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니 Apr 16. 2022

상대적 사계절

옛 글


나는 피곤하면 알이 돌아간다. 면접 준비를 하려고 계속 영상을 찍는데, 자꾸 눈이 피곤한지 흰자가 희번뜩하게 카메라를 위협했다. 그래서 차마 못봐주겠어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삭제했다. 잠시 눈을 식힌  다시 영상을 찍기 위해 알람을 30 맞혀두고 침대에 누웠다. 아예 불도 끌까 싶었으나 그려면  일어날까봐 불을 켜고 대신 이불을 덮었다. 여기는 호텔이다. 스터디 하려고 나는 서울에 상경했고 홍대의 어느 호텔에 있고 낯설고  상황이 스트레스다. 부장님한테는 업무 전화가 오고 나는 자꾸 글을 써야한다는 책임감이 들고 자꾸 카톡이 온다. 새벽에는 전화 스터디가 있고 밤에도 전화 스터디가 있다.  나는 자꾸 고생을 사서 할까 싶고 인생 회의감이 드는데 이건  내가 자초한 짓이긴 하다. 내가 호텔을 잡았고 내가 스터디를 만들었고 내가 낯선 곳에서 벌벌 떨며 수업실연을 연습하기로 했고 내가 글을 써야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뿐이다.

 


월요일부터 차근차근 한 문단씩만 썼어도 됐을텐데 - 라는 생각은 매 달 해온 생각이다. 사람은 일정이 닥치면 그 일을 처리하게 되어있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글쓰는 게 좋다. 글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음악을 틀어놓고 술을 홀짝이며 글을 써왔다. 그 시간 대가 가장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호텔에서 눈을 감고 잠깐 잠을 자려다 괜히 똥줄이 타 글을 쓰고 있다. 내 술과 새벽과 감성을 빼앗겼다. 그 누구도 빼앗지 않았는데 나는 빼앗겼다.



인생은 사계절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겨울은 끝이 날 기미가 안 보였다. 또한,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다른 겨울이 올 것만도 같았다. 마치 이 눈보라가 가면 더 심각한 눈폭풍이 온 마을 집어 삼키는, 그런 차갑고 시린 것.



어제는, 아니 정확히는 오늘 새벽에  호텔에서 꿈을 꿨다.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꿈이었다. 나는 수치스러웠는데 옷을 입을 생각도 못했다. 아마 새벽에 추웠나보다. 말이 안된다. 호텔이 춥다니. 내가 무슨 동네 여관을 잡은 것도 아니고.



생각 없이 사는 게 좋다는 말에 백번 동의한다. 생각이 없어야 행복하고 나름의 만족을 하게 된다. 나는 이 겨울이 싫어서 또다른 겨울을 선택하고 그 겨울에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불평쟁이 만렙답게 불평만 늘어놓다가 밤에 잠에 들 것이다.



후르츠 바스켓이라는 애니메이션 OST 중에  맘에  것이 하나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중학생 때부터 맘에  들어서 자기 전마다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어떤 부분이 맘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나이가 들고 생각하건대, 가사가 좋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봄날은 아직도 멀어서 얼어붙은  속에 웅크려, 싹이   때를 기다려왔어- 대충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다는 그런 내용이다. 회의적인 어른이  나는  가사가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인생이 사계절이라면 정말 좋을  같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보장된다는 뜻이니.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을, 특히 겨울은 사람을 상념에 들게 하니 다들 사계절에 대한 철학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봄이 지나면 정말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게 맞나? 가을 다음은 겨울인가? 그건 누가 정하지? 누군가에게는 겨울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봄이지 않을까? 나는 여름을 가장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여름에 온갖 오명을 씌워가며 손가락질을 하듯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