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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Oct 27. 2022

자다 깨다 자다, 강릉

에세이_여행과 고향

어린이들 말 따라 구름이 꽁꽁 언 날이었다.

준비할 새 없이 찾아온 추위로

마음도 꽁꽁 얼어 강릉을 다녀오겠다고 하니

엄마가 묻는다.


“누구랑?”


대답을 듣자마자 엄마는 미쳤다고

왜 혼자 가냐고 했다.

엄마는 내가 어딜 혼자 간다고 하면

습관처럼 미쳤냐고 묻는다.

아빠는 글쟁이들은 좀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글 쓰러 가니?”


이럴 때 아빠가 조금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있어 보이는 것을 무작정 응원해주며

은근히 놀려먹는 면이 있다.

사실 강릉은 제주의 ‘차선’이었지만

금세 ‘최선’이 되었다.

추워서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비행기를 타러 가기 귀찮아졌다.

최선이 되자

그곳에서의 시간이 고향처럼 그려져 간절해졌다.

두 번의 기억이 좋아서

다시 떠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강릉에 가면, 그곳에 서서 바다를 마냥 보면

다시 모든 것이 좋아질까?     

얼른 확인하고 싶었다.


강릉 1

우리 가족은 참으로 오랜만에 여름휴가를 떠났다.

늘 시험과 취업 준비로 어정쩡했던 나를 이유로

몇 년 동안 같이 서울을 떠나지 못했다.

아주 오랜만에 우리 네 명은

그때와 같은 아빠의 낡은 승용차를 타고 강릉으로,

늘 그랬던 것처럼 새벽같이 떠났다.

도착지가 ‘속초’가 아닌 ‘강릉’이라는 점만 달랐다.

분명 여름휴가였지만

도착한 강릉은 구름이 많고 비가 조금씩 내려 별 감흥이 없었다.

초당 순두부 마을의 미리 찾아 놓은 식당에서 청국장과 두부를 먹으며 몸을 데웠고,

기대보다 맛있어 우리는 한껏 들떴다.

청국장을 사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보냉 백이 없기에 포기했다.

그리고 바다,

온 가족이 소나무 숲을 지나 바다 앞에 섰다.

얇디얇은 옷만 걸치고 온 우리는

회색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머리카락을 다 흩날리면서,

생각보다 크고 성난 파도를 바라보면서도, 

그 앞을 떠날 줄 몰랐다.

그동안 찍어주지 못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그다음 뭘 어떻게 할 줄 모르지만 떠나지 못했다.

바다에는 지붕이 있는 나무 그네가 있었다.

동생과 내가 그네에 타자, 

우리보다 가냘픈 아빠는 그네를 밀어주었다.

아빠가 자연스레 그만두고 

나와 동생은 신나게 발을 굴러

아주 높게 올라갔다 훅, 떨어졌다.

처음엔 시원함과 해방감을 느꼈는데

몇 번 반복하니 추위와 멀미가 왔다.

그래도 엄마는 우릴 보고

“아직 청춘이네!”했다.

친구들과 코타키나발루에 갔다

가슴팍에 장미무늬 헤나를 품고 온 엄마를 보고, 

외할머니가 “아직 청춘이네!”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에게도 그런 엄마가 있으니,

오랜만에 날씨가 어떻든

우린 다 같이 바다에서 깔깔거리고 있으니,

비가 내리든 말든 덜덜 떨며 비닐 우비를 입고

손을 흔들고 레일 바이크를 돌리고 있으니,

그날 우리는 모두 청춘이었다.

이 바다, 저 바다, 또 다른 바다를 돌아다니다

결국 파도에 발을 적시고

난생처음 킹크랩을 먹으러 갔다.

처음 가서 몰랐는데 킹크랩은 30만 원이 넘었다.

우리가 놀라니, 

사장님은 그래서 킹크랩은 아무 때나 먹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무 때나 가 아니어서

뭐든 저렴하게 사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는 

아빠 눈치를 살짝 보다 킹크랩을 먹었다.

