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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Mar 09. 2023

이파리가 떨어진 나뭇가지의 공백

에세이_사랑하는 나의 일상

“민정아, 엄마 이것 좀 들어줘!”


요새 엄마는 큰 문제가 없어 다행이기는 하지만 

노화로 허리가 성치 않다는 결과를 받아 울적하다. 

아픈 엄마의 짐을 손에 들고 그의 출근길에 동행했다.


엄마가 다니는 학교는 

집 앞 당현천을 따라 불암산 방향으로 쭉 걸으면,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양 옆이 아파트로 둘러싸여 유독 검푸르고 시리지만 이상하게 좋은 풍경을 보다 보면,

그 풍경을 보다 자연스레 꼬리를 물고 잡생각에 빠지다 보면, 

늘 같은 시간대에 만나 익숙한 사람들과 개들을 마주하다 보면,

이 평화로운 풍경을 지나 샛길로 빠져, 

비로소 이리저리 마구 다니는 차들을 마주하게 되면 나온다.

각자의 출근에 애로사항이 있기는 마련이지만 

그래도 천을 따라 걸으며 출근할 수 있다니 엄마를 잠시 부러워한다.

보다 이른 시간 버스를 두 번 타고 출근을 했던 나는 

늘 출근길 천을 따라 걷거나 뛰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 사람들이 어디를 가는지, 어떤 마음인지, 왜 걷거나 뛰는지 모르면서.     


사실 어제도 오늘과 같은 길을 걸었다.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예정된 독서 모임 시간에 늦어질 것 같아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가 

살짝 풀어진 날씨에 혹해 서둘러 출발해 버린 길지 않은 산책이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산책길은 엄마의 출근길과 같이 파랬지만 

해가 꼭대기까지 올라온 뒤라 좀 더 하얗고 노랗게 물들어 눈이 부셨다.     

‘천에 새들이 더 늘었네?’     

사람들이 공사를 하든 말든 정확한 이름을 몰라 미안한 검정 새, 하얀 새들은 

날개를 쭈욱 피고 날았고 시린 물에 다리를 집어넣고도 꼿꼿했다.

가방에는 <사랑의 기술>이 들어 있었다.

올해는 이 책을 꼭 완독 하고 싶어 독서 모임을 신청했지만 찝찝하게도 완독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현재를 살라는 작가의 말만은 되새기며 오랜만의 산책에 무선 이어폰을 꺼내지 않았다.

들리는 건 물소리와 사람들과 개들이 하는 말소리, 그리고 이내 이를 다 덮는 공사 소리뿐.

꾹 참고 스마트폰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으로 주머니 속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대신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덜 차가운 공기를 느끼고 

덜 생각에 빠지려고 했다.

이번 겨울 역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잠깐의 공백을 참을 수 없어 

괜히 머리를 굴리고 눈을 피곤하게 하는 동안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졌다.

노력을 해야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늘 밑에 살면서도, 그리 바쁜 일이 없으면서도, 아주 오랜만에 하늘을 보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처럼 머리에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눈 안에 인식되는 것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독서 모임 장소는 불암산 바로 앞에 자리해 있다.

건물과 소음으로 둘러싸인 파랑보다는 역시 산그늘 아래의 파랑, 

그런 파랑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파랑 밑에 사는 나무들에게 이파리는 없었다.

이파리가 없지만 벌거벗었다는 생각, 춥겠다는 생각, 공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빼곡한 혹은 듬성듬성한 ‘나뭇가지들만 있어도 아름답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봄이 그립지만, 봄의 햇살 아래 올라오는 여린 연두색 새싹을 많이 좋아하지만,

희끄무레한 공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것이 느껴진다는 것이 좋았다.

이 새로움 감각이 <사랑의 기술> 몇 장을 읽게 되어 가능한 것인지,

어둠 속에 있다 오랜만에 하늘을 보게 되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지난번 모임보다 한 꺼풀 나를 벗겨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온 아파트 복도에서 바라본 빈 나뭇가지에

까치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한 꺼풀 벗겨졌다 다시 막 온몸을 꽁꽁 두르려는 사람들이 동작을 멈추고 웃었다. 

반가운 까치 나무가 열렸다.     

그날 언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과 헤어지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왔던 길과 같은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공백이 많으면 좋겠다.

언뜻 보면 보일 공백이 아니라,

나의 시간, 머리, 눈과 귀에 공백이 있었으면...’     


나의 공백을 여린 연두색 새싹이나 까치로 채울 수 없다면 

그저 고요하고 시린 공백으로 남겨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소에는 모르다 문득 한 번 바라보게 되면 

오래오래 그곳에 머무르고 싶은 공백으로. 

그러니 무엇인지 모르는, 외로워서 데리고 온, 참을 수 없어 채워 넣은 

제멋대로의 것들은 이곳에 데려오지 않기로.     


다음날 엄마와 같이 그 길을 걷고 이번에는 건물의 그늘 아래로 엄마를 보내주었다.

지난번에는 엄마가 홀로 떠나는 내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봐 주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봐주기로 혼자만의 약속을 만든다.

허리가 아픈 엄마는 볼 때마다 작고 굽어지는 체구에도 씩씩하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고맙다!” 


그 뒷모습에서 공백을 찾으려 한다.

그 공백에 미안함과 죄책감, 슬픔을 넣다가 고개를 젓고는 

나도 엄마처럼 씩씩하게 걸어 집에 가기로 한다.

가는 길 새들은 여전히 물가에 있다.

물살을 따르거나 역행하여 살기 위한 몸짓을 이어 가고 있다.

흙과 나뭇가지도 여전히 비어있다.

그 비어있는 모습이 오늘도 아름답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는다.

한 장 더 찍는다.

하늘은 미세먼지가 나쁨이든 좋음이든 푸르렀다. 

드디어 다시 산책을 시작할 순간이 왔으니 

연두색 새싹이 싹을 트기 전에 좀 더 긴 산책을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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