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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니 May 06. 2023

신규교사 지방에서 살아남기 #1

지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


이럴 거면 서울로 시험을 칠 걸 그랬나.


친구들을 보러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하고, 또다시 집에 갈 때, 그렇게 길에서 왕복 네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운 가족들은 자주 볼 수 없고 본다고 하더라도 이미 대중교통에서 기운이 쪽 빠져버릴 때, 새벽이면 생각나는 나의 이십 대 초반, 즐거운 대학 시절이 나를 덮쳐올 때,


그럴 때마다 든 생각이다.


아마 많은 신규 선생님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나의 경우,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지만 집이 경기도에 있기 때문에 으레 경기도로 시험을 보았고 영어 교사로 신규 발령을 받았다. "신규"이기 때문에 남는 학교에 갔다. "남는 학교'라 함은, 어떤 모종의 이유로 경력 교사들이 꺼리는 학교이다.


나의 첫 학교는 교통편이 최악인 경기도 끝자락의 시골 고등학교였다. 어느 정도로 최악이었냐면, 첫 차는 오전 여섯 시 반이고 막 차는 저녁 7시였으며 배차 간격이 두 시간인 버스 두 대만 다니는 지역이었다.


근처에는 카페는커녕 놀만한 곳이 없었고 가장 "세련된 곳"은 24시 편의점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24시간 운영되지 않았다.)


섬 마을은 아니지만 "고립"이라는 측면에서 섬과도 비슷했다.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엎어지면 닿을 곳에 있는, 즉 운동장 바로 옆에 있는 관사에 사셨다. 그들의 나이대도 비슷했다. 모두 첫 발령으로 이곳에 오셨고 그나마 부장 선생님들만 승진 점수를 위해 이 학교에 오셨다.


이 학교는 그런 곳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하루의 대부분을 서로에게 고립시키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밝음을 소유했다. 어른들은 이미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왔기에 이곳에 만족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여기서 몇 년을 보내지?'


합격하면 가질 법한 설렘과 사명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이제 나의 신규 교사 고군분투기를 써내려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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