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로 끝나는 드라마는 욕을 먹기 일쑤다. 내게 지난 이별들은 드라마와 같아서, 항상 알고 싶지 않고 두려운 것이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는 말에 속으로 공감하며 어떡하면 친구들과 이별하지 않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곤 했다.
나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드라마로 보기에는 다소 잔잔했다. 하나의 인생극장을 찍는다면, 이 아이들과 찍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쉽사리 자신의 호감을 내놓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나는 내가 10을 주었을 때 상대방도 10을 준다면 충격과 비슷한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나만 10을 준다고 느낄 때 자책한다. 상대는 요구하지 않았는데 괜히 내가 10을 주며 상대로부터 10을 받기를 기대한, 제멋대로인 나. 준만큼 받지 못하는 게 배신당한 것이 아닌데 어렸던 나는 쉽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나이가 들어 쉽게 호감을 주지 않고, 함부로 타인에게 기대를 걸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발전한 내 모습에 스스로 대견해지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꾸만 내게 사랑을 주었다.
쿠키를 만들어 주고, 목도리를 짜주고, 수업 시작 전에 찾아와 말을 걸고, 장난치고, 놀리고. 모의고사 성적 때문에 내 앞에서 울고 나는 달래주고, 방과후 수업 때마다 음악 듣자고 조르면 나는 못이기는 척 엔시티 노래를 틀고. 교무실 책상 앞에 앉아 정신없이 행정업무를 하고 있을 때 나타나 편지를 전해주고, 간식을 주고, 수업 시간에 몰래 핸드폰으로 내게 사랑하다는 카톡을 보내고. 내년에 담임 맡아달라고 하고, 나는 인생은 원하는대로 되진 않는다고 하고. 아이들이 학급 게시판에 ‘디니*쟈니 결혼함'이라고 써놓으면 나는 그걸 뒤늦게 발견해 벅벅 지우고.
나는 이 아이들만 생각해서 이 곳에 남을 수는 없는걸까. 이런 사람이 교사여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나는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들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두려워져 공부하고, 멀어진 친구들 생각에 공부하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공부하고.
교감, 교장 선생님께 사직서를 내고 삼일 후 한 아이로부터 카톡이 왔다.
-샘, 다른 학교 가세여??????
어디서 들은 걸까. 언젠가 알게될 일이지만, 아이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전해들었는지 몰랐기에 나는 덜컥 걱정이 앞섰다.
지난 날의 이별들이 생각났다. 대외활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연락을 안하게 되며 이별한 것, 교생 아이들과 흐지부지 연락이 끊긴 것, 고등학교 친구들과 서서히 연락이 줄며 멀어진 것. 나는 늘 이별이 어렵고 무서워 회피하기만 했다. 나는 이 아이들과도 이렇게 이별해야 하나. 나는 이 아이들과 그런 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인가.
내가 아이들로부터 받은 사랑만큼 주지 못했기에, 이별을 맺는 것만큼은 내가 잘 마무리해야했다. 열심히 카톡을 남겼다. 썼다,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썼다가 보내려고 보니 이미 새벽이라서 ‘주희 자?’라고 남겼다. 바로 답장이 왔다.
- 아뇨안자요
- 쌤 가세여????ᅲᅲᅲᅲ
적어놓은 답장을 복사해 보냈다.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마냥 나는 자꾸 작아졌다. 머리 한 켠에서는 결코 내 잘못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데 마음은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아이로부터 답장이 왔다. 다 이해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덕분에 더 밝아졌다는 말, 영어시간이 처음으로 기다려졌다는 말, 자주 연락하겠다는 말.
‘선생님 선택이 백만번 옳은 선택이에요’라는 말에 나는 다시 슬퍼졌다. 나약해서 도망친 선생님에게, 위로를 건네는 아이. 나는 다시 한번 나보다 더 어른같은 아이에게 깨달음을 선물로 받았다.
이별로 할지는 내가 택하는 것이다.
*쟈니: 엔시티 멤버 중 한 명으로, 나는 별로 관심없는 멤버인데 아이들은 나를 놀리려고 이 멤버와 나를 종종 엮었다. 아이들은 쟈니를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