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깥을 가꾸어야 하는 이유
지구에 알 수 없는 더스트가 나타나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죽였다. 사람들은 이를 더스트 폴이라고 불렀다. 몇몇은 거대한 돔 시티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아갔으나 이 돔에 속하지 못한 자들은 쫓겨나 돔 밖에서 더스트 폭풍 때문에, 혹은 내란과 불신 때문에 죽었다. 더스트에 내성을 지닌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도 비슷했다. 연구소 잡혀가 실험을 당하거나 피를 뽑히거나 혹은 그저 죽임을 당하거나.
그런 시대가 지나고, 더스트에 대한 저항성을 지닌 약품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간다. 사실 원래의 삶이란 없다. 이미 더스트의 최초 출몰 후 시간은 아주 오래 지났기 때문에 더스트 이전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식물학자인 정아영에게 "모스바나"라는 식물에 대한 제보가 들어온다. 모스바나는 인간에게 해로우며 엄청난 번식력과 침입성을 자랑하는 덩굴. 그러나 이 덩굴은 아주 오랫동안 (약품이 계발되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약초로 여겨졌다. 이 모스바나가 경기북서부와 강원도 일대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 덩굴을 약초로 썼다던, 에티오피아에 사는 나오미를 찾아간 정아영은 인류를 구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스트를 만들어 실험하다 실수로 유출시켜 지구를 멸망의 행성으로 만들어버린 솔라리타라는 연구소에서 도망친 레이첼, 사이보그 레이첼의 팔을 고쳐주는 로봇 정비사 지수, 그리고 레이첼이 만든 모스바나와 그 변종. 서로 죽고 죽이는 바깥에서 사람들은 레이첼과 지수를 중심으로 프림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일명 '분해제'를 만든 레이첼은 지수의 설득으로 사람들에게 이 분해제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마을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저 밖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분해제가 없어 더스트에 의해 죽어가고 있으니 그들도 이 마을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수는 마을을 확장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삶은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미 많은 저 밖의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잔혹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에게까지 나눠줄 분해제는 없다. 지수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가짜 안개도 만들고 정찰을 하며 공동체를 철저하게 숨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지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사정을 들여다보니, 지수도 이 분해제를, 모스바나를, 변종 묘목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31%만이 유기물로 이루어진 사이보그 레이첼은 그런 지수를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갈등하고, 지수는 레이첼에게 공감을 바라고, 레이첼은 지수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마을 사람들이 굶주리며 잠드는 와중에도 발전소는 어설프게나마 유지되었고, 사람들은 매일 발전소와 온실을 점검했고, 밤이 되면 온실은 언제나 환히 빛났다. 나오미는 이곳에 처음 와서 아마라에게 들었던, 마을의 궁극적인 목적을 떠올렸다. 온실을 유지하는 것. 온실은 희망을 주었다. 마을은 그 희망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중
레이첼은 온실 속에서 계속 식물을 연구한다. 프림을 위해 하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레이첼은 식물이 궁금해서 연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수는 레이첼이 솔라리타 소속으로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솔라리타에서 더스트가 유출되었고 이를 은폐하려던 솔라리타의 노력에 부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온실 속 레이첼의 정원이 자신을 구할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 한 차례 더스트 폭풍이 일었을 때, 사람들은 갈등한다. 온실까지 지키면서 우리가 굶주려야 하느냐. 왜 전력이 온실에만 가동되어야 하느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공동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더스트 중독을 막아줄 수 있는 식물등의 종자를 몰래 가지고 나간다. 이유는 다양했다. 돔 시티 안으로 들어가고자 거래하기 위해, 그리고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지수도 생각한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대니는 식물을 돔 시티로 가져가야 한다고 하지만, 지수는 돔 시티가 답이 아니라고 했다. 지수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나오미는 짐작이 갈 것 같으면서도 가지 않았다. 식물들을 가지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로? 돔 시티가 아니라면 어디로 갈 수 있다는 말일까?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중
마을이 습격당한 날, 지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종자들을 나눠주며 멀리멀리 떠나라고 말한다. 나오미는 재회에 대해 묻는다. 지수는 확답을 주지 못한다.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서로 종자를 품에 안고 떠난다. 그리고 지수와의 약속을 지켜낸다. 가는 곳 전부가 온실이라고. 돔 안이 아니라 바깥을 가꾸어야 한다고. 지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후 레이첼을 찾는다. 그러나 레이첼을 찾을 수 없다.
나오미는 언니 아마라와 함께 프림을 떠난 후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프림에서 하던 일을 반복했다. 가는 곳을 온실처럼 가꾸기. 모스바나 종자를 심어 퍼트리기. 사명감이나 책임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그 시절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나오미는 마지막으로 에티오피아에 정착하여 더스트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다. 이 사연을 널리 알려져 국제적 뉴스가 되었고 사람들은 나오미와 아마라를 칭송했다.
그러나 더스트에 대응하는 증식형 분해제를 공기 중에 살포하여 더스트를 분해하는 디스어셈블러 방식이 출현했다. 과학자들은 나오미가 약제를 만드는 데 사용한 '모스바나'가, 사실은 인체에 유해하며 염증을 일으킬뿐더러 번식력이 매우 강해 생태계를 교란시키기만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 과정들을 지켜보며 아마라와 저는 서로에게 물었죠. 우리가 한 건 뭐였을까, 아무런 의미가 없던 일이었을까?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나오미와 아마라는 모스바나의 더스트 분해 작용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들은 과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스바나의 효능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묵살당했다. 이들은 그저 '기술의 암흑기에 잠시 민간 치료를 맡았던 마녀들'로 치부되었다.
나오미의 증언을 토대로 정아영은 더스트 증감 기록을 바탕으로 모스바나를 다시 연구하였다. 그리고 디스어셈블러 이전에 더스트를 분해 가능할 정도로 만들어 놓은 무언가가 있어야 함을 증명했고 이는 곧 모스바나를 이용해 인류를 구한 사람들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아영에게 레이첼은 말한다. '식물들이 인간을 이용'한 것일 수도 있다. '멸망의 시대에 살아남은 식물들이, 더 멀리 퍼져 나가기 위해 인간과 함께 진화'했다고. 식물들은 더스트 폴 이전에도 그랬듯, 그저 자신의 번영을 위해 진화한 것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중, 지수가 하는 말
우리는 왜 종자를 프림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하는가. 왜 돔 안이 아니라 돔 바깥의, 길 가는 곳에 모스바나를 퍼트려야 하는가.
얼마 전, A에게 플라스틱이 많이 나오니 배달음식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A는 코웃음을 치며 호들갑이라고 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위생을 위해 컵도 종이컵을 쓰고 플라스틱을 써야 한다고 했다. 세대 차이인가 싶기도 하고, 나는 누군가와 논쟁을 이어갈 말주변도 없어 가만히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플라스틱을 쓰고 재활용을 하지 않고 편리함만 추구할 순 없다.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만능 '디스어셈블러'를 마냥 기다리다 보면, 결국 온실 속의 노력이 허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결국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이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