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해도 할 게 없는걸요?
경기도 고등학교는 보통 오후 4시 50분이 퇴근 시간이다.
99%의 선생님들이 이 근처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사시고 평일에만 관사에 있으시기 때문에 금요일 퇴근 시간 즈음은 모두가 카운트 다운을 하는 시기이다.
4시 50분이 되기 십 분 전부터 짐을 싸시는 선생님들도 계시고 부랴부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초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으시다. 매주 금요일은 그래서 야간자율학습도 없고 초과근무도 없다. 학교는 텅 빈다.
그러나 금요일이 아닌 월화수목의 사정은 다르다.
퇴근을 해도, 혹은 방과후 수업을 끝내도 선생님들은 할 일이 없으시다. 차가 있으신 분들은 운전을 해 옆 동네로 넘어가 식사를 하고 돌아오시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 차가 없었기에 꼼짝없이 저녁시간부터 관사 신세였다.
이런 나날이 반복될 수록, 나는 다시 두려워졌다.
"앞으로 이 학교에 있을 때 동안 계속 이러면 어떡하지?"
괴로우면 행동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에도 무료 봉사를 했다. 희망자를 받아 영어 수업을 했다. 수당 없이 일해도 좋았다. 아이들이 귀엽고 좋았기 때문이다. 관사에 들어가 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런 것들이 싫어 나는 학교에 남아있기를 택했다.
다른 선생님들, 심지어 이 학교를 거쳐간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학교에는 체력단련실이 있었는데 이 근처에 헬스장이 없었기에 선생님들이 만든 모양이었다. 또한 마을 도서관은 오전 10시에 열어 저녁 7시에 닫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싶은 선생님들은 학교에 남아 책을 읽으셨다. 음악실의 음향장비를 이용하여 음약실을 노래방으로 만들기도 했고 커다란 스크린이 있는 어학실에 모여 다같이 영화를 감상하기도 하셨다.
학교가 하나의 거대한 복합시설이 된 것이다.
여러 선생님들이 이 학교를 거쳐가시며 나름대로의 적응을 하신 것들이 신기하고 짠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어진 삶에 적응하는 것. 그건 사람이 살기 위해 계발해야 하는, 최고의 무기임을 깨달았다.