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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부부 Apr 12. 2022

게으름뱅이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이유.

혼자 하는 게 무서운 거야? 음.. 그것도 맞지만...

"나는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아!"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에 극한 공감을 하는 게으름뱅이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샛소리 들으며 그저 누워만 있어도 행복한데 왜 밖을 나가는 거지? 집에 햇빛도 들어오고 넷플릭스도 있는데... 근데, 가끔 집이 귀찮아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질 때쯤 분명 나가면 피곤해질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나가고 싶은 그럴 때. 변화가 필요할 때다.


근데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게 조금 두렵고 귀찮다. 그래서 결국 생각에서 그치고 말아 버리는 그런 일들이 반복된다. 예를 들면 제주에 사니 캠핑을 좀 해보고 싶어 장바구니에는 캠핑용품이 가득 차 있는데, 막상 사려고 하면 '내가 과연 이걸 쓰러 나갈까? 내가?'의 굴레에 갇혀 결국 가득 찬 장바구니엔 어느새 품절 상품만 가득하다.



"뭔가를 시도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이상적으로 완벽한 상태'를 꿈꾸는 게으름뱅이는 상상으론 이미 캠핑 자리에서부터 캠핑 장비들, 어떤 분위기와 어떤 음식을 먹을지까지 다 정해놓고 '아.. 행복하겠다...'까지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캠핑을 위한 제품을 알아보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이상)과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현실)의 갭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것(이상)과 할 수 있는 것(현실)에 차이에 에이 몰라! 하고 결국 포기해버린다.


근데, 최근에 친정엄마와 동생이 놀러 와서 SUV로 차를 바꾼 후 두 달 만에 차크닉을 시도하게 됐다. 원래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상상으로만 품고 있던 로망이었는데 제주에 자주 놀러 와 더 이상 할 게 없어 지루해진 엄마와 동생을 위해 한 번 툭 던져봤더니 흔쾌히 가자 하는 게 아닌가???



"아, 완벽한 게 아니어도 좋구나."


차크닉을 가기 전 날 대충 로드뷰로 집 근처에 갈 만한 곳을 알아보고, 차 트렁크에 돗자리와 침구를 챙겨 엄마와 동생 그리고 우리 집 반려견 박봉식과 함께 집을 나섰다. 해안가에 도착해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트렁크 문을 열어 세팅하니 계획 없이 단출하게 챙겨 왔는데도 그저 좋은 날씨와 바람으로도 행복함이 가득해졌다. '아, 이거다!'


성공적인 첫 차크닉, 봉식이도 좋아하는 거 같다.


게으름뱅이인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상태를 버리고 '생각 없이 무작정'이 옳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생각 없이'가 중요하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다가 결국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처럼 혼자 하는 걸 두려워하는 겁쟁이에게 반려견은 너무나도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친구나 가족도 좋다. 한 번은 누군가와 함께 생각 없이 무작정 시도해보면 그다음부터는 혼자 하는 게 쉬워진다.


이 날은 더군다나 예상치 않게 도착한 곳에 화장실도 있었고, 푸드트럭도 있어 모든 게 완벽한 덕이었는지 결국 차크닉 매력에 빠져버렸다. 어느 날은 우리 집 박봉식과 둘이서, 또 다른 날은 남편과 박봉식과 셋이서 제주 동서남북을 다녀보고 있다.


주변에 화장실도 뭣도 없는 해안도로도 이렇게나 예쁘다. 잠깐 세워 여유를 즐겨도 좋다.




"또 다른 방이 생긴 거 같아."


블루투스 스피커와 노트북을 챙겨 나와 해안가에서 노래를 들으니 이 여유로움에 밀린 업무들도 술술 풀린다. 업무가 없는 날에는 밀린 드라마를 넷플릭스로 보고,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차 안에 엎드려 파도 멍을 때리기도 한다. 파도소리에 낮잠도 들어보고, 트렁크 문을 닫고 박봉식과 산책도 한다.

그저 위치가 집이 아닐 뿐, 집에서 할 수 있는걸 차에 옮겼다.


박봉식이랑 이곳저곳 다니기! @imbongsik



풍경 좋은 방이 생긴 기분이다.


이제 '이상적으로 완벽한 상태.'가 아니어도 충분히 좋을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려 다음 단계로 가는 것도 두렵지 않아 졌다. 앞으로도 모든 일을 생각 없이 무작정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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