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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니 Feb 10. 2022

사랑한다면 월E처럼

영화 '월E'에서 발견한 순수함에 관하여

  인간보다 감수성 넘치는 로맨티시스트 로봇을 들어봤는가. 폐허가  지구, 인간들은 모두 우주로 떠나고 쓰레기로 가득한 지구에서 몇 백 년간 쓰레기를 처리해  로봇 E 뜻하는 말이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로맨스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누며 손을 잡는 장면을 통해 로맨스를 꿈꾼다. 이뿐 아니다. 큐브, 전구, 뽁뽁이  흥미로운 것들을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해 자신의 아지트로 가져가 바퀴벌레와 노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아침이 되면 햇볕을 쐬며 자신을 닮은 로봇의 시체들 가운데 묵묵히  할 일을 하는 E 보노라면 숭고한 마음까지 생긴다. 생명체가 사라진 (사실 E 생명체는 아니다) 지구에서 자신의 유일한 친구는 바퀴벌레. 실수로 자신의 친구 바퀴벌레를 밟으면 눈썹을 잔뜩 휘며 (사실 눈썹은 없다) 미안함을 표하고 바퀴벌레에게 위험하니 나와있으라고 하는 그는 어쩌면 인간인 나보다도  인간적인  같다.

​​


  쓰레기 더미  몇백 년의 반복적인 루틴 속에서, 드디어 E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어느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로켓이 착륙하고 레이저 불꽃을 팡팡 쏟아내는, 다소 전투적인 로봇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이브. 그러나 E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에바'라고 발음한다.



  에바는 정말 화끈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에게 지구는 낯선 곳이며, '식물' 탐사하러  로봇답게 지구 이곳저곳의 쓰레기 더미들을 폭파시키며 식물을 찾아야 하니까. E 명령어가 지구의 쓰레기 처리이듯, 에바의 명령어는 지구 식물 탐험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명령어 수행밖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에바에게, 우리의 로맨티시스트 E 단단히 반하고 만다. 그의 마음을 사기 위해 잠자는 동안 에바를 닮은 모형도 만들어주며 그의 곁을 계속 맴돈다. 물론 에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열심히 에바를 귀찮게  결과, 다행스럽게도 E 에바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E 에바에게 집들이를 시켜준다. 자신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찾아낸 장난감들을 에바에게 소개하던 , E 자신의 보물 1호인 비디오테이프를 건넨다. 에바가 비디오테이프에 대해  리가 있나. 섬세하지 못한 그는 테이프를 마구마구 헤집어 놓았고 E 깜짝 놀라며 테이프를 되감고 황급히 제대로 작동되는지 확인한다.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등장한 춤을 추는 사람들,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주인공, 그리고  손을 잡는 그들. E 영상에 제대로 빠져 분위기를   에바의 손을 잡아보려 하지만 허사였다. 명령어를 이행하기 위해 태어난  에바는 영상에서 어떠한 로맨스를 읽어내지 못한다.



E 에바를 사랑하는 방식

  

  E 아지트에서 식물을 발견한 에바가 식물을 로봇체 내에 넣고 휴면 상태로 들어간다. 갑자기 고장이라도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는 에바에, E 적잖이 당황한다. 혹시나 배터리가 없나 싶어 자신이 태양광 배터리를 충전하듯 에바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햇빛을 쐬어주지만 에바는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E 에바를 깨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을 씌워주며 지켜주고 벼락도 맞는다. 에바와의 데이트도 준비한다. 아름다운 강도 함께 배를 타고 건너고 주홍빛으로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다. 언젠가 에바가 깨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에바를 극진히 간호(?)하고 있던 월E의 눈에, 지구에 착륙하려는 로켓이 목격된다. 에바가 타고 왔던 그 로켓이다. 불길한 마음에 로켓을 추적하지만 이미 에바가 납치당한 후. 자신을 따라오려는 바퀴벌레에게 '위험하니 따라오지 말라'라고 한 뒤 자신은 에바가 탄 로켓을 찰싹 붙어 머나먼 우주여행을 떠난다.

​​


로켓체의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에바가 곤히 잠들어있다. 뒤돌아보자 아름다운 지구가 보인다. 감상에 젖은 월E가 창문을 두드린다. 에바, 밖에 봐. 참 예쁘지? 월E 눈에는 에바가 참 예쁘긴 한가보다. 예쁜 것만 보면 에바가 생각나고, 그래서 에바와 그 감상을 나누고 싶어 하는 월E를 보노라면 순수함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지구에는 혼자 가지 않을 거야!


  식물을 캡틴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E 자신을 따라왔다는 것을 알게  에바. 에바는 '여기는 E, 네가  곳이 아니'라며 E 지구로 향하는 탈출선에 태운다. 순진한 E 당연히 에바도 자신과 함께 지구로 가려나보다 싶어 에바에게 얼른  자리에 타라고 손짓한다. 에바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E 그렇다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 자신이 몇백 년 동안 있었던 곳을 떠나 에바를 구하러 오고, 에바가 지구에 가지 않겠다면 자신도  가겠다니, 정말 용감한 로봇이 아닐  없다.

​​


  결국 '오토'라는 캡틴의 비서 로봇이 수행한 기밀 명령 때문에 에바의 식물이 도둑맞고, 에바는 E 함께 '불량 로봇'으로 찍혀 우주 쓰레기장에 처박힌다. 오토 때문에 만신창이가  E 외형은 거의 알아볼 수도 없다. 와중에 E 에바에게 명령 수행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았기에 식물을 에바에게 들이밀며 '너의 명령어를 수행'하라고 한다. 에바는 그런 E 행동에 마음 아파한다. 자꾸만 자신을 두고 '지구' 가라고 하는 E. 그러나 에바는 자신의 명령 수행보다는 E 선택한다. 결국 지구에는 혼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에바가 E 사랑하는 방식

  망가질 대로 망가진 E 함께 지구에 도착한 에바. 서둘러 E 부품들이 있는 아지트로  현란하게 E 고쳐본다. 바퀴벌레는 그런 에바를 숨죽여 지켜본다. 드디어 정신이  E.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에바의 눈치만 보고  잡을 궁리만 하던 그가, 자신의 오랜 친우 바퀴벌레를 밟아도 아무런 미안하단 말도 안 하며, 자신의 보물들이나 다름없는 아지트  잡동사니들을 쓰레기로 처리해 버린다. 에바를 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정말 '로봇' 것처럼 행동한다.

​​


  그런 E 모습이 낯선 에바는 E 손을 잡는다. 그리고 서로의 이마를 맞대어본다. 과거, 자신이 휴면 상태에 들어갔을  E 그랬던 것처럼 그저 E 옆에 있는다. 그러자 갑자기 E 찌르르한다. , 부팅이 조금  되어있었나 보다. 드디어 E 특유의 잔뜩 우울한 눈망울과 소심한 목소리가 들리운다. '에바..?'라고 말하는 E, E 손을 마주 잡은 에바.  둘이 사랑하는 방식은 서서히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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