찾지 못한 채로 일단 다음날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이불속에서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 :무슨 생각해?

나 : 솔직히 말해도 돼?

남편 : 응.

나 :.... 괜히 물어봤다...?

남편 : 크하하하 그래 솔직하네 ㅋㅋㅋㅋㅋ


남편의 장점 중 하나는, 고민하느라 생활리듬을 망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까. 남편은 내 대답을 듣고 크게 웃고는,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과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매일 머릿속이 밸런스 게임 전쟁판같은 사람이다. 극단적인 상황을 놓고 매일같이 저울질하는 나란 사람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남은 인생이 통째로 걸린 일인데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니!! 다른 사람들은 이런 때 어떻게 하는지 조언이 필요했다. 5년 전 처음 이 문제를 고민했던 그때처럼, 나는 인터넷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이 문제에 있어 의견 차이를 가진 부부가 이 문제를 조율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네티즌 선생님의 다수의견은 이랬다. “아이 문제 입장차는 해결할 수 없어요. 헤어지세요.”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나는 너무나도 조언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조율 과정을 얻는 글은 찾기가 어려웠다. 대다수의 글은 이미 결정이 나 있었다. “우리가 딩크족을 결심한 이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이유”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이유는 아니었다. 이유는 이미 내 의견을 생각하며 여러 갈래로 고민해보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가족계획을 어떻게 협의해가는지였다. 그 부분의 경험과 지혜의 공유가 간절했다. 너무나도 찾기 어려운 의견 조율의 지혜 말이다.


사실 우리 부부에게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때문에 결론이 어떻게 날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나 이 문제가 힘든 문제인지 알기에, 우리의 고민 과정을 공유하면 누군가는 위로와 위안을 받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리해가며 우리도 서로의 입장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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