아빠는 킹크랩과 그 많은 화려한 스끼다시 중

가냘픈 대게 다리가 들어간 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엄마와 나와 동생은 이를 놓치지 않고

진절머리 반, 사랑스러움 반을 섞어

“우~”하고 비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렸을 때처럼 목청껏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다.

동요, 발라드, 디즈니, 뮤지컬 ost, 트로트.

가족들은 듣기 싫어하면서도 그냥 부르게 내버려두었다.  

그래, 정말 킹크랩을 먹을 만한 날이었다.     


강릉 2

몇 달 후, 가슴이 답답해져 강릉이 가고 싶었다.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다

스물한 살이지만 코로나19로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사촌 동생과 역시 강릉을 잊지 못하는 동생이 생각나 함께 하기로 했다.

연차를 쓸 생각에,

다시 강릉에 갈 생각에 신이 나서

근무시간에 틈틈이 엑셀로 일정을 짜 통보했다.

둘 다 “오~”하면서, 사실 귀찮으니까, 좋다고 했다.

정말이지 난 가고 싶은 곳이 많았고

둘은 의견이 없고 토를 달지 않아 

평화로운 조합이었다.

금요 연차를 쓰고

출근시간보다 이른 첫 차를 타고 간 강릉은

차갑고 투명했다.

뒤늦게 수호랑과 반다비를 영접해 사진을 찍고 초당마을로 향해 그때의 청국장을 찾았다.

슴슴하고 냄새 없는 청국장과

그보다 더 맛있는 콩비지,

그리고 자극적인 감자조림과 아무리 봐도 배꼽이 더 큰 반찬들.

과식을 하고 발길이 가는 데로 일단 걸었다.

걷다 보니 지난번에 갔던 곳, 그리고 가지 못했던 곳들을 고루 찾게 되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찾은 바다,

소나무 숲을 지나자 우리는

눈이 부시게 파란 바다 앞에 설 수 있었다.

역시나 바다 앞은 추웠지만

다르게 어쩔 줄 몰라 “좋다!”만 연신 외쳤다.

당시 유일한 근로자였던 내가 가장 많이 외쳤다.

울리는 업무 카톡방을 조용히 무시한 채.

우리는 지겨워질 때까지 이야기를 하다,

멀미날 때까지 그네를 타다, 

바다에서 저 바다로 걸었다.

그러다 지쳐 택시를 타고는 다른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바다만 보며 커피를 마셨다.

이른 출발에 피곤했던 잠이 많은 사촌 동생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카톡을 보고 짜증을 내다, 다시 바다를 보고는 “좋다!‘를 연발했다.

동생은 대충 맞장구를 쳐주다, 바다를 보다, 인생 샷을 찍기 위해 애썼다.

자매님들과의 짧고 강력한 강릉 나들이 후

아주 긴 꿈을 꾸었다.

잠꼬대를 하며, 아는 척하며,

자주 '강릉'을 외치고는 했지만

생각보다 오래 꿈만 꾸었다.      


강릉 3

그렇게 2년이 지난, 강릉을 가기 위해

동생의 큰 백팩을 메고 출근한 그날은

유독 두통이 심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힘이 없었지만

학교를 벗어나면, 기차만 타면, 다 나을 것이라 믿었다.

그날따라 어린이들은 기분이 좋아

연달아 “사랑해요!”하고 안겼지만

힘이 없어 그저 웃어 보이며

손으로 그들의 어깨를 토닥거리기만 했다.

어린이들은 한 명이 시작하면 

일단 다 따라 하고 보는 경향이 있어, 

평소보다 많은 사랑 발림을 받았음에도

충전되지 못했다.

대신 100% 충전된 폰을 들고

급식으로 나온 김가루 볶음밥을 허겁지겁 먹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인위적이라도 들뜨고 싶어

배가 불렀지만 역에서는 기차 간식으로 

알록달록한 젤리를 샀다.

