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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니 Apr 16. 2022

J에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비로소 배경이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전쟁 때 미군들이 지어 주었다던 낡은 학교, 다 벗겨진 페인트, 시골 학교에서 즐길 취미 하나 없어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꾸었다던 정원,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나르는 셔틀버스.


처음에는 그 셔터를 누르는 것도 힘들었는데 익숙해지니 여름이 다가왔다. 여름 즈음에야 나는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발견했다. 교무실 한 구석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 나, 이따금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하나둘 나눠주는 나, 점심시간만 기다리는 나, 오늘 급식 뭐냐고 애들에게 물어보는 나. 그렇게 나는 배경만 찍다가, 그 배경을 찍는 나만 생각하다가 한 해를 보낼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는 지루했으며, 아이들은 잔인하게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순 없으니까.


퇴근 후 학교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위치에 위치한 관사로 들어가면 커다란 베란다 창문이 나를 비췄다. 칠흑이었다. 참 모를 일이다. 왜 나는 저녁만 되면 거울이 되는 창문에서 나를 비추어 볼까. 애쓸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다그쳐봐도 나는 계속 옆구리에 작은 구멍이 나 모래가 줄줄 새는 것을 느꼈다.


언제였지? 갑자기 나의 프레임에 J가 들어왔다. J는 신기하다. 나에게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감추려고 애쓰는 게 참 아이같으면서 이따금 어떻게 알고 내가 지칠 때마다 앞을 서성이는 게 참 어른같다. 교무실 앞, 학교 게시판에 J는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방송부에 추천했다. 엔시티 드림이 좋다고 쫑알거린 주제에 내게는 ‘케탈(케이팝 탈덕)’했다고 선언했다. 자기는 엔시티에서 쟈니가 참 싫다고 말하면서 칠판에 ‘쟈니&아진 결혼 축하’라고 적었다. 나는 그런 장난이 싫지 않았다.



“선생님, 선물이에요.”



J가 건넨 명함 사이즈의 카드에는 엉성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그려져있었다. ‘아진쌤 제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 떠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뒷 장에 자리했다. 떠날 생각만 하는 나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가 바늘로 툭 터져버렸다.


J는 늘 그런 식이었다. 국어 시간에 핸드폰으로 퀴즈를 풀고 있다고 내게 카톡을 보내며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했다. 나는 그런 J가 참 귀여웠는데 우리 엄마는 ‘요즘 애들이 수업에 집중을 안한다’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속으로만 연신 ‘그럴 수도 있지’거리며 J편을 들었다. 복도를 거닐고 있으면 J가 나타나 내 손을 잡고 끌었다. 나는 내 두손을 내주었다. 그렇게 복도를 한 번 걷고 나면 청소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다. 방과후 수업 때에는 단어를 못 외워왔길래 ‘J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하니 J는 수업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나는 커튼처럼 드리워진 J의 옆머리를 치고 표정을 살폈다. ‘괜찮아? 선생님이 잘못했어. 우는 거 아니지?’ 그러면 J는 고개만 도리도리하고 계속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난다. 단조로운 일상에 대한 답답함이었을까, 아니면 이 답답함이 지속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떠나기로 했다. 다짐을 하니 모든 게 순조로웠다. 다만 ‘내년에 담임해주세요’라고 말하는 J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못한다고 말해야 했으려나. 나는 ‘그러고 싶지만 인생은 바라는대로 되지 않아’라며 웃기만 했다.


2월 중순, J에게 연락이 왔다. 어떻게 알았을까. 아직 교감 선생님만 아실텐데.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선생님이 어떤 고민이 있었고 그래서 학교를 옮겼다-라고 단순히 설명하기에는 J는 내게 너무 소중했다. 납득시키고 싶고 나를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J를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 학교에 계속 있을 순 없었던 걸까. 준 것보다 받은 게 너무 많기에 나는 자책하고, 다시 돌아갈까 싶다가도 자꾸만 칠흑을 담은 창문이 생각났다. 멀미나는 시외버스가 떠오르고 자주 볼 수 없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답장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기에 고민하다가 결국 카톡을 보냈다. 1표시가 사라지고, 곧 나는 형을 기다리는 죄수가 되었다. 원망해도 나는 다 이해하니까, 괜찮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선생님 선택이 옳아요. 다 이해해요. …’



우리는 새벽별을 장작삼아 시간을 활활 태웠다. 구구절절한 글자들이 오가고 진심이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는 염원이 스몄다. 어쩌면 이건 내가 J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혼자 호들갑 떨며 만들어낸 이별 이야기일테지만, 그럼에도 내가 J를 자꾸 떠올리며 곱씹는 이유는 J가 스스로를 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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