젤리를 먹다 물을 마시고 싶으면 깼고

잠시 산과 논을 바라보다 젤리를 먹고 다시 잤다.

앞으로도 다리가 저리지 않은

우등석을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강릉역에는 여전히 수호랑과 반다비가 있었다.

힘이 없으니,

'이번 여행에서는 택시만 타야지!' 했지만

숙소에서 바다까지는 15분 거리였고

어쩐지 바다가 가까운 이 동네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강릉에서 잠을 잔다.

다시 강릉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생각나는 곳은 많았다.

그네가 있는 바다, 경포호수, 오죽헌, 경포 생태저류지, 아르떼 뮤지엄, 테라로사 경포호수점, 책방 여러 곳, 안목항, 청국장 집, 옹심이 집, 장칼국수 집 등등.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도 긴 1박 2일.

다행히 이제 이런 기분을 잘 알고 있다.

항상 욕심을 내다 제 풀에 지쳐 실망하고 서운해하고 울던 날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바다에 몰빵을 하자!

도착하자마자 웰컴 커피를 들고는 바다에 가서

해 지는 것을 보고,

해가 지고는 곧 익숙해진 동네를 걷다

들깨 옹심이와 메밀전을 먹었다.

내일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늑하지만 낯선 곳에서 잠을 설치다,

해가 뜨기 전 같은 길로 바다를 보러 가 낙서를 하며 실컷 놀았다. 

금방 배고파져 1인분 같은 2인분의 청국장을 먹었다.

이것이 강릉에서의 마지막 식사.

2인분씩 잘 시켜 먹어 더는 먹지 않아도 되었다.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다시 그네가 많은 다른 바다를 찾았다.

사람들은 돗자리가 있어 아무 데나 앉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게 없어서 좀 외로웠다.

비어있는 그네도 없었다.

대신 쓰레기통 근처의 그늘진 소나무 숲 벤치에는 사람이 없어

그곳에서 책을 읽다, 바다를 보다 했다.

종종 그네에서 햇빛에 눈이 부셔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렇게 하지만 사실

근처 그네에 사람들이 떠날 기색을 보이면

준비를 하다,

나보다 빨리 도착할 경쟁자들이 보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책에 눈길을 돌렸다.

그래도 평소보다 욕심 없는 시간을 보내니

내게도 그네가 찾아왔다.

둘이, 셋이 앉았던 그네에 홀로 넓게 앉아

책의 마지막 장을 보았다.


‘이 여행은 이렇게 끝나는군.’


10%밖에 남지 않은 폰을 가지고 충분함을 느끼고

다시 속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택시 기사님이 카카오 택시가 되냐고 물으셔서 아끼고 아낀 배터리를 사용하여

카카오 택시를 눌러보았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배터리는 곧 방전되었다.

허겁지겁 약간의 기념품을 사고

강릉의 길을 다 아는 것처럼 기차역을 향해 걸으니 정말 기차역이 나왔다.

다시 쾌적한 세상의 우등석에서 배터리를 충전하니 카톡이 안된다는 문자와 함께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소식을 접했다.

잠시 멀었던 것들로 아득해졌다 정신이 들었다.

저녁 7시, 익숙한 시간 다시 나의 고향에 들어섰다.

마침 오늘 시작한 동네 축제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서는 평안한 가족들이 나를 맞는다.

여행 후 본 엄마의 얼굴은 누그러져 있었지만

새로 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나에게 자꾸 어떤지 묻는다.

모든 것이 익숙하며 낯선 나는 얼버무린다.


“너 가서 굶고 왔니?”


엄마가 해준 밥을 싹싹 비우고

다시 길지만 평안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러다    

해가 지고는 솔향이

해가 뜨기 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 향이

해가 뜬 시간에는 커피와 바다 향이 나는 강릉이 다시 생각날 것 같다.

그럼 기지개를 피고는 